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시 77:10-12
지도자의 부패는 그 공동체를 위태롭게 한다. 본문은 블레셋이 에베스담밈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과 대치중이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나와 이스라엘을 우롱하고 하나님을 멸시한다. 늘 그럴 때 보면 ‘싸움 돋우는 자들’이 일어난다. 골리앗이 자신을 블레셋의 대표로 자처하듯 저들은 어느 시대나 그러하다.
일련의 우리 사회에서도 보면 말장들이 있어, 저들은 마치 ‘싸움 돋우는 자들’ 같이 자기들 주장은 물론 상대를 음해하고 공갈한다. 여기 골리앗이 자신과 싸울 대표를 뽑아서 보내라고 호통 친다. 협곡을 경계로 서로 대치중이다. 지형적으로 전면전은 어렵다. 선제공격이 곤란하다보니 말이 앞선다. 골리앗이 나서 자신의 힘을 과신하며 이스라엘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고 외치며 조롱한다.
이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저의 외적인 장대함과 기세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에 모두 위축되었고 다윗은 이를 보다 참지 못하겠다. 그러니 골리앗이 다윗의 왜소함과 어린것을 보고 가소로워한다. ‘다윗을 보고’ 할 때, ‘보다’는 관찰한다는 것으로 아직 어리고, 저의 손에 들린 것이 막대기뿐이라 한심하다. 골리앗은 ‘내가 개냐?’ 하고 어이없어 한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43).”
골리앗은 다신주의자로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한다. 당시 ‘개’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싫어하고 금기로 여기는 동물이다. 오늘날도 욕에 ‘개’를 앞에 붙이거나, 상대적으로 좋거나 싫은 것에도 ‘개’를 붙여 표현한다. 다윗의 신 여호와는 단수로 한 분이시다. 싸움에서도 그렇듯 다수가 단수보다 우위를 점한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은 오직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상대한다고 외친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45).”
골리앗이 중무장한 것을 경멸하며 달려간다. 당시 패배한 상대의 옷을 벗기고 그 신체에 모욕을 더함으로 승리를 확인하였다. 또한 시체를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서 새나 들짐승의 밥이 되도록 하는 관습이 있었다. 여기서 다윗은 그 어느 무기보다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우겠다고 선언함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성전(聖戰)을 수행하는 자임을 밝힌다.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무장하였으나 자신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다윗은 자신과 골리앗과의 싸움을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또는 국가와 국가의 싸움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골리앗이 숭배하는 신들을 상대로 다윗은 자신의 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상대하는 싸움이다. 그러니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에,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6-47).”
여기서 다윗은 싸우기도 전에 승리를 확신하였다. 곧 이 전쟁은 “내 손에 붙이시리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시고자 할 때 이와 같은 수사를 사용한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수 6:2).” 아무리 국면이 노록치 않다 해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8:1).”
이는 예수께서 우리게 이르신 바,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곧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언제나 골리앗 앞에 선 것 같다. 도대체 상대가 안 되는 좌절과 실패와 낙심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해도, 이미 우리 주님이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심으로 다 이긴 싸움에 참여하는 것뿐이다. 곧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어려움으로 ‘온 땅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하려 하는, 오늘도 성전(聖戰)이 되는 것이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9-11).”
현실이 어떠하든지 우리에겐 지나온 날들이 있다. 그때 그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로 어떻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는가를 잘 안다. 즉 오늘 이 현실의 목적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고 그 하나님의 섭리를 널리 알게하려 하심이다. 이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때가 아무리 엄혹하다 해도,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시 77:10-12).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과 개개인이 당면한 현실이 어떠하든지, 여기서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온 천하에 널리 드러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처럼,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믿음의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
당면한 현실이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거인 골리앗을 상대하며 어린 소년 다윗은 외치고 있다. 이 싸움의 모든 영광은 주의 것임을 공표하면서, 비록 창과 칼은 없어 막대기와 물매를 들고 달려간다 해도… 이것이 현실적으로는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해도, 오직 그 이름만이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확신하며 소년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나아갔다.
그러할 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모든 전쟁의 승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좌우된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 곧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겪는 어떤 어려움도 그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
하는 솔로몬의 시와 저의 격언처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우리의 결말은 승리뿐이다. 그러므로 훗날에 다윗이 찬양하여 지은 시에서도,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144:1).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데 있어 전쟁을 놓아 승리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신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어떠하다 해도, 오늘 여기 다윗의 적극적인 자세와 같이 ‘오직 여호와의 능력’만을 힘입어 싸우는 것을 주가 보고 싶어 하신다. 다윗의 신앙과 용기가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이를 전달하고자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어린 다윗’을 상상한다. 손에 막대기와 물매를 들고 거인 골리앗 앞에 서서도 당당히 외치는 저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45).”
막대기와 물매만 들고 달려가면서… 이는 평상시 다윗의 모습 그대로를 알게 한다. 목동으로서의 복장과 소도구들이 전부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하찮을 뿐이나 이것이 나의 일상으로, 있는 그대로, 주신 상황 속에서 뭔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38).” 이와 같은 허위와 허상은 필요치 않다. 누구처럼, 무엇이 없어서, 하는 따위의 문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현실 그대로 오늘을 사는 나의 전부로서 ‘막대기와 물매’이다. 허름한 복장의 양치기 복장 그대로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39).”
곧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내가 가진 것으로는 약할 뿐이나 나의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고 계심을 알게 한다. 나의 약한 육체로 오늘도 끙, 하고 일으켜서 주의 전에 올라오는 이 모습 그대로 ‘나의 병기’가 된다. 오늘의 현실은 골리앗과 같이 거대한 몸집과 빈틈없이 중무장 상태로 나를 상대하고 있지만, 내가 가진 게 ‘막대기와 물매’가 아니라,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란 사실을 확인한다. 실로 이것은 오랜 시간 지속된 고통이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블레셋 골리앗은 40일 동안이나 그 교만과 오만의 온갖 모욕과 조롱을 퍼붓고 있었다. 그 시간동안 오히려 다윗의 물맷돌은 더욱 단단하게 응축되어, 기어이 골리앗의 이마에 날아가 박혔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48-49).”
세상은 미처 알지 못하는, 내 주머니 속의 작은 믿음의 돌멩이가 거인 골리앗의 이마에 가 박혔다. 이는 우리의 물매 솜씨 때문이 아니다. 일찍이 여호와의 법궤 앞에 블레셋의 다곤 신상이 이처럼 엎드러졌던 것처럼,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5:3).” 오늘 여기 골리앗이 쓰러졌다. 오늘 나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비현실적인 물맷돌에 박혀 고꾸라질 것이다.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막대기 같은 나'와 '돌멩이 같은 나'를 들어 사용하신다.
나는 할 수 없으나 나로 사용하실 때 오직 만군의 여호와께서 승리하신다. 그 어떤 것, 그 무엇이라도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현실이 아무리 거대하다한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까지… 나로 오늘도 여기에 앉히셨다. 이에 나는 외친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77:1-2).
오늘도 시편으로 묵상하며,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5-6, 10-12).
그리하여,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13-14, 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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