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26 주일
이사야 29장
아리엘에 대한 경고
사 29: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사 29: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들어가는 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너는 내 것이라’ 하심에 대하여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2-3).” 하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린 알 수 있다. 곧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신다.
오늘 본문은 이를 알리시며 그에 따른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리엘’은 ‘여호와의 번제단’으로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예루살렘을 뜻한다. 예루살렘의 교만을 빗대어 아리엘이라 부르시며,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사 29:1-2).” 곧 예루살렘이 번제단과 같이 불이 나고 피를 흘릴 것을 경고하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저들이 교만하여 그러하다. 이에 되묻는 것이,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주장은 교만함으로 우리의 단면과 같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보배로운 백성’이라 하신다.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신 26:18).” 이에 우리는 우리의 죄 됨으로 절규하며 외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결국 스스로의 죄성을 개탄스러워하며,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9-21).” 하고 주 앞에 아뢰어 주의 도우심을 구하게 자는 겸손하다.
본문이해
‘아리엘’은 ‘번제단’이다. ‘성스러운 처소’라는 뜻도 있어서 예루살렘을 가리켜 번제단 위에서 피흘림과 불이 타들어가듯 예루살렘에 심판이 있을 것을 알린다.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사 29:2).” 하심도 결국 주의 백성들이 형식적으로 제단을 쌓고, 종교의식의 하나로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한 경고다. 그만큼 영적으로 어두워졌고, 외식하는 자들로 예루살렘이 죄에 빠졌다.
더욱이 지도자들이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 바로보지 못하고, 백성들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으로는 무시한다. 그렇게 ‘외식하는 죄’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즉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고 예수님은 이르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연약하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켜 긍휼하심으로 거두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불가항력적이다. 무지하고 무감각하던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신다. 닫힌 귀를 열고 하나님을 바라고,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 안에서 주를 경외한다. 우리의 영생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라(요 17:3).”
오늘의 아리엘, 우리의 삶에서 이와 같은 심판의 예언은 계속된다. 이를 무시할 때 ‘번제단’과 같이 우리에게도 심판은 피흘림과 불사름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이 시대에 아리엘아, 하고 불리며 경고의 메시지를 들을 때 깨달아야 할 것을 살펴보았다.
1. 아리엘-예루살렘에 대한 애곡(1-4)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를 가리킨다. 이에 예루살렘은 다윗이 세운 수도로, 해마다 절기에 따라 사람들이 붐비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성을 괴롭게 하시겠다고 한다. ‘아리엘’이 ‘번제단의 화로’ 같다.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3-4).”
이 헛되고 그릇됨에 대하여 ‘화 있을진저’ 하고 ①우리의 사면으로 적들이 진을 쳤다. ②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주를 경배해야 하는데 세상을 바라면서 낮아져 땅에서 말한다. ③그러한 말들이 가볍기 그지없어 티끌 같이 날린다. ④ 심지어 괴성을 지르며 신접한 자 같은 소리로 짐승 같이 지껄인다. 오늘 날 우리 사회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임박한 재앙을 알리는 경고와 같다.
2.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형태(5-16)
첫째, 전쟁이 일어난다(5-6).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군대로 에우며’ 우릴 괴롭게 한다. 우린 저마다 ‘신접한 자의 목소리’로 괴성을 낸다. 그 소리가 티끌처럼 가볍게 날릴 뿐이다. 이는 곧 “내가 너를 치리니” 하고 오늘의 이 환난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알게 한다.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5).”
환난이 우리를 돌이키게 하려하심이다. 동시에 대적들을 징벌하실 명분이 될 것이다. 실제 오늘 본문의 배경은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의 산헤립이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왔을 때이다. 그때 하나님은 저들 군대를 하룻밤 사이 18만 5천명을 무찌르셨다.
둘째,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다(7-8)
곧 여호와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며 동시에 천둥과 지진과 폭풍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침략자들을 징벌하신다.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7-8).” 뭔가 그럴듯하나 꿈과 환상 속의 허상이고 망상일 뿐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징계하시면서 동시에 그 도구로 사용하신 앗수르를 멸망시키신다.
셋째, 무지함으로 죄이다(9-12)
오늘의 이와 같은 결과도 위정자들과 목회자들의 눈이 어둡게 되어 바로 보지 못하고, 저들로 무지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9).” 마치 중독자들처럼 ‘독주’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 같다. 맹인과 술 취한 자 같이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이 횡설수설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어두움으로 덮으셨기 때문이다. 말씀을 인봉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 거짓된 교훈이 온 땅에 가득하게 하셨다. 말씀의 기갈이 그 영혼을 황폐하게 하였다. 약속된 구원을 경험하기 전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수밖에 없다(10-16). 그 이유는 머뭇거리고, 소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믿지 말고 머뭇거려 보라’ 하고 오늘 말씀은 역설적으로 ‘어디 한 번 그렇게 해보라고 하신다.’ 또한 ‘자기들 계획을 숨기고, 어두운 데서 행하면 어찌 되는가 보라 하신다.’ 그러면서 착각하는 것이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고 교만에 사로잡혔다. 패역함으로 마치 ‘토기장이에게 진흙이 어찌 자기를 지은 것인가?’ 하고 반문하듯 하나님을 우습게 여긴다. 총명을 잃었고 세상 즐거움에 빠졌다. 교회는 날로 비대해지고, 교회의 권세가 세상의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하였다. 어디 한 번 즐겨보라! 역설적인 경고다.
나오는 말
지혜와 총명을 상실할 때 영적으로 잠든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마음으로는 멀어졌다. 외식하는 자들이란 사람을 의식하고, 겉으로만 경건하다. 믿는 시늉만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는다. 지혜는 없고 총명도 가려졌다. 하나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셨다. 오늘 날 이 사회에 지혜자가 없다. 원로나 어른이 사라졌다. 명철한 자들도 남은 생을 즐기려고 내남없이 유튜브나 개인방송을 하며 자기 목소리에 도취되었다.
참 지도자는 다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악하다. 죄악을 깊이 숨겨서 자신조차 속인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회복을 진행하고 계신다(17-24). 오히려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으며, 소경이 눈을 뜨고 볼 것이다. 겸손한 자가 여호와로 기뻐하고, 빈핍한 자들이 거룩하신 자로 즐거워할 것이다.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18).”
그렇게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19-20).” 하여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경외함을 받으실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말씀은 단언하길,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23-24).” 오늘의 이 모든 혼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피조 세계와 창조주의 주권을 바로 세우실 것이다. 그리하여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8:13).”
이렇게 세상은 혼탁하여서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예루살렘’이 ‘아리엘’ 곧 번제단과 같이 불과 피로 물들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5, 18).”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신 33:12).” 즉 우리를 품에 안고 보호하신다.
이에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 29:24).” 아멘.
'[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31장 / 나 만군의 여호와가 보호할 것이라 (0) | 2025.02.06 |
---|---|
이사야 30장 / 패역한 자식들에 대한 은혜 (0) | 2025.01.30 |
이사야 28장 / 견고한 기촛돌 (0) | 2025.01.09 |
이사야 27장 / 아름다운 포도원- 하나님의 자녀들 (0) | 2024.12.27 |
이사야 26장 / 구원의 노래 (0) | 2024.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