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하현. 2025. 11. 20. 05:40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

전 10: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시 11:4

 

 

흔히 열 가지 자랑보다 한 가지 허물로 인해 일을 망치게 된다. 오늘 첫 구절의 말씀은 은유적이다.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1).” 곧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한다.’ 우리의 ‘적은 우매’는 그럴 수 있는 어떤,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당시 고대 근동에는 파리가 종종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식물성 기름에 빠져 죽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하는 일이 흔했다. 이를 비유로 하여,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9:18).”

 

하는 말씀을 문학적으로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찮고 해로운 것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에 악영향을 끼쳐서 부정적인 것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의 ‘음행한 자’로 인하여 교회 전체의 순결성과 거룩이 더렵혀지며 훼손된다고 경고한 사도 바울의 말 속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전 5:1).” 결국 이 일은 그렇듯 허물과 죄악으로 쉽게 물들 수 있는 우리의 연약함을 경고한다. 이를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던가?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7).”

 

비유가 주는 암시처럼 ‘적은 어리석음’이라 해도 이에 따른 영향력은 크다. 지혜나 존귀보다 강하다. 곧 우리의 정(淨)함을 부정하게 할 수 있다. ‘적은 우매’가 이처럼 지혜와 있을지라도 결정적 결점 한 가지가 그 모든 장점을 상쇄시킬 수 있다. 병이 옮지 건강이 옮지는 않는다. 훌륭한 장점을 많이 가졌다 해도 한 가지 단점으로 그 모든 장점이 가려지고 훼손될 수 있다.

 

오늘 날에도 뛰어난 능력과 탁월한 지혜를 소유했으나 그가 범한 잘못이나 치명적인 약점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여 ‘이만하면 훌륭하다’ 싶은 것으로 자신에게 걸려 넘어지게도 한다. 흔히 또 ‘나만큼만 하라 그래’ 하는 따위의 자부심이 결정적으로 남을 비판하는 데 있어 그 도리를 무너뜨린다. 진영논리가 그렇듯 서로를 공격하고, 자신의 허물을 덮고자 더 큰 무리수를 둔다. 거짓에 거짓을 더하는 것을 지겹도록 보고 있다. 특히 내란재판이 한참 진행 중인데, 나는 그 중계를 보며 사람의 얼굴과 말이 가리고 있는 진실과 그 위의 거짓이 가증스러울 정도이다. 누구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

 

우리 안의 ‘썩은 파리’ 곧 이 놀라운 죄성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두둔하고 감추고 거짓으로 꾸며 살지만 악취를 낸다. 자신들의 결점을 살피고 그러한 결점을 제거하고 보완하려는 것보다 은폐하고 덮고 합리화하여 거짓으로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 역겹다. 우린 누구나 그러해서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삼상 25:28).” 하는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 속에 답이 숨겨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하신 주님의 말씀도 그와 같다. 곧 이를 다시 바울의 설교로 들으면,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6-7).” 곧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옳은 쪽’으로 정하고 끝까지 가야 한다.

 

이에,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2).” 하는 오늘 본문의 의미도 그와 같다. 여기서 ‘오른편’ 이라는 말은 신구약을 불문하고 ‘영광’, ‘의로움’을 상징한다. ‘왼편’은 상대적으로 ‘불의’, ‘열등함’, ‘무능력’을 상징한다. 즉 지혜자의 마음이 오른편에 있다는 말은 그의 마음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살려는 의지가 강함을 알게 한다. 곧 진정한 지혜란 선과 의로움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법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편은 이를 첫 노래로 부르며,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 1:1-2).

 

하고 포문을 열었다. 지혜는 이르길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 이는 그 길, 주의 길 위로 묵묵히 준행하며 늙는 것이 복됨을 알게 한다. 이에 예수님도 더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하심도 그만큼 이 한 길을 묵묵히 가기란 쉽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나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이 늘 우리의 가는 길을 흔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노아처럼, 무려 120년을 무던히 방주 짓는 일로 자신의 여생을 다하는 일이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하는 잠언 속의 의미가 짐작하게 한다. 하다못해 이 땅에 살면서도 어느 한 가지 일에 묵묵히 대를 이어 그들 가업으로 삼고 사는 것도 자주 본다. 흔히 장인이라 할 때 그 일에서 ‘백발’이 되기까지 한 길 걷는 자로 살아온 훈장이겠다. 상대적으로 우매한 자들은 흔히 자기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이 있는 것 같다. 손바닥 뒤집듯 이랬다저랬다 하면서도 스스로 옳다 여긴다.

