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아 1:16-17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1-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시는 세상에서 주가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노래’다. ‘솔로몬의 아가라’ 하고 시작되는 오늘 본문은 앞서 전도서에 이어 묵상하는 것이라서 그런가, 해 아래 세상에서의 허무한 가운데 주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놀랍고 귀하다. 실제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인간보다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지고 살았다. 그 발단은 간단하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우리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나누고 보호하는 데 있어 이를 마음에 들어하신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10).” 그러므로 저에게 특별한 지혜와 복을 더하셨다.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11-12).”
이에 솔로몬에게는 각종 초목과 짐승, 새, 기어 다니는 것, 물고기 등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삼천여 편의 잠언을 말했으며, 일천 다섯 편의 노래를 지었다.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4:32-33). 당시 이와 같은 저의 지식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어서 오늘 날 검색하여 AI가 답을 이르는 것과 같았겠다. 이에 오늘 ‘아가’라 하면 히브리어로 ‘노래 중의 노래’라 하는 의미이다. 솔로몬이 지은 많은 ‘노래 중에 최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다.
당시 히브리인들의 노래는
‘하나님의 능력’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시 21:13).
‘사랑’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59:16).
‘은혜’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85:1-2).
등의 주제로 쓰였다. 오늘 여기 아가서는 곧 ‘하나님의 은혜, 사랑에 대하여’ 솔로몬 자신이 경험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1:5, 3:7, 9, 11).”
이는 곧 주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얼마나 아끼시는가를 연상하게 한다.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사랑을 빗대어 성경으로 들려주고 계신다. 이에 대하여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1:3).” 하는 오늘 본문의 첫 소절이 눈에 띈다. 여기서의 기름은 지시적인 의미로는 감람나무 열매를 따서 짜낸 식물성 기름이다. 그 용도는 식용(출 29:2, 23)이나 등잔불 기름(출 27:20)으로나 관유(출 30:24-25)나 의료용(사 1:6)으로나 향유(시 23:5)로 쓰였다. 이에 오늘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향유’로 그 관심을 집중시킨다. 즉 솔로몬 왕에게 뿌려진 향유로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곧 우리는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라 명명한 바울 사도의 설교와도 일치한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이는 우리가 꾸며서 어찌 드러내며 사는 것으로 감당할 수 있는 향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떠하든지 누군 이를 사망의 냄새로 맡고, 누군 이로써 생명의 냄새로 맡는다. 그러니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16).”
곧 우리 삶이 주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쓰인 ‘그리스도의 편지’라고도 하였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3:3).” 하나님이 영으로 쓰여 돌판에 새겨진 것 같아서 우리 마음 판의 확신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 읽히든지, 보이는 모습 그 자체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이와 같이 오늘 솔로몬으로 예표 된 그리스도께로부터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와 능력 등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우리 안의 어떤 마음, 그 마음 판에 새겨진 어떤 믿음으로의 확신이 오늘도 나를 이 아침 주 앞에 불러 앉힌다. 그렇게 하여,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28).” 나로 하여금 담대하게 주의 이름을 부르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심이다. 이로써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29).”
말씀은 이처럼 하나를 향해 시선을 두게 하는데, 이는 곧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데서 가만히 말씀을 되새기게 한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한 사람에 대한 단순한 호칭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면서, 그 사람의 전인격을 대변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내포한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따라서 본문의 이와 같은 표현은 솔로몬 자신이 ‘쏟은 향 기름’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즉 솔로몬이 예표하는 성령으로, 하늘의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그리스도를 암시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오늘을 살면서 드러나는 냄새, 감출 수 없는 향기 같은 것으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하심은 ‘결혼하지 않은, 순결한, 젊은 처녀’를 뜻하여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하심과 같이 여기서 시점은 다시 ‘술람미 여자’와 대화하는 ‘예루살렘 딸’들, 곧 성도들을 가리킨다. 곧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의 냄새로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는 발자취가 되어준다. 곧 서로의 사는 모습에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 개개인의 마음과 그 중심을 엿볼 수 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1:5, 2:7, 3:5).”
어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누구와 같은 은혜를 덧입고자 하여서, 어느 교회가 또는 저가 하는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그러하기를… 마치 이런 마음이랄까? 한참 글을 쓰면서 나는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비롯하여 <현의 노래> 등등 그의 수필과 소설을 사랑했고, 저의 문체나 그 호흡을 내 것으로 갖고 싶었다. 무슨 모임에서 시를 쓰던 윤의섭은 당시 <말광량이 삐삐의 죽음>을 시집으로 갖고 있었는데, 자나 깨나 먹고 쌀 때도 자신을 온통 시를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그때 그의 진지하던 이 말이 나는 가끔 생각난다. 하물며 우리가 주를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여 산다고 하면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하는 고백 앞에서 이를 바라는 간절함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순결한 성도로서의 ‘예루살렘 처녀들’로, 술람미 여인으로, 우리가 갈망하는 ‘왕의 사랑’이 이상한가? 이러한 우리를 향해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아 3:4).” 우리를 놓지 않으려는 사랑하니! ‘침궁’은 말 그대로 사랑하여 은밀하게 갖고자 하는 내실로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표현이다.
