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요한일서 4:1-6 /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전봉석 2016. 11. 11. 14:08

20161113 주일

 

요한일서 4:1-6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4: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들어가는 말

 

어지러운 세상이다. 가치가 가치를 잃고 정의가 정의를 잃는다. 패러디가 넘쳐나고 우리의 원수는 풍자 뒤로 숨는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24:6).” 말 그대로 야단법석 난리굿이다. 백주대낮에 광화문 한 복판에서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끌어들여 굿판을 벌이고, 대통령은 사교(邪敎)에 빠져 국정이 농락당하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아수라를 이룬다.

 

신비가 희화되고 영적인 세계가 우스갯거리로 전락하였다. 종교의 환멸은 보다 강력한 이성주의를 구축한다. 논리로 묻고 논증으로 답하는 사회에서 신앙은 그저 유약한 사람들의 자기위안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교회는 상업화되었고 예배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눈높이에 머문다. 구속은 묘연한 이야기 같고 무신론자들의 위세는 등등하다. 성경은 이와 같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인정하든 못하든, 알든 모르든, 이 모든 사건 사고의 배후에는 어둠의 세상 주관자가 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지켜야 할 믿음의 지표를 보여준다. 혼탁한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단순하면서 분명한 표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라는 것!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자는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그의 자녀된 것을 붙들었다. 말씀은 이를 더욱 굳건히 하여, ‘사랑하는 자들아하고 우리를 부르신다. ‘사랑하는곧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이처럼어떻게?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7).”

 

곧 그 자신이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8).” 이에 우리는 오늘 주 앞에 담대히 나올 수 있어,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 알고이로써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다(요일 3:19, 21-22).

 

그런 우리에게 일러 영을 다 믿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참으로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을 것인가? 믿음에 환멸을 느껴 점점 더 이성주의로 돌아서는 세상에서,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오늘 본문은 ‘분별하라고 이르신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 사람의 이해와 상식에 의존해서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할 수 없다. 이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우리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6:12).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이에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1).” 저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하였다가 떠나간 이들이다. 사탄의 처음은 천사였다. 처음 살인자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뒤였다. 사울은 주께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다. 가룟 유다는 마가의 다락방을 떠나가 예수를 파는 자가 되었다. 처음부터 무신론자는 없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가현론자들이 거짓 선지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요일 2:22).” 저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요 적그리스도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2).” 성경은 우리를 설득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해를 구하는 게 아니라, 예수는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선포한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는 이가 하나님께 속한 영이라하는 선포다. 거두절미하고 믿음으로 받든가 이성적으로 거부하든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적그리스도의 영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지 못하는 것은 저를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하는 일이다. 이를 어찌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돌려세울 수 있을까?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다른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것이다(3).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고의적으로 그리스도를 적대시하는 무리다. 요한은 오늘 본문과 함께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요일 2:18, 22, 4:3, 요이 1:7). 이는 온갖 이단을 의미하는 포괄적인 의미다. 사람을 우선하고 저의 능력을 최선으로 여기는 뉴에이지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자아실현에 있어 자기 의지를 분명히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신조를 더 믿는 자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의도적으로 반대하고, 인위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그 뿌리는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에서부터다. 하나님이 되려고,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알고자 할 때 이미 드러났다. 이해와 상식 너머의 것을 부정하거나 재해석하는 시도는 모두 자기 의를 구하는 적그리스도다. 고의적인 안티크리스천을 위시하여 소신껏 나름의 하나님을 믿는 수고와 애씀도 포함된다. 곧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은 적그리스도다.



그들을 이기었나니


우리는 저들과 싸워 이겨야하는 게 아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오늘 본문은 이기었다는 완료형시제를 사용한다.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곧 이를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 승천하셨다(4).

 

이 세상은 사탄이 권세 잡았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그런 땅에서 우리는 유기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아직 자연인으로 있는 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저들로 우리를 보고 알게 하라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5:13-14).”

 

그러니까 우리가 저들을 이기기 위해 이 같은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저들보다 더 크신 이가 이미 이기었노라하심을 증거 하기 위해 씨름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누릴 평안을 위함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세상에 속한 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5).” , 왜 우리만 그래야 하나 싶다. 그러나 성경에 이르시길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1-2).” 앞서 간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

 

기쁨을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른 자들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안 믿고 적그리스도로 사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직 이 땅에 권세 잡은 자가 악한 영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지식은 당연히 사람들의 호응을 얻게 돼 있다. 많은 이가 열광하고 따른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5).”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왜 우리가 불편한지 알겠다. 무엇 때문에 어려운지 알겠다.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거였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이 당연한 진리 앞에 아멘할 수 있는 자는 복이 있으리니!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하는 게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6).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자는 하나님의 말을 듣는다고 했는데, 알다동침하다의 의미와 동일한 기노스코라는 동사로 쓰인다. 그러니까 단지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4:1).” 할 때, 바로 그 동침하다의 동사가 알다의 의미다. 곧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실제 하는 앎이다. 머리로 아는 앎과는 엄연히 다르다. 안다는 건 믿는다는 의미로 확정된다. 앎으로 믿고 믿음으로 안다.

 

야고보서에서 귀신들도 이를 알고-믿고떠든다고 하였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2:19).” 곧 우리가 아는 앎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아는, 부부 사이의 농밀한 사랑으로서의 앎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다. 이를 어떻게 알까?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아는 내밀한 사랑이다. 적그리스도인 저들이 아는 앎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지극히 친밀하고 고유한 앎이다.

  

  

나오는 말

 

어느 때보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국내외적으로 총체적인 난국이다. 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난리와 난리가 연일 이어진다. 가치관이 무너지고 정체성이 파괴되며, 사람들은 지극히 마초적인 것에 휘둘리고 즉흥적인 것에 열광한다. 참으로 끔찍한 것은 끝까지 몰려 결국은 망가지고 깨어져야 비로소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비극이 아니고는 설마, 하면서 여전히 흥청망청한다. 바닥을 치는 우울에 빠지거나 제어가 안 되는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점점 무뎌지거나 유난히 예민해지거나.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24:5).” 그래서 무신론주의자가 되거나 지독한 이성주의자가 되거나,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 앞으로 더 두려운 일이 생겨날 것이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8-9)” 공연히 종말론을 부추겨 겁을 주려는 게 아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또한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10-12).” 이에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 걱정할 거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다. 이 싸움은 이미 모두 이기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곧 진리의 영은 말씀으로 말씀 가운데 오신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에 이르고, 앎으로 행함을 더한다. 이로써 성령이 하시는 줄을 안다. 미혹의 영은 이를 고의적으로 거부하고 외면하게 하는 영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 4: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