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31 주일
이사야 53장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들어가는 말
신앙은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것일까? 그래서 종교 하나쯤 마음에 품고 사는 게 인생에 좀 나은가? 여느 종교는 차치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설마 이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를 부정한다. 아니 자기를 부정할 것을 명령하신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하는 말씀 앞에서 우린 주춤하게 된다.
더하여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하시는데 이는 또 어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란 대체 무엇일까? 바울은 이에 대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하면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종교 하나쯤’의 신앙으로 마음의 안정을 위한 게 아니란 소리다! 예수께서 오셔서 죽으심으로까지 이루신 것은,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4:14, 21:4).” 곧 ‘말씀을 이루려’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요 12:38).” 오늘 말씀은 이를 증거 한다.
본문이해
이사야는 유다 왕 므낫세에 의해 톱으로 켜져 순교를 당했다고 알려진다. 그럼에도 므낫세는 노년에 회개하고 성전을 성결하고 우상을 타파하였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므낫세 같은 이도 용서하셨다. 이에 오늘 1절에서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하고 묻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총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6:10).” 이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인간의 노력으로가 아니다.
이사야서의 주제는 <심판과 구원>이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이 61번, ‘영광’이 38번, ‘거룩한 자’라는 말이 30번, ‘남은 자’라는 말이 14번 사용되었다. 이러한 말씀이 성경의 주된 내용이다. 곧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곧 고난의 종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신 이 말씀을 이루려하심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함께 고난의 이유와 목적을 살핌으로 이를 담당하신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딜레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2-3).”
죄의 삯은 사망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이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곧 아직 때가 아닌 가운데 ‘그 땅의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완전한 자’라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그럼 왜 그 땅의 흙으로 지으셨는가? 우리의 의, 곧 이 완전함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운행하실 때이다.
그런데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행위의 언약’을 인간이 자기주장으로 판단하고 선택한 것이 죄이다. 이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결국 그로 인하여 인간은 ‘영원한 사망의 삯’을 물어야 했고, 이는 ‘하나님의 은사’로만이 지불할 수 있어서,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시 49:8).” 곧 우리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여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메시아,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야 했다. 즉 죄 없으신 몸으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직접 우리 죄의 값을 담당하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의 죄는 죄 없는 자가 그 죄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딜레마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면서 동시에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실 수 없는 공의로 심판자이심으로, 그럼에도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벌을 대신 감당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여 오늘 본문은 밝히는 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
2. 고난의 종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3-5).”
앞서 52장 13-15절에서 서론적으로 <고난의 종>을 예고했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이에 오늘 본문은 본격적으로 ‘고난의 종’의 모습을 언급한다.
종은 비천한 출신으로 탄생하셨다. 온갖 멸시와 천대를 자발적으로 감내하셨다. 급기야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이는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회개와 감격과 기쁨의 결과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도 밝히는 바, 우리는 이를 배척하였다(1-3, 7-9). 그럼에도 주가 고난을 당하셨다(4-6). 이를 감내하여 승리하셨다(10-12). 특별히 오늘 본문은 40장 이후에 끊임없이 암시와 전망으로 우리에게 알리었다.
그렇게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40-47장)과 결국은 저들에 의해 멸망할 것(48:1-52:12)을 말이다. 오늘에도 이와 같은 암시와 전망은 유효하다. 여전히 세상은 바벨론과 같다. 이는 국가나 어느 집단의 차원이 아니다(48:1-52:12). 이는 개인적이면서 계통적이다. 철학이거나 사상이거나 문화로 흡수되어, 거듭 우리를 포로로 삼으려 하고, 언제든 우리를 멸망시키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어떤 결과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성취된 구원의 귀결이다.
3. 고난의 이유와 목적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1) 고난을 당하신 이유: 죄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그러므로 고난의 목적은 우리로 죄에서 속량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 이는 구약의 유월절 제도와 맥을 같이 하고, 이삭을 제물로 바친 일과 연관이 있다.
2) 고난의 필수 요건: 속죄는 피 뿌림의 제물로 가능하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10).” 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3) 고난 중의 고난: 결과적으로 저는 배척을 당하셨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3).” 이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하여 세상이 복음을 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4) 고난의 고통: 종의 고난으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6).” 곧 저의 온갖 수모와 고통과 죽음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5) 고난을 태도: 그는 순종하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7-9).”
6) 고난의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11-12).”
나오는 말
오늘 이 예언의 말씀은 이사야 당시 그 후 700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것으로 전부가 아니다. 예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는 부분은 십자가에서 선포하신 것처럼 “다 이루었다” 하심으로 모든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 곧 그의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하여 오늘 이사야서 53장은 성경의 꽃이라 하겠다. 우리에게 전하시는 꽃다발 같다. 구원의 축복이 전해진다. 고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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