 

결국 지혜는 일깨우길,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5:3).” 그렇게 바쁜 사회에 살고 있다.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바쁜 것을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는 사회에서 저들은 또 무던한 것을 꺼리거나 경멸한다. 잔걸음으로 자신의 바쁜 와중을 옳은 줄 아는데 보면 그 일들이 늘 하찮다. 온갖 사람의 경조사를 다 챙겨 쫓아다니고, 어디 기웃거리며 옮겨 다니는 파리처럼 여기 갔다 저기 앉았다 진득하니 말씀을 묵상하거나 누구의 말을 경청하지 못한다. 그런 자의 특징은 또 자기 말로 늘어지기 일쑤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을 극도로 아끼고 삼가 삶의 태도를 가지런하게 단순화한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는 데 집중하고자 함이다. 우리 곁에서 말로 인해 자신의 우매를 드러내는 경우는 허다하다. 작은 말 한 마디로 분쟁과 다툼이 인다. 누구라도 그들 말에 끼어보려 참지를 못하겠다. 신중히 생각하고 말은 가급적 적게 하는 게 지혜이다. 깊이 생각하되 말은 삼가는 것이 성도가 더욱 주를 바라는 일이다. 지혜는 이를 자주 언급하였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잠 12:23).” 또한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17:27).” 그러므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하여 말에 실수가 없는 자로 사는 일이란 참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4).” 하는 오늘 말씀은 유용하다. 주권자는 통치자로 여기에서 왕을 가리키지만 나아가 우리의 모든 주권자는 하나님이심을 상기하게 한다. 그럴 때 설령 내 삶에 고난이 왔을 때, 욥과 같이 이를 신뢰함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는 다시 바울의 설교에서 그 뜻이 명확해지는데,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고로,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히 12:9).” 하는 성경의 이치에서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10).” 하여 오늘의 어떤 어려움이 늘 우리로 찌르는 여러 현실이 실은 주를 더욱 바라게 한다.

 

하여,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하는 이와 같은 논리와 그 관점으로 오늘의 고난으로 주를 바랄 때,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하시는 성경의 이치를 바로 듣게 된다. 이때 화를 낸다는 의미로 ‘분(憤)’이나 ‘노(怒)’를 발하여 주를 멀리하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떤 이는 아이가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이를 두고 기도하다 교회를 떠났다. 하나님을 등진 것은 자신의 뜻을 우선하느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망각해서이다. 하여 성경은 여러 각도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분을 내거나 노를 발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잠 29:11).”

 

곧 우리의 죄로 인하여, “내가 질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말하였거니와 그 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겔 38:19-20).” 그러므로 오늘 지혜는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 것을 강조한다. 다시 보면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어떤 어려움이 오늘 우리의 가는 길을 위협한다 해도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하심은 오늘 이 자리, 이 사역을 주가 맡기신 것으로 여겨 공손히 주의 뜻을 따를 때, 우리의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 하는 데서 다시 주의 이름을 부른다.

 

이는,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8:3).” 한 지혜자의 말과 같이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삼가 주권자에게 온전히 순복하는 것으로 복이 있음을 알게 한다.

 

이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내 삶의 중심에 두면 둘수록 당장의 어떤 현실에서 주의 뜻을 배척하려는 자세를 조심하게 된다. 누구와 어떤 말을 하다 저가 나의 오늘을 답답하게 여길 때도 전에처럼 조급하게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주께 맡기게 된다. 더욱 더 주를 의지하게 된다. 말씀을 수용하는 태도로 순응을 익혀간다. 비록 나는 늘 실수와 잘못이 되풀이 된다 해도 겸손히 이를 인정하고 대가를 감내(堪耐)함으로,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미 7:9).”

 

결국 주가 내 편이심을 안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 56:9, 118:6-7).

 

하여 나는 오늘도 내가 주의 것임으로 안전함을 느낀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그러므로 뭐가 어떻든지, 오늘의 사정이 어떠하고 나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해도 내 입으로 주를 인정함으로,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4).” 그러므로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30:10).” 나의 세 치 혀로 누구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 3:22).”

 

그러므로 오늘도 묵묵히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2-3).” 하시는 말씀 앞에 앉아서, “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4).” 오직 주를 바란다. 그렇게 오늘도 이 시간을 갈고 닦으며 나의 영혼을 연마하는 것으로, 말씀으로 지혜를 삼아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10).” 행여 나의 영혼이 게으르지 않도록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18).” 다시 또 돌보고 다듬어서 올 겨울을 난다. 이에,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시 11:1, 3).

 

곁에서 누가 어떤 말로 뭐라 하든지, 말씀으로만 굳건할 수 있도록… 그럴 때,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4-5).

 

결국,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