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2 주일
이사야 28장
견고한 기촛돌
사 28: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들어가는 말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신 16:20).”
오늘 겪고 있는 사회적인 혼란과 세계적인 전쟁과 난리, 자연 재해에 대하여 이미 예수님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셨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이 모든 것은 시작일 뿐이라 하시면, 우리는 점점 더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할까?
이에 오직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살겠’고 하신다. 이는 우리가 지금 공의롭지 않은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과 같이 기울어진 법과 제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 <공의의 정신>’을 가지고 우리로 살게 하신다. 이 땅에 사법부가 있고, 시대마다 사회 정의와 규범이 있었지만 저마다의 해석이 다르고 적용이 다르다는 것을 우린 익히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신 1:17).” 하셨음에도 사람들은 공의와 정의보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한다.
일련의 진영논리와 정치적 양극화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사상논쟁으로 끝내 남북한이 분단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적대적인 감정이 있고 공격적이다. 유일하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지목되는 에녹은,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곧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창 5:21-23).” 에녹이 묵묵히 ‘하나님의 경고’인 심판의 예표로 그의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저는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과만 동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은 심판으로, 그가 죽던 날에 ‘노아 홍수’에 따른 심판이 이루어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하심은 이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간다. 곧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5).”
본문이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바로 이,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구원의 견고한 기촛돌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한다. 이로써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로 우리는,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0-13).” 곧 하나님께로 난 자들로 공의로운 삶을 산다.
결국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견고한 기촛돌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나타내신다.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빌 2:2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견고한 기촛돌>
첫째,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다.
여기서 우리는 두 사실을 대조할 수 있다. 하나는 거짓과 허위로 기초를 삼은 집이다. 하나는 시온의 돌로 기초를 삼은 집이다. 앞서의 집은 창수가 나면 소멸되어 버린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 뒤의 집은 반석 위에 지은 것으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25).” 이에 따른 견고함은 시온의 모퉁잇돌을 힘입은 바이다.
둘째, 이 돌은 ‘시험한 돌’이다.
곧 모든 시험을 다 거친 돌,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돌이다. 이 돌로 건물의 기초를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시온에서 가져오신 것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우리의 신앙 그 자체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 자신으로 불가침의 확신이신 메시야의 구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42).”
<우리 눈에 기이함에 대하여>
첫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 4:10).”
둘째, 세상에서는 걸림돌, 거치는 바위 같은 존재이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9:33).”
셋째, 구약 성경이 전하는 모퉁잇돌 예수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넷째,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돌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6-8).”
다섯째, 건축자들이 버린 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42).”
여섯째, 신령한 음료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일곱째, 우리가 세워져 가는 ‘신령한 집’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우리가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간다는 것에 대하여>
첫째, 우리는 각자 그리스도인으로 제사장직 직분을 가졌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둘째, 우리는 각자 ‘신령한 집’으로서 이 시대의 교회다.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민 6:8, 롬 12:1).”
나오는 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장직’을 수행하며 사는 교회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에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주의해야 한다. 첫째, ‘술 취함’에 대하여 주의한다(사 28:1-13). 둘째, 교만에 대하여 주의한다(14-29). 술 취함은 방종과 쾌락을 위한 자기만족의 인위적인 환각 행위다. 매우 의도적으로 불순하게나마 천국을 맛보려하는 극단적인 쾌락이나 궁극적으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며 유다의 지도자들은 타락한 백성들을 뜻한다.
오늘 본문은 ‘에브라임의 술취함과 교만에 대하여(1-13)’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1).” 이와 같은 심각성을 일깨우고 있다.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1).” 반복하여,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3).” 결국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힘에 의해 영광을 누리고 살 때, 교만은 곧 쇠잔해져 가는 꽃과 같이 시들 것이다. 분명히 말씀하시는 바, ‘술 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그들 가운데 남은 유다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사 28:5).” 또한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12).” 결국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5).”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멸망을 알리실 때,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사 28:22).” 이를 통하여 경고한다.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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