이에,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하여,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호 11:4).”
이와 같이 주가 나를 사랑하시는 데 있어서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 1:5).” 곧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부탁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엡 5:22-33).” 하는 데서 우리는 또한 그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아 1:5a)” 피부가 햇볕에 그을려 거무스름하고 짙은 것이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5b).” 하고 묘사하고 있다. 게달의 장막은 북 아라비아 지방 등을 다니며 유목 생활을 하는 자들로 그 장막은 검정색 또는 암갈색의 염소 가죽으로 만들어졌다(겔 27:21).
그렇듯 볼품없는데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하는 것으로 우리의 검으나 볼품없어 오가는 길에 쓰일 뿐 초라해도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여겨주심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름도 없이 초라한 신분으로 그 피부 또한 게달의 장막 같이 검으나 아름답게 여겨주시는 사랑의 시선을 느낀다. 이에 오늘 우리로 하여금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묘사는 감미롭다.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하고 부르시면서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8).” 하심으로 우리 가는 길이 서로가 서로에게 길라잡이로 읽히게 한다.
그런 마음의 나의 이 묵상 글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누구에게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는 데 있어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도 같다. 그럴 때에 주가 다 예비하셨음으로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9).” 이 힘은 강하고,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10).” 아름다워서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11).” 주가 귀히 새겨주신다. 그렇게 주가 여기 계시니,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12).” 이는 실질적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13-14).”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 된다. 몰약은 남부 아리비아나 인도지방 등지에서 채취한 액체나 응고한 고체의 방향(芳香) 물질로 관유나 향유로 쓰이고, 시체의 방부하는 데도 쓰인다. 곧 오늘 우리의 ‘이 시간’이… 나는 이른 새벽 주 앞에 앉아 말씀을 묵상하고 이 글을 쓰고, 누군가는 어떤 상황에 이 글을 읽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관유와 향유가 되어준다.
이에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여기서 엔게디 곧 ‘염소 새끼의 샘’이란 뜻으로, 헤브론 남동쪽 24km 지점. 사해의 서쪽, 유다 광야의 남동쪽에 위치한 한 성읍. “닙산과 소금 성읍과 엔 게디니 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더라(수 15:62).” 곧 이곳은 다윗이 그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숨었던 곳으로, 이를 ‘고벨화 송이 같다’ 하는데, 헨나(Henna)라는 작은 관목으로 그 향기가 진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솔로몬 왕을 향한 달콤한 연정(戀情)을 은유하는 표현이다.
이에,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아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15-17).” 하면서 오늘 이 사랑의 노래가 첫 장을 넘기게 한다. ‘네 눈이 비둘기 같다’ 하심은 노아의 홍수 때 마른 땅을 찾아냈던 그 시선과 같고,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로도 쓰였으며, 이를 온순하고 순결한 성품으로도 나타낸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한 번 쉬이 읽히는 글이 아니라, 여러 번 호흡을 나누어 시선을 모아 읽어야 하는 내용으로 그냥 읽어버리면 난독과 난해를 면치 못하지만 한 구절, 한 단어 단어마다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 깊고 또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우리의 눈이 맑고 깊어서 순결하여, 아름다운 인간성을 나타내는 것일 텐데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는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에덴동산을 연상하게 하는 저 본향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가는 여정의 노동가 같다. 그리하여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로구나.” 어느 훗날 그러나 동시에 오늘 이 자리에서도 느끼곤 하는,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시 92:12-13).
이 놀라운 영광을 찾아서 ‘술람미 여자와 솔로몬 왕이 거하는 안식처’ 곧 우리의 영원하고 아름답고 견고한 하나님의 나라, 그 품을 연상하게 한다. 이에 오늘도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아 1:8).” 묵묵히 또 무던하게 앞서 가는 주의 발자취를 따르며,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16-17).” 그리하여,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시 14:4-5).
오늘 우리의 현실이 어떠하든지, 나의 이 한 날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7).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0) | 2025.11.25 |
|---|---|
|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0) | 2025.11.24 |
|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0) | 2025.11.22 |
| 말씀은 순결함이여 (0) | 2025.11.21 |
|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0) | 2025.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