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호 14:2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시 3:3-4

본문은 지금까지 부각된 심판의 하나님보다 사랑의 하나님으로 서술되고 있다. 마치 2장 14-23절을 연상케 하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드러낸다.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밝히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회복에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듣고, 돌이켜, 주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 회복하라는 것이다. 오늘 첫 문장에서부터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하고 청유형으로 시작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1).”
호세아는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모든 선지자들이 그러했겠으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음녀인 고멜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를 삶으로 살아서 산 증거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호세아서를 묵상하는 날 부친이 쓰러지셨고, 다음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는 영광을 누렸다. 더욱이 오늘 이 본문을 끝으로 호세아서를 마치면서는 새로운 예배처소로 이전과 정리가 끝나 감회가 새롭다.
부친이 소천하던 날, 주일 새벽에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2:1).” 하는 말씀으로 우리들이 모두, ‘암미’는 ‘나의 백성’이라 하심이고, 자매에게 ‘루하마’ 하심은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본래 우리들은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1:6).” 하였고 또한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8-9).” 하여 ‘용서받지 못할 자’와 ‘내 백성이 아니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않을 것’이라 했던 자들이었다.
나는 이 말씀으로 아버지의 입관예배 설교를 하였고 말씀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이처럼 교회를 옮겨 새로운 예배처소를 마련하는 데 있어 그 발단은 나의 아들이었다. 되새기면 얼결에 이루어진 일이다. 나의 우유부단함은 이곳을 마음에 두고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런저런 지출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이곳에 와서 둘러 본 아들이 나의 미적거리는 모습에 답답했는지, 몇 년째 붓던 청약통장을 깼고, 그 가운데서 가계약으로 서둘러 100만원을 걸었다. 그리고 간판과 썬팅 등을 계약하고 그에 따른 비용으로 300만원을 헌금으로 내놓았다. 청년의 경우 서른 살부터 청약 횟수가 적용된다고 하면서 자신은 이제 만으로 서른하나가 되니까, 적금은 새로 시작해도 된다면서 그리 결정한 것이다. 그야말로 얼결에 그리되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전에 있던 예배처소는 금세 빠졌고, 새로운 처소에서의 잔금도 부친의 사망보험금 가운데 모자라는 권리금 500만원을 어머니가 헌금으로 더하면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 이 일들이 호세아서가 시작되고 끝나는 열 나흘째 되는 날에 모두 이루어졌다. 나의 부친의 소천과 작은 교회라…! 채 스무 명 정도 들어올 공간이지 싶은데, 세무서에다 주소이전까지 끝내고 엊그제는 자진하여 이 달 임대료 50%도 주인에게 보냈다. 그것은 돌아오는 주일부터 예배를 드릴 마음이었고, 그걸 5월 입주로 약속하고 그리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제 값을 주고 내가 먼저 연락해서 그리하겠다고 뜻을 전한 것이다. 하여 주일에는 성찬식과 함께 새로운 처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이 어찌 됨인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그것이 징계나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이 목적이신 것을 증명한다. 아직 산적한 일이 많고 부친의 사망 신고와 함께 그에 따른 가족들의 감정도 여전하여 씻을 길 없는 듯하나, 그럴 겨를도 없이 바쁘데 몰아치시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이처럼 정리가 끝나고 예배처소로 새로 정하신 곳에서, 호세아서 마지막 장을 묵상하고 있는 새벽이라 감회가 새롭다. 어제 아침부터 나는 이곳에 나와 평소대로 새벽을 지켰고, 말씀을 묵상했고, 이 글을 쓰며 주 앞에 감사하며 영광을 올리고 있다. 이제 누가 오든지, 6시에는 같이 예배를 드릴 것이고, 오늘 본문으로는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2).” 하는 말씀처럼 나의 기도가, 묵상글이 ‘입술의 열매’가 되어 주께 드려지기를 기도한다.
기도에 있어 회개의 방법은 ‘아룀’으로 시작한다. 입술의 고백과 간구하는 기도는 회개가 주 앞에 드려질 때 시작된다.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고, 이를 ‘가지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주 앞에 하는 것이 기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회개의 권고가 호세아 선지자에 의해 이스라엘에 강하게 촉구되고, 오늘 이처럼 나에게도, 우리 이 교회에도, 그리하여 전하여지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먼저는 ‘여호와께로’다. 즉 하나님께 방향을 돌리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마음은 저 혼자 ‘어떤 슬픔’을 또는 염려를 따라가는데 익숙하다. 그리움으로 마음은 저 혼자 울컥, 하다가도 그래서도 이러한 분주함과 순탄함으로 다시금 마음을 부여잡게 하신다.
하여 ‘선한 바를 받으소서.’ 하며 주 앞에 올려드린다. ‘선한 바’란 ‘아름다운’, ‘좋은’과 같은 의미다. 이 말은 믿는 자들로 아름다운 게 무엇이겠나?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이보다 좋은 게 또 있을까? 가장 가치 있고 유익한 삶이란 주를 인정함으로 감사하는 일이겠다. 그리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드려지도록 권고하는 ‘입술의 제사’를 의미한다.
