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하현. 2025. 11. 22. 05:37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1, 13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 13:5

 

 

말씀의 결론은 주를 경외함이다. 말씀이 목표하는 바도 우리로 주를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에 오늘 지혜는 전하기를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하고 말씀을 정의하고 있고…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여 우리의 본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다’고 함은 짐승을 몰 때 자극을 더해 사용하는 ‘날카로운 것’이다. 곧 그게 무엇이든지 지혜자의 말씀의 바르게 받고 이에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에 대하여 능력을 나타낸다. ‘지혜자’는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그의 계시에 근거한 신령한 지혜를 소유한 자이다. 그의 말에 능력이 있음은 그가 뿌리를 두고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질러 쪼개기까지’ 하는 말씀으로 입증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이에 ‘말씀’은 일차적으로 잠언 모음집을 뜻하지만 결국 성경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이것을 읽고 묵상할 때에 우리에게는 ‘잘 박히는 못’이라 하여 우리 인생에서 뿐 아니라 영혼의 날들에서 긴요하고 효용성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다 ‘한 목자가 주셨다.’ 지시적인 의미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왕과 같은 이이다. 함축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양으로 비유하여 저들을 먹이시며 기르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곧 오늘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시 23:1, 80:1).

 

본문에서 화자는 자신에게 이와 같은 기록의 말씀으로 영감을 주신 이를 지칭한다. 그는 말하길 ‘여러 책을 짓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피곤할 뿐이다. 이는 전도서 서두에서부터 밝혔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1:17-18).” 곧 이는 다 해 아래에서 허무한 일이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2).”

 

즉 전도서의 주제와 통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아의 노력이나 지혜의 허무를 암시한다. ‘공부하는’ 것은 ‘갈망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좋게 여겨 ‘열심히 추구하다’, ‘탐구하다’의 뜻을 가진다. 그러한 노력이 해 아래에서는 허무하나,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의 지키는 것이 옳다.’ 이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3:14).”

 

곧 오늘의 이 모든 상황과 여건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유익하였다. 이 모든 말씀의 목적은 ‘하나님’으로 주를 ‘경외하다’는 이를 바로 대상을 삼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으로 복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 또한 하나님의 뜻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 14).”

 

따라서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이고 그분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의 본분’으로 삼은 게 지혜이다. 우리가 사는 데 따른 모든 것. 본분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 곧 말씀에 순응하고 순복함으로 명령을 지키는 것이 된다. 이것이 실은 모든 사람의 의무다.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선한 사업과 희락을 추구할 것을 권면하고, 불확실한 해 아래서의 세상은 그 최선의 생활 자세가 구제하고 선한 사업에 힘쓸 것이라고 앞서 밝히셨다. 그러면서 인생의 기쁨을 추구할 것을 권면하였다. 곧 심판을 전제한 희락 추구는 성도의 기쁨이 어디에 구심점을 둬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즉 ‘하나님이 주신 삶을 즐기라.’ 이를 자주 언급하였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전 2:24).”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26).”

 

하여,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3:12-13).” 이때에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5:18).”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8:15).”

 

이는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바,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서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9:7).” 이를 바로 알고 살 때에 ‘하나님이 주신 삶을 즐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도서에서 말하는 허무함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해 아래 인생에게’ 전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삶의 교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기본적으로 이해할 때,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11:9-10).” 하고 외친 후에 오늘 본문으로 이어지면서 전체 내용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하고 이어지는 오늘 말씀의 전반적인 흐름은 노년의 때를 연상하게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주로 강조한 바,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란 표현도 같은 의미로 전달되었다. 우리의 모든 일을 행할 때에 항상 하나님의 면전에서 행하듯 살아야 한다. 해 아래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로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하시는 말씀의 근본이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결국 심판의 때에 주 앞에 섰을 때 우리로서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안전하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1).”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거나 죄에 매여 살아갈 이유가 없다.

 

하여 오늘 본문은 이를 위해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10).” 하는 것으로 이 말씀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힌다. 바울도 이를 묵상하였을 테고, 이르기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여기서 ‘청년의 때’을 운운하는 것은 젊을 때는 겁이 없다. 모든 게 왕성하여 늘 그럴 줄 안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서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전 12:3-5).”

