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전봉석 2025. 2. 18. 05:00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삿 1:1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 36:9

 

 

‘이미’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아직’ 가나안을 정복하지 못한 시기의 삶이다. 애굽에서 이끌어낸 모세가 죽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었던 여호수아도 죽었다. ‘죽은 후에’ 한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 여호수아는 110세를 향수하고 죽었다.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이끌어, 땅을 분배하였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였다.

 

여호수아가 죽고 그 뒤를 이을 적당한 후계자가 없었다. 사사기는 이와 같이 ‘이미’와 ‘아직’의 사이에 낀 시대이다. 이미 주를 영접하여서 신자로는 사는데 아직 주의 뜻대로 온전하지 못하고 사는 성도의 시간과 같다. 아직 우리는 우리 삶의 여러 죄악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바로 정복하지 못하고 산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서도 ‘아직’도 세상에 얽매여 종노릇하듯 살아가고 있다. 아직 천국을 소유지 못하고 사는 삶은 불온하고 불안하다. 이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이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하여,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곧 오늘과 같은 시국에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이 옳다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더욱 이 혼란 속에서 주께 간절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시 37:5-6, 25:5).

 

본문은 역사적인 서사가 있고, 오늘 우리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강력한 통치자가 없던 시절, 이스라엘은 주변 열강들을 미처 다 정복치 못한 상태이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끊임없이 괴롭힌다. 유다가 먼저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이를 철저하게 점령하지는 못한다. 이에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곧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면서 권리이다. 구약시대에는 주로 대제사장들이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의 뜻을 구했다. 이때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여호와께 물었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살았을 때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 안식을 가져왔지만 아직도 남은 땅에는 죄악 된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몫이 아니라, 이스라엘 각 지파의 몫이다. 이에 저들이 모여 하나님께 그 뜻을 물은 것이다.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우리까?’ 여기서 올라간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단순히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이처럼 ‘주 앞에 올라와’ 하고 표현할 때처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수 8:1).” 이는 ‘전쟁에 나가다’ 하는 뜻으로 해석하고,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서 주 앞에 먼저 엎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지목하여 선봉에 나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삿 1:2).” 이는 ‘여호와께서 응답하심이다.’ 우리가 먼저 주께 묻는 것은 귀하다. 무슨 일에서든지 주를 인정하고 주 앞에 올라와 주께 묻는 것은 훌륭하다. 사사 시대 초기에는 이와 같이 여호와 유일 신앙으로 먼저 주께 물었으나 뒤로 갈수록 그 일도 희미해진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2:7).”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유다지파의 수효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 근본적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의 예언에서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중에 가장 탁월한 지위를 차치하리라고 축복하셨다. 유다가 먼저 올라가는 것은 ‘승리의 약속’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주께 묻고 주께서 응답하실 때에 이를 준행하는 일이 복이다. 하여 우리는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시 27:11).

 

곧 사람은 때가 되어 갈 길을 가나 하나님의 역사는 여전히 우리 앞에서 행하여진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가나안의 정복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 2:2-4).” 그렇듯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8).”

 

곧 오늘도 이 한 날에 주가 내게 명하시는 날을 산다. 일상은 소소하고 되풀이 되어 늘 같은 날 같으나 그와 같은 시간으로 우리는 산다. 비록 뭔가 대단한 일은 없는 듯하나 우리의 사소한 시간 속에서 주께 구하고 주를 생각함으로 그 순간으로 올라간다. 이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벌써 재작년 가을 어느 날 이사를 하고 처음 옆집과 인사를 하고 서로 몇 번 마주친 것 같은데, 어제는 우연히 그 집 남자와 같이 문을 열고 나오면서 놀랐다. 나보다 연배는 좀 있어도 건장하였던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수척해진 모습으로 어색하게 눈을 피하는 것이다. 뭐라 말을 걸기 어려워서 어색하게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일상의 무상함에 어줍기만 하였다. 뒤 따라온 아내에게 묻자 그 집 노모는 거의 거동도 못하고 껑충, 10년은 늙은 듯 시간이 흐른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날의 무심함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거침이 없는지… 그런 가운데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 4:7-8).” 이 세상에 있을 우리를 잃지 않고 사로잡으신 바, 나를 붙들어 오늘도 여기에 두심으로 나의 일상은 주 앞에 올라와 주어진 한 날의 수고로 족하다. 월요일에 설교본문 초안을 잡고,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찾아본다. 다음 날에 구성을 갖추고 각 단락의 소재를 정리한다. 다음 날에 주제와 소재의 간극을 메우고, 다음 날에 일차 적성을 맞추면서 주일이 오기까지 되풀이 하여 퇴고한다.

 

나의 날은 간소하고 단순하다. 이처럼 새벽에 올라와 말씀을 묵상하고 글로 쓰면서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운동 삼아 산책을 하고 도서관으로 간다. 그러는 동안 아이의 전화가 오거나 누구와의 이런저런 사연을 두고 대화가 있기는 하나 오후는 순식간에 흘러간다. 저녁을 먹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나의 요즘은 되풀이 된다. 그런 가운데 어떤 두려움이나 염려가 나를 괴롭히지만 그것으로도 주를 인정하고 도우심을 바란다. 아흔둘의 장모는 거구의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나는 그 소리에 항상 예민해진다. 그러나 우리의 ‘전쟁’ 이 한 날의 수고는 그 결과를 다 알고 치르는 삶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곧 주가 다 이겨놓으신 세상에서 나의 한 날은 내 몫의 전투이나 승리할 싸움이라 담대함으로 주를 바란다. 곧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그리하여 오늘의 날에 나에게 아직 가야 할 길이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2-4).”

 

더는 내가 바라고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 누구와의 어떤 일에 대하여 나로 조급하지 않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이 초조하게 굴던 시절은 지나고, 다만 늘 같은 동선을 따라 나의 한 날의 수고로 족하였다. 더러는 어디가 아프거나 무슨 일로 어려울 때도 나는 이와 같은 동선을 따라 나의 행동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이른 저녁에 잠자리에 들고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교회로 나오는 일에서부터, 묵상 글을 쓰고 설교원고를 작성하는 일로 나의 일과는 맞춰진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삿 1:7).” 사람의 생은 허무하여 누가 또 눈부신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끓었고, 누구는 노욕(老欲)을 감추지 않고 기를 쓰고 자기주장에 함몰되어 사회를 어지럽힌다. 이때 성경의 공식은,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아직은 모르는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 2:6-8).” 이는 만고의 진리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하여 이 순간에도 나는 무엇으로 심고 있는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7).”

 

하실 때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그러므로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 어느 훗날 주 앞에 섰을 때 나의 이 사소함으로 존귀와 평강의 열매가 맺어질 것을 믿는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롬 2:10).” 오늘의 날들은 주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7).” 이에 성경의 지혜는 일관되게 외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3-14).”

 

주신 상황 속에서 나의 오늘도 같은 동선을 따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시 36:5-6).

 

이에 나는 오늘도 주 앞에 올라와,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7).

 

그러므로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9-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