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전봉석 2025. 3. 29. 04:16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삼상 15:22-23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 75:6-7

 

 

시작과 끝이 한결같기가 어렵다. 시작이 반이면 끝이 그 나머지 몫이다. 사울이 어찌 변하여 가는지, 결국은 사람을 섬기는 일로 저들을 의식하고 이에 따른 것이다. 저는 변명처럼 자신을 높였다.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12).” 그리고 모두 진멸하라 하신 명령을 백성들 핑계와 하나님 섬김을 이유로 댄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15).”

 

말귀가 어두운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하고 싶은 생각으로만 말하려 한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20-21).”

 

즉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이를 인정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심지어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까지 사람들을 의식해서였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24).” 하는데 그 뉘우치고 회개하는 속내는 따로 있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30).”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보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35).”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주전 1010년경에 왕위에 올랐다. 다윗이 최초 기름 부음 받은 때를 대략 15세로 보면,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16:12).” 그때는 아말렉과 전투, 주전 1025년경 이후부터였다.

 

결국 사무엘이 사울에게 다시 온 오늘은 믹마스 전투, 주전 1048년 이후였으니 사울과 헤어진 지 대략 23년만이었다. 그렇게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1).” 하고 오늘 이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는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10:1).” 하고 난 뒤로부터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하는 것은 사울이 앞서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엘의 직무를 침범했던 제사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13:8-14). 당시 사울은 그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지자의 성스러운 직무를 범하고 난 뒤였다. 그럼에도 오늘 다시 이제, 사무엘은 새로운 기회의 명령을 전한다. 곧 믹마스 전투 이후 사무엘이 사울의 불순종에 대해 심판의 경고는 최종적인 게 아니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13:13-14).”

 

그 선언 이후 오늘 사무엘이 다시금 사울을 찾아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킬 것을 당부한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아직’ 사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로 하여금 다시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참고 기회를 더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이다.

 

이것은 마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에 대한 ‘요나의 심판 선언’도 최종적인 선언인 것 같았으나, 니느웨 성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신 것과 같은 이치이다(욘 3:4-10).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시고, 우리로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수도 없이 더하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엄히 이르신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하신 말씀을 시간 날 때마다 되새긴다. 하나님은 여러 번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강권하여 구원의 손길로 인도하시지만 이내 다시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하다 영영히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오고야마는 것이 두렵다.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간다는 말이 그때까지 참고 또 기다리시며 회개의 기회를 더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떠올리게 한다. 하여 에스겔은,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33:11).”

 

하고 연거푸 거듭 말씀으로 찾아오심으로,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 2:4).”

 

오늘의 이 혼란과 자중지란 가운데서 행여 교회가 또는 믿는 자로서 그릇 행하여 가는 것은 아닌지! 오늘 사무엘은 아말렉 전투에서 결국 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하여 반역의 죄를 범한 사울을 찾았으나 저는 끝까지 자신을 높이고, 백성을 핑계삼아, 마치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제사를 지내려고 한 것처럼 자신을 끝까지 합리화한다. 하여 끝까지 회개의 순간을 백성들의 이목을 의식하여 자신을 높이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삼상 15:30).”

 

저의 변명 가운데 양과 염소를 좋은 것으로 남긴 것을 ‘번제와 다른 제사’를 위함이라 하여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말하는데,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21).” 이를 하나님이 좋아하실 리 없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22).” 결국,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23).” ‘순종하지 않는 죄의 무게’가 실로 무거워서 ‘점치는 죄’와 ‘완고함’과 ‘우상숭배’와 같다.

 

번제는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다(레 1:3-17). ‘다른 제사’는 모두 희생을 의미한다. 곧 ‘헌신과 희생’보다 ‘순종’의 무게가 더 크다. 즉 여호와께서 모두 진멸하라 명령하신 명령을 무시한 이유가 ‘여호와께 제사드릴 목적’으로 그리했다고 하는 소리에 대한 명징한 판결이 된다. 그래서 ‘그 족속의 가장 좋고 기름진 짐승들’을 살려서 가져왔다는 것인데, 실은 백성들의 만족을 위한 전리품이고, 자신을 높이는 데 따른 명분이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12).”

 

오늘 우리의 섬김과 헌신과 희생이란 게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이는 중요하나 순종보다 앞서지는 못한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시 50:8).

 

그러하나,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2).

 

그게 다 주의 것임을,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3-15).

 

이에 정녕 주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예배의 형식’ 보다는 ‘예배자의 마음’이 우선이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전 5:1).”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하고 제 아무리 궁리한다 해도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시는 말씀으로 분명하였다(미 6:6-8).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고로 오늘을 사는 동안 사울의 이러한 변질이 경고가 된다. 저의 처음은 자신을 낮추었고 겸손하였으며 두려워할 줄 알았다. 곧 저의 시작은 반이었고, 끝맺음은 나머지 전부이다. 어찌 이처럼 저로 인하여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삼상 15:35).” 행여 나의 끝 날에 나는 어떠할지… 나는 두려움으로 이 말씀을 마주하고 앉아있다.

 

하나님께서 설마 수양의 피나 기름을 좋아하실까? 그것은 우리의 전인격적인 마음을 원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이 신앙의 척도로 삼는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오늘 이 사울의 이야기가 사울 개인의 역사로 그치는 것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를 읽는 나를 위한 것으로, 나의 이야기로 삼아 “롯의 처를 기억하라” 하심으로 일축된다(눅 17:32). 즉 ‘사울의 끝을 기억하라.’ 이는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은 불순종이 점치는 일과 완고함과 우상 숭배에 버금가는 죄인 것을 다시금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시 75:1).

 

이는 주의 긍휼하심으로 오늘까지도 기회를 더하시며 참고 또 기다리심이었는데,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2-3).

 

이 땅의 모든 게 다 소멸의 날이 있을 터,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6-7).

 

그러므로 오늘도 잠잠히 주를 바람으로,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9-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