 

보면 그 나이가 되었는데도 젊게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겉을 치장하고 삶의 활력을 운운하는 것에서 오히려 안쓰럽다. 그러느라 완고함이 더하고 자기 멋대로 화려함을 구사한다. 요즘 소위 누구처럼 화려함과 고가의 명품으로 자신의 부족을 대신 채울 수 있을까 하여, 열등감으로 나라를 망쳤다. 많은 사람이 저로 인하여 감옥에 가거나 그릇된 길로 행하였다. 그러나 지혜는 이르기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하여 바울의 적절한 말씀으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하는 데서 중심을 잡는다. 어제는 딸애가 아내를 데리고 잠실 어디로 세계적인 무슨 서커스공연을 갔다. 전전날부터 딸애가 어리굴젓을 잘못 먹고 노로바이러스로 고생하다 간신히 그 예약한 공연을 간 모양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아내는 들뜬 목소리로 예약석이 VIP석으로 일인당 얼마고 자리가 맨 앞에 따로 마련된 자리라면서 흥분하였다. 처음이고 좋아한다고 해서 결혼할 아이가 마련한 것이다. 나에게 미안해하는데 오히려 내가 미안하기도 했다.

 

세상에서의 ‘그런 것’에서 무뎌지게 하심이 나는 복이다. 젊을 때는 어떻게든지 누리고 살아야 할 것 같았고, 이를 위해 생을 살다가는 게 복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3, 40대까지 추구하던 나의 날들을 꺾으심으로 주 앞에 두 손 들게 하신 오늘이 복이 있다. 나는 가끔 내가 못하게 된 것으로 감사한다. 예전에 젊은 날에 추구하였던 것들의 허상을 깨닫는 데서 복이 있음을 안다. 성경도 이르시는 바,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가끔은 남들처럼 또는 누구와 같이 ‘어떤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것이 헛된 것임을 나의 나 된 것으로 알게 하심이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시는 말씀으로 나는 오늘의, 지금의, 나의 약함을 사랑한다. 괜히 마음 쓰고 미안해하는 아이들이나 아내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다가 그러는 것도 저들로서는 도리라 생각하여 더는 그런 소리도 안 한다. 누가 나의 이런 약함을 두고 갑론을박할 때 그 또한 그냥 둔다. 모든 이의 시선이나 평가에 개의치 않는다.

 

다만 주를 바람으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하여 주를 경외함이란 무엇일까? 묵상을 하여보니 주신 이 모든 한 날 한 날의 수고로 족한 거였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14).” 이와 같은 날에 주 앞에 섰을 때 앞서 사도 요한의 설교에서 처음 표현되는 ‘대언자’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요즘 이런 저런 일로 재판 중계를 보고, 변호인들의 태도나 그 막중함을 보면서 새삼 그 귀한 역할을 또한 묵상하게 된다.

 

누군가 날 위해 변호할 때, 내 모든 삶의 대언자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이니 심판장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도 이에 그 판결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인생은 어김없이 종착지에 도달할 것인데,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9-10).

 

하는 모세의 고백처럼 인생은 말 그대로 ‘신속히 날아갔다.’ 어느 시점에 이마저 끝나버릴 허무한 날은 올 것이다. 그래서 누군 더 기를 쓰고 하루라도 더 자신이 좋을 것,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을 누리는 데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소 무책임하여서 어린아이부터 모든 때가 아니 그런 때가 있던가? 그렇다면 다시 모세의 시에서,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5).

 

그렇듯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인생을 두고,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하면 우린 무엇으로 목적지를 삼을 것인가?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살전 2:12).” 이에 합한 자이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사는 일에서 우리의 ‘눈 깜짝 할 사이’의 인생이 복될 것은,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4).” 하나님의 기쁨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는 일이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하여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그러므로 이 땅에서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14).” 하심을 되새기며,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시 13:3-4).

 

그러나 나로 하여금,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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