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잠언 31:8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시편 58:1-2
애통함으로 주께 아뢰고 기도하는 게 할 일인 것 같다. 입을 열어 논쟁하고 누구를 비판하기보다 ‘말 못하는 자’와 ‘고독한 자’를 위해 중보 하는 것은 사는 동안의 사역이 된다. 저들이 알지 못함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 주일 날 이와 같은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다. 과연 어떻게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그의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주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우리가 오래 참음을 받았으니 우리 또한 주의 사랑으로 그리하는 게 마땅하였다. 저들은 자기들의 죄를 알지 못함이다. 중보란 나의 사역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일이다.
앞서 말을 내지 않도록 주의할 것과 부화뇌동하지 말 것을. 그러느니 묵묵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 새삼 하나님의 절대주권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내가 이 길을 자원하여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열심으로 그 자격을 취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주의 긍휼하심이라. 가끔은 나 같은 이가 어찌 이와 같은 말과 바람으로 주 앞에 설 수 있을까, 생각하면 민망한 것이다.
잠을 잘못 잔 것인지, 갑자기 떨어진 기온 때문인지, 며칠 전부터 몸이 틀어진 것처럼 아프고 담이 결린 것처럼 운신하기가 어려웠다. 예배 끝나고 멘소래담 로션을 사서 온 몸에 바르고 뜨거운 전기장판 위에 지졌다. 확실히 몸이 아프다는 건 경건을 도모하는 데 유용하다. 주의 도우심을 바라고 구하는 데 있어 가장 절실한 자리이다. 이처럼 묵상글을 쓰는 데도 고개를 가누는 것부터 어깻죽지를 놀리는 일까지, 몸은 자발적으로 겸손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을 땐 놓치기 쉬운 간절함으로 주의 긍휼을 구한다.
그러므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몸의 고통은 정직하여서 에두르지 않고 주께 고하는 마음을 곁에 둔다. 직접적인 간구는 훗날 주 앞에 설 것을 깨닫게 하고, 그간 평안을 주신 데 따른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게 하며, 남은 생의 정결을 다짐하게 하고, 나와 같은 이를 동정하여 기도할 줄 알게 한다.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한다. 한 마디로 주의 각별한 배려의 자리다.
그러면서도 앓아눕지는 않게 하시는 것은 아직 할 일이 있어, 한 날의 수고가 주의 것이라. 결코 산다는 일이 피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8).”
‘앞에 있는 소망’이 없이 산다면 그 영혼은 얼마나 황폐할까? 거짓을 믿고 헛된 것을 바라며 그저 악착같이 벌고 죽어라 누리는 것에 여념이 없는 세상이 고약할 뿐이다. 고로 주는 나의 피난처시다.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 22:3).” 이에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곧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때로는 내 몸의 고통이 내게 고되나 그것으로 주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서,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신다. 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몸은 고단하나 마음은 더욱 주를 바람이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는 곧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29-30).” 모든 일의 되어짐이 주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이를 붙들고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하시려고 오늘을, 이 몸을, 환경을, 사건과 여건을 특별히 두시는 거였다.
모질게 휘몰아치는 오늘의 혼란은 가치관과 그 기준이 모호해지고, 시쳇말로 블랙홀처럼 모든 사람의 사고와 판단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저들에 대한 실망이 종교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으면서 믿는 자들도 어김없이 부화뇌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설교말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우리의 자세를 점검하였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한다. 대형교회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기나 하듯 교인들로 넘쳐난다. 위정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베갯머리송사 같이 교회 울타리 송사로 입방에 오르기 일쑤다.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이 어제오늘 일인가? 예수님 당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한데 주님은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누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자처할까? 나름의 신념이나 신조에 따른 희생은 난무하지만, 기어이 이 또한 주가 하셔야 주가 하실 때 의로운 것이겠다.
늘 주 앞에 겸손하기를. 그럴 수 있다면 어떤 값으로도 이를 팔지 않게 하시기를. 누구에게 전하는 설교이기보다 나에게 들려주는 주의 말씀이 되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이에 주님의 고충을 묵상한다. 기록되지 못한 자들에 대하여 혹은 누구를 기록하는 일에 있어서, 주님은 얼마나 심사숙고하실까? 그 오랜 참고 기다리심이 오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긍휼하심이라.
이 ‘땅에서 폭력을 달아 주는 자들에 대하여’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든지 불 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가게 하소서(시 58:9).” 그러므로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11).” 더는 늦어서 어찌 할 수 없을 때가 온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니라.’ 하신 주의 음성이 귀에 생생하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결코 이 말씀은 세상을 향한 복음이 아니었다. 믿는 자를 향한, 제자들을 향한 경고였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온전히 주만 바라게 하시려고 오늘 내게 특별히 두시는 이와 같은 고통이 수고와 열심이 감사를 깊게 하는 거였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위정자들을 위해 해야 할 시기이다. 이는 곧 나의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이 되게 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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