241222 주일
이사야 26장
구원의 노래
사 26: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사 26: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사 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들어가는 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동기는 사랑이시다. 그 목적은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누리시기 위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우리를 창조하셨다. 이에 우리가 가장 기쁘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의 세계를 소유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에 따른 구원을 노래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1).” 이로써,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4).” 하고 우리의 존재이유와 그 목적을 알게 하신다.
이는 우리의 기쁨이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1-2).” 할 때, 성경의 역사와 그 중심이 드러난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주를 찬송하는 일이다.
일련의 국내정세와 국외정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늘의 자연재해와 그에 따른 이상기후도 마찬가지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하신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찬송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곧 우리의 평안은 이 땅의 현상에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16).” 하여 우리의 ‘회개’도 ‘구원’도 성령으로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령으로가 아니면 그 평강도, 그 어떤 기쁨도 영원하지 않다.
성령이 오늘도 이르신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오늘 본문은 이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함으로 정직하고 선하게, 진실하고 경건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곧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하여 우리에게는 정죄함이 있을 수 없다.
본문이해
첫째, 우리는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한다. 이상하다 싶게 환난을 통해 평안을 느끼고 감사가 나온다. 그때 모든 상황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된다. 참된 평안은 하나님으로 가능하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둘째, 우리는 환난을 통해 기도한다. 환난으로 말씀에 전념하여 이를 읽고, 묵상하고, 교제한다. 이스라엘이 애굽 떠나 약속의 땅을 지척에 둔 모압 광야에 이르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470년이 지난 뒤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 다섯 가지>
첫째, 구원의 노래를 부르라.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1).”
우리의 찬송은 영원한 안식과 평안의 신호다. 우리가 찬송하는 것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3).” 이에,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7).” 우리의 ‘구원의 노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장 충만할 때이다.
그때 교만은 낮추실 것이다. ‘견고한 성읍’ 같은 믿음으로 우리가 받는 ‘구원’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슥 2:5).” 우리 믿음도 구원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루어진다.
둘째,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하라.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2-3).”
우리로 구원의 문을 열게 하신다. “너희는 문들을 열라” 이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을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하라”는 명령이다. 그때에 ‘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도록 너희는 문들을 열라.’ 이에 우리는 신실해야 하고, 은혜로 받은 하나님의 의에 견고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의뢰해야 하는 자들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하는 욥의 찬송과 같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 이를 보게 된다.
셋째, 신뢰함으로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심을 알라.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4).”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의뢰한다. ‘여호와’는 히브리어에서 ‘~이다’, ‘~있다’라는 뜻으로, ‘스스로 계신 자’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곧 여호와는 영원 전부터 영원자존하신 자로 우리의 ‘반석’이이시고, ‘보호자’, ‘피난처’가 되신다.
넷째, 우리의 교만을 꺾으신다.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5).”
이는 상대적으로 ‘빈궁한 자’와 ‘곤핍한 자’를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6).” 곧 우리로 주를 의지함으로,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7).” 이는 절대적으로, 스스로를 높여 교만하고 자긍하는 것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교만이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마음을 미련한 곳에 두어 스스로 어두워졌다. 그리하여 교만이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는 것’이다(20-23). 곧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찬송하고 바라는 것이다.
다섯째, 상대적으로 의인의 길은 평탄하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7).”
우리가 의인인 까닭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그러므로 우리의 의는 하나님의 의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2).” 이에 우리는 그 어떤 자격과 조건으로도 스스로는 의로울 수 없다.
나오는 말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8).”
그때가 되면 ‘심판’이 기다린다. 그때가 되면 온 세상은 비로소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뒤늦은 후회와 탄식으로 절규할 것이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30).” 그때는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 그럴수록 우리는 오늘 본문과 같이,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9).”
곧 일련의 사태로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나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12).” 이를 더욱 확신함으로 오늘의 이 모든 혼란에서도 평안하다. 그러므로 그때가 되면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19).”
곧 주의 자녀들은 어디서, 어떤 상황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을지라도, 살아나서 반드시 우리는 주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악인들은,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14).”
이처럼 그때가 되면,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2).” 이와 같은 다니엘의 증언으로, 오늘 본문은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20).” 이처럼 어렵고 암울하고 엄중한 시기에는 주의 보호하심 아래에서 주가 우리를 숨기신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덮지 아니하리라(21).”
그때에는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15).” 우리는 더욱 소리 높여 주를 찬송할 것이다.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오히려 복음은 더욱 확장되었고 선명하게 빛을 내었던 역사를 기억한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도,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도, 우리의 복음이 전파될 때에 견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다.
그때에는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19).” 그리하여 오늘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다. 구원의 노래를 부르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여 반드시 우리는 “그 날에 …이 노래를 부르리라(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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