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 30:6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 90:17
마치 폭풍 전야 같을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는데도 일이 순탄하다면 곧 이어 폭풍 같은 고난이 임할 것이다. 오늘의 시글락이 그런 형편이어서, 블레셋의 전투에서 제외되어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블레셋 방백들의 강한 거부감으로 이스라엘과의 전투를 피할 수 있었다.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3일만에 시글락으로 돌아왔고, 그땐 이미 아말렉 사람들의 약탈로 인해 저들의 처자와 모든 재물을 빼앗긴 상태였다.
아말렉 족속의 약탈은 다윗과 저들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에 은신하던 때부터 그럴 줄 알았다. 물론 앞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말렉을 침노하여 약탈하였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저들이 블레셋의 전투에 참여한 틈을 노려 아말렉이 보복한 것이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27:8-9).”
언제나 그렇듯 서로가 틈을 노렸다가 생존을 위해 약탈하고 침노하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아말렉이 시글락을 침범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북쪽 아벡 전투에 동원된 것을 알고 이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을 때 아말렉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원래 시글락은 아말렉 사람들로부터 잦은 침략의 위협을 받던 지역이다. 이는 전쟁의 의미보다 늘 있는 침략으로 순간 기회를 엿보다 급습하여 노략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 사탄이 순간 기회를 엿보다 치고 들어오는 일상의 잦은 혈기나 짜증, 어떤 일에 대한 불안이나 불만과 같다. 즉 작은 일에 감사하지 못할 때 불만이 일듯 신앙이란 그렇게 찰나의 순간에 엎어지기도 한다. 이에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도, 순간마다 돌이켜 근신하지 않으면,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시 89:32).
하심과 같이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습 1:17).” 하여 ‘어떤 어려움’에 걸려 넘어지고 난 뒤에야 부주의하였던 것을 후회하는 경우와 같다. 곧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저녁 식탁에서 아내는 딸애와 대화를 나누며 이런저런 일에 자꾸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난다며 말하였고, 그때마다 늙으신 장모는 끼어들며 뭐라 참견을 하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더 짜증스러워하며 장모의 말을 가로막았고… 서로 그렇듯 말과 말이 섞이는 것에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 슬그머니 일어났다. 장모는 장모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그쯤에서 그만했으면 하는데, 그러다 서로가 또 감정만 상하는 말들이라, 뭐라 한들 들을 리 없어서 피하기는 했으나 마음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그런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잘 안다. 순간을 기다렸다가 틈을 노린다.
오늘 본문도 그렇듯 우선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시글락을 비웠다. 앞서는 아말렉을 침탈하였다. 더 나아가 블레셋으로 망명하듯 숨어 시글락에 기대 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다 그럴 줄 알았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어떤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내 그럴 줄 알았다!’ 하고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주가 다스리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오히려 아무렇지 않으면, 주를 멀리하고 더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데도 하는 일이 두루두루 잘 되면 그게 더 큰 일이다. 당장에야 그것이 나은 듯 멋모르고 산다지만 이내 더 힘들게 돌이켜야 할 때가 있다. 행여 그마저 없이 평안하다면, 하여….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73:4-9).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화가 나면서도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부러워서,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2-3).
우리가 신앙 안에서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오늘 이처럼 시글락에 의해 침략당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안이하고 해이할 때가 있다. 그러다 ‘다윗 일행의 가족들’이 ‘아말렉 사람’에게 모두 잡혀갔을 때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때 저들은 서로 울다 서로를 탓한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때에라도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백성들과 다투어 싸우지 않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하는 말씀 안에 모든 현상과 그에 따른 현답이 있다(삼상 30:4, 6).
우리의 일상은 어제 저녁의 식탁 자리와 같아서, 그땐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좋겠는데 장모는 일일이 참견하여 뭐라 훈계하려 들고, 그러다보니 아내는 더 짜증이 나서 ‘그 말을 하는 게 아니고’ 하면서 답답해하다 더 강한 어조로 감정을 표출하는…. 다행히 딸애가 앞에서 들어주고 호응하는 것으로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장모를 방으로 좀 모시고 들어갔으면 싶었는데, 그게 참….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나 그런 가운데서의 감정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거침이 없다.
요즘은 자주 늙음에 대해 생각하는데 몇 가지씩 다짐하는 게 늘어간다. 가령 했던 말 또 하지 않기, 참견하지 말기, 없어도 될 자리에서는 없는 듯 있는 듯 피하기, 혼자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기 등등. 우리의 나이 들고 늙음은 완고해지는 두께 같아서 고집은 세지고, 남의 말에는 별 것도 아닌데 서운해 하거나 노여워한다. 그런 거 보면 잠잠히, 주께 맡기고 기도한다는 게 말이 쉽지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늘 다윗은 백성들이 죽이려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으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6).”
순간적으로 감정은 소용돌이치는 것이다. ‘백성이 슬퍼서’ 순간 다윗을 돌로 치려하였다. 늘 그렇듯 모세를 죽이려 하고, 아론을 위협하는 게 백성들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이 얼마 전까지는 예수를 무리지어 따르며 왕으로 삼으려했던 백성들이다. 이는 순간 ‘마음이 슬퍼서’ 그렇단다. 슬프다는 것은 ‘쓰리다’, ‘괴로워하다’란 뜻으로 단순히 감정의 동요만은 아니다.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사 24:9).”
마음이 극도로 낙망할 때, 순간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이는 섣부른 선동이 군중들 마음을 격하게 하는 것과 같다. 곧 오늘 이 책임을 전가하여 ‘너 때문에’ 하는 ‘탓’으로,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아말렉을 건드렸었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27:8).” 더 나아가서는 다윗이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의 말을 좇아 시글락을 비우고 백성들 곧 군사를 이동시킨 게 문제였다.
그런 가운데 다윗도 위급하고 답답하였으나 저는 ‘하나님으로 용기를 냈다.’ 오늘 본문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라 표현한다. ‘그의’ 곧 ‘그 자신의 하나님’으로 이는 평소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의지와 그 대상을 표현한다. 또한 ‘여호와’란 칭호를 그대로 쓰는데,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한다. 이는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힘을 내다’란 의미로 ‘여호와 앞에서’ 가능하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확고한 신앙을 근거로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사소함으로 무너지기 일쑤다.
하여,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 37:8).
곧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하는 지혜가 있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이게 순간 화가 일 때 쉽지 않은 것인데, 그러므로 평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몸에 밴 습관 같아야 한다. 이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하고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를 바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경험치의 값으로 평소 자신의 간증이 많은 신앙은 그 몸에 밴 습관처럼 마음도 단단해진다. 그렇게 해서 다윗은 기도하였고, 주께 물었으며 확신을 가지고 저들을 뒤쫓아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19).” 오히려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20).”
뿐만 아니라,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21).” 너그러울 수 있었고, 이를 불량하게 여기는 자들을 다스리며,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23).”
오늘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공식 같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어그러진 길로 갔을 때,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형통하면 곧 이 사달이 난다. 그럴 때도 슬퍼하며 분을 내어 누굴 탓하기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용기를 얻을 때, 오늘의 어려움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일은 이와 같은 간증이 필연적이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67, 71).
그리하여,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1).
오늘 시편의 표제로도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 밝히고,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90:1-2).
하는 우리 신앙의 기본원리를 고백한다.
우리 생은 참으로 가벼워서,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3-4).
하여,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5-6).
이와 같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0).
그러니 오늘도 주 앞에 고하는 것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2, 14).
하여,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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