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52장 /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하현. 2025. 8. 21. 09:32

250824 주일

 

이사야 52장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사 52: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사 52: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들어가는 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기’란 인내가 필수이다. 더욱이 시험의 때에는 말씀으로 굳건하게 서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우리가 넘어지는 때는 시험의 때보다 안이할 때이다. 어려울 땐 주를 찾다가 평탄할 때는 주를 잊는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다. 저들에게 일러,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하신 말씀에서 오늘 본문의 요지와 연관 짓게 되었다. 빌라델비아는 고원 지대로 소아시아의 중심지였다. 여러 문화와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하여 모든 유행과 사상이 교차하여, 그런 가운데서 사데 교회는 악에 이끌리었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더욱 인내함으로 말씀 위에 굳게 섰다.

 

우리의 신앙은 환경적인 요인으로 성패가 갈리는 게 아니라, 인내함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으로 승리한다. 이에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8).” 곧 우리의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오늘 말씀에서 이를 갈구하여 본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사 52:1-3).”

 

이를 정리하면,

 

첫째, 깰지어다.

둘째, 힘을 낼지어다.

셋째,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넷째, 띠끌을 털어버릴지어다.

다섯째, 일어나 앉을지어다.

여섯째,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하는 것으로 우리의 ‘작은 능력’으로 할 수 있음을 요구한다. 실은 성령이 이를 할 수 있게 하신다. 우리는 그 마음, 작은 능력이 필요할 따름인데,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하심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증거로 삼는다. ‘시온’과 ‘예루살렘’은 주의 백성들이다. 우리 성도들을 지칭한다.

 

첫째, 시온이여 깰지어다: 이는 우리 영혼이 잠들었거나 무뎌졌음을 말한다. 스스로의 착각이나 망상에 사로잡혀 사는 게 인생이다. 모두가 앞날을 꿈꾸며 이를 인간 존엄의 권리라 여긴다. 허튼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불행으로 찾아올 때 정신이 번쩍 든다. 그때까지 ‘자각의 능력을 상실한 게 죄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둘째, 네 힘을 낼지어다: 그러기 위해 우리 안에 두신 성령의 힘을 의지해야 한다. 생수가 곁에 있는데 구덩이를 파서 물을 얻으려는 헛된 노력에 대하여,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곧 ‘네 힘, 주가 내 안에 계신 권능’으로 의지해야 한다.

 

셋째,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옷이 있다. 그럼에도 유행과 문화라는 누더기를 입고 금세 또 싫증을 내며 산다. 이에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슥 3:4).” 훗날 천국에 들어갈 때는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8).” 우리의 옳은 행실, 곧 그리스도로 덧입는 것이다.

 

넷째, 너는 띠끌을 털어버릴지어다: 세상에서 묻은 온갖 띠끌, 그 사소하고 먼지 같은, 별 거 아닌 진짜 같은 허상을 쫓아서 우리는 산다. 돈을 사랑함이 그것인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그러다 후회와 탄식만이 남는다. 이에 띠끌을 떨어버리라, 곧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다섯째,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곧 우리 신앙의 가장 큰 난제는 영혼의 나태함이다. 나태함은 무력함을 유발한다. 성도가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하였음에도 어린아이와 같이 젖을 찾는 꼴이어서,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12).” 그러면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동시에 나를 조종함으로 나태하다.

 

여섯째,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곧 세상에 끌려 다니며 시달리면서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었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애고 어른이고 다들 너무 바쁘고 부산하다는 것이다. 영적인 여유가 없다. 주 앞에 쉼을 얻을 시간이 없다. 그러다 핸드폰을 보고, TV에 넋을 놓고 있다. 곧 우리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목줄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눅 6:34).” 저마다 자신의 욕망으로 산다.

 

본문이해

 

본문은 “…내 백성이 전에 ①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그러므로… ③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4-5).” 여기서 ‘애굽’도 ‘앗수르’도 모두 세상이다. 그들로 주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고 있다. 요즘 보면 모든 방송 프로그램의 소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탄-데몬-악령’과 같은 소재이다. 전생이 어쩌고 미래가 어쩌고 하면서 성경을 무시한다. 하여 오늘 말씀은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6).”

 

우리의 ‘작은 능력’ 곧 주를 의지함으로 근신하고 깨어서 이러한 세상을 이길 때,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하여 오늘 우리는 정해야 한다. 세상과 함께 ‘데몬의 나라’를 추앙하여 살 것인가? 이를 문화라고 인정하면서 소홀히 자신을 거기에 둘 것인가? 아니면 그런 애굽, 앗수르에 주의 구원을 전하는 자로 살 것인가?

 

1. 구원의 좋은 소식(1-12)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6).”

 

1) 구원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결과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7).”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고 구속하셨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9).”

 

3) 여호와께서는 열방의 목전에서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10).”

 

4)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권적 행하심의 결과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11).”

 

5)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은 온 세계에 전파되도록 의도되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7).”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시길,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6)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며 노래해야 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9).”

 

2. 메시아의 고난(52:13-53:4)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15).”

 

오늘 본문 결말은 다음 장 53장까지 이어지면서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을 한다. 53장은 고난당하실 ‘그는’(2), ‘그는’, ‘그를’(3), ‘그는’, ‘그는’(4), ‘그가’(4번)(5), ‘그에게’(6) 등으로 연거푸 나타내신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하실 메시아이시다. 그는 우리가 믿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메시아의 지혜롭게 행하심과 그에 따른 형통하심과 존귀케 되심을 선포한다. 오늘 본문의 결말은 이를 주목하게 한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52:13).”

 

곧 당시에도, 오늘에도 세상은 저를 일개 한 사람으로 혹은 어느 한 종파의 창시자로 취급하면서 우리의 선택의 영역으로 축소하였다. 그렇듯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14-15).” 곧 우리는 보리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다급한 일은,

 

1) 스스로 정결하게 하라.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11).”

 

2) 하나님이 우리를 호위하신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12).”

 

3) 그리스도는 존귀하시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13).”

 

4) 깨달을 것이다.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14-15).”

 

이 모든 일이 너무 늦지 않도록,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30).” 어느 부자처럼 뜨거운 지옥불에서 뒤늦게 후회하지 않기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눅 13:28).” 부디 그런 일이 없게 하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