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7 주일
이사야 54장
헤세드의 은혜, 하나님의 인자하심
사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사 54: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사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들어가는 말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10).”
삶에 있어 모두는 곤고함과 어려움이 끝이 없다. 시대가 어떠하든지 그 가운데 슬픔을 당하고 고통 중에 있는 영혼들은 항상 있다. 이에 말씀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의 슬픔’을 위로하신다. 고통을 없이하여 주실 것이다. ‘헤세드’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자비하심을 뜻한다.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을 가리킨다.
오늘 10절은 이를 증명하듯 설령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의 하나님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단정적으로 전달한다. 이에 대해 이사야는 분명히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곧 모든 인류의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공평하시나 이러한 ‘일반적 은총’보다 한 단계 더 ‘특별한 은총’으로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하고 우리를 지목하고 부른다.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심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 두 쪽이 나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것이다. 이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임을, 그 이유와 목적이 ‘너를 위한 것임을’ 약속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헤세드’는 일반 은총으로의 모든 인류와 자연을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곧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하는 하나님의 분명한 언약의 표현이고 증표로써의 인자하심을 표현한다.
이에 대하여 에스겔 선지자는 무려 다섯 번에서 여섯 번에 걸쳐서 ‘그들’ 곧 ‘우리를’ 따로 지칭하여 지목하였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 37:26-27).” 이에 오늘 본문은 앞서 ‘종으로서의 메시아’에서 ‘언약을 실현하는 메시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한다.
본문이해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3).”
앞서 53장에서는 ‘여호와의 종의 구속사역’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는 ‘우리의 죄의 삯’을 두고, 하나님의 결단을 확인하였다. 곧 우리를 대신하여 오신 메시아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행위 언약’을 죄의 삯으로 ‘죄 없으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하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의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심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주 안에 있는 영생”을 누리게 하셨다(롬 6:23).
이와 같이 오늘 본문의 중심은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입증하는 ‘그 메시아’ 곧 ‘고난의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곧 우리의 죄의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앞서 52장 13-15절에서 서론적으로 <고난의 종>을 예고하였고, 이를 53장에서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그렇게 ‘고난의 종’은 우리 죄를 위해 온갖 수모와 멸시와 죽임을 당하심으로, 그를 우리는 배척하였으나(1-3, 7-9), 그럼에도 끝내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그리스도는 우리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셨다(4-6). 이에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고 승리하셨다(10-12). 이것이 앞서 전달하고자 하는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고난의 이유와 목적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하는 말씀으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로 귀결된다. 그가 당하신 고난의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는 것,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그러므로 그의 고난의 필수 요건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피 뿌림의 제물’이 되셔야 했다는 것,
첫째,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필수불가결한 조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둘째, 그리스도는 양과 염소와 소를 대신하여 단 번에 드리는 제물이 되셨다.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셋째, 그로 인하여 우리의 날이 영원한 구원을 얻었다.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넷째, 이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이루어진 일이다.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53:10).
그러나 그의 고난을 우리는 배척하였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3).” 그러므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곧 저의 수모와 고통과 죽음으로 우리가 죄에서 나음을 입는데 우리는 이를 배척하였고, 그럼에도 이 고난의 결과는 우리가 나음을 입는 결과로,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하심을 이루어졌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으로 ‘헤세드’이다. 곧 우리로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심은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인자하심으로였다(11-12). 이어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헤세드의 메시지’가 전하여진다.
첫째, 가까운 미래에 있을 구원의 회복을 알린다(1-10).
둘째, 먼 미래에 성취될 영원한 영광을 알린다(11-17).
※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9:25-26).”
도식적으로나 문자적으로 우리는 성경에서 누누이 지목하고 지명하여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저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오늘 이스라엘의 종교로 보지 않는 이유다. ‘하나님의 백성’ 곧 주를 믿는 모든 인류를 상징할 뿐이다. 가령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할 때 그만큼 확신에 찬 은유의 표현이지 정말로 된장, 고추장을 일컫는 게 아니다. ‘이 주먹이 운다’ 할 때 설마 주먹이 눈물을 흘릴 것을 주장하는 바보는 없다.
바울의 설교에서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27-28).” 할 때, 이는 오늘 우리가 주를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과 같다. 하여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 하는 설교가 우리를 향한 것임을 말이다.
이에,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는 바울의 설교에서 ‘모든 사람’은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으로 국한되어 오늘 우리 자신이 그러한 사실을 알게 한다(11-13). 하여 오늘 본문(사 54장)에서 그 대상으로,
첫째, 홀로 된 여인의 자식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1).”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전할 뿐이고, 자신조차도 구원에 있어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 곧 헤세드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때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은 세상에서 외따로이 떨어져 소외되고 근신하는 자를 일컫는다. 이때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는 ‘우리’는 바로 이 ‘홀로 된 여인의 자식’ 같은 믿음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택하심 가운데 있는 우리다.
그런 우리가 ‘장막의 확장’으로 그 안에 포함되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2).” 이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드러나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들로서 우리를,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6).” 곧 우리는 인류 역사 속에서 ‘홀로 된 여인의 자식’들 같이 살아온 민족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우리의 조상은 그러하였다.
하여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11-12).” 그뿐인가?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13-14).” 하여 ‘홀로 된 여인의 자식’들로 우리는 오늘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다.
둘째,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4, 14).”
더는 성경의 변방의 나라로 우상의 민족으로 살지 않는다. 더는 홀로 과부 때의 수치를 당하는 그런 민족의 후손이 아니다. 곧 우리는 ‘재건될 찬란한 성’의 주인으로 산다(11-12). 그로 인하여 우리를 대적하던 모든 관습과 습성과 문화는 ‘무력한 적’에 불과할 것이다. “보라 그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너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너로 말미암아 패망하리라 …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5-17).”
나오는 말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3-24).”
우리는 이와 같은 피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원의 회복과 영광을 누려야 한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하여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우리 삶에서, 장차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확신하고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이에,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의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하심과 같이,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7-8).” 하시는 오늘 말씀으로 다시금 확신을 재확인한다. 그러므로 이제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13-14).”
우리 하나님의 인자하심, 헤세드의 은혜로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오늘을 살고,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하시는 주의 자비하심 앞에서, 이는 엄연히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를 우리 남은 삶에 더욱 깊이 새김으로, 아멘.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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