같은 처지에서 어찌 감사가 가능하겠나? 싶었는데 부친의 사망과 소천으로 인한 슬픔과 비애는 기대와 소망을 능가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슬픔보다 환희를, 우울보다는 설렘을 가지게 한다. 나는 문득 ‘나사로라 이름하는 거지’를 연상한다. 나의 부친은 지금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안식하고 있을까? 주의 영광된 나라에서 오늘의 나를, 또한 이 새로운 예배처소를 보고 있으면서 남겨진 우리 형제들을 지켜보고 있을까? 그렇게 좋아하던 말씀으로 이제는 주 앞에서 마음껏 ‘즐거운 만남’을 가지며 성경의 영웅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을까?
이 ‘선한 바’는 ‘입술로 제사’로 우리가 드리는 아룀으로 이 땅의 열매가 된다. 하여,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6-7).” 할 때에 ‘그의 가지는 퍼지며’, 여기서 ‘가지’란 ‘새 순’을 뜻한다. 곧 오늘 우리 자녀들이 각각의 사역을 감당하여 교회를 섬기고 주를 전하는 일에서 그 증거를 본다.
또한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욥 14:7-10).” 하는 것 같이 우리의 소망은 저 하나님의 나라에로까지 뻗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훗날 주 앞에 마주했을 때,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하는 말씀은 역설적이게도 예수 그리스도 형상을 닮아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4).” 하는 데 따른 성장이었고 영광이 된다.
궁극적으로 오늘 우리는 그의 슬픔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겪는 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 나의 부친이 처음 소명을 받을 때, 사업을 일궈 일가를 이루겠다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죽을 각오로 기도원에 가서 엎드렸을 때,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하는 본문의 말씀이 가슴에 박히는 현상을 느꼈다고 한다. 하여 오늘에 이르러는 우리 형제들 모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하는 말씀을 기틀로 하여 각자에게 맡기신 소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호세아서에서 심판과 징계의 말씀이 궁극적으로 복된 영광의 회복과 구원으로 읽힌다. 비록 작은 교회라 해도 이곳에서 주가 이루어 가실 큰 구원을 소망한다.
우리가 회개하면 이제 막 돋아나는 가지처럼 뻗어서 번성해감을 비유하는 것으로, 오늘 말씀은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한다.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로 지중해 연안에서 널리 재배되어 이스라엘에 있어 무화과와 함께 매우 귀중한 과수였다. 이처럼 그 쓰임을 다하는 교회로, 주가 이루실 열매는 그 자체로 식용이 되고 기름으로 쓰여서 상한 영혼을 치유하는 약제와 어두운 영혼에 등을 밝히는 등유로도 쓰일 것을 기도한다. 또한 제사용으로 쓰이는 관유가 되어 주께 예배가 드려지는 요긴한 존재로도 쓰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입술의 열매로 하나님께 귀히 드려지며,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아름다운 영적 열매로 맺어질 것이다. 하여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여기서 ‘백향목’은 레바논의 수많은 초목에서 진한 향기가 배어나는 것 같이 ‘레바논의 향기’라 하여,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아 4:11).” 하는 사랑의 노래로도 불렸다. 이로써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그리하여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17).” 곧 이를 증거 하는 교회가 되기를. 그리하여 번지는 향기는 우리가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호 14:5).” 하는 오늘 말씀과 같이 영적으로 성숙하여 하나님 앞에 올리는 아름다운 향기를 발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7).” 여기서도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할 때, ‘그 그늘’은 ‘그의 그늘’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우리들의 그늘’을 뜻하며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보호하심의 그늘이다. 그렇게 ‘그들은~ 되리라.’ 하심으로 우리는 될 것이다. 영적 회개로 우리의 돌이키는 영혼은 소생하여서 ‘곡식’과 ‘포도’ 등으로 열매가 거둬질 것이다. 이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하심 같이, 이것은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이면서 동시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자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소산임을 암시한다. 아울러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자들이 곳곳으로 퍼져갈 것을 나타낸다. 이번에 새삼 느끼지만, 늘 무심한 줄 알았던 아들이 다 했다. 처음 시작도, 주문한 가구를 일일이 조립하여 이와 같은 예배처소로 드리게 된 것도… 며칠째 꼬박 몇 시간씩 책상이며 걸상, 책꽂이며 작은 소파, 문지방의 마감까지 모두 아이 혼자서 했다. 그리고 지하 3층에 있는 분리수거대로 쓰레기를 옮기는 일까지 모두 다 했다. 그리하게 하신 이가 또한 그의 남은 시간을 모두 채워가실 것을 믿는다. 이와 같이 주가 주시는 마음을 우리는 거절할 수 없다. 주의 뜻이 어디로 가 닿을지 우린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주가 이루실 것은 안다.
우리의 소명도 호세아의 것과 같아서 주의 강권하심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을 안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 하실 때,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하심을 전하며,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 69:30-31).
하여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3:3-4).
그러므로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5-6, 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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