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잠언 28:23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시편 85:10-11
모처럼 예배가 꽉 찬 느낌이었다. 못 오고 있는 아이들이 더욱 마음에 걸리는 날이었다. 서로가 좀 더 살갑게 대했으면 좋겠는데, 사내 녀석들이라 그저 데면데면하였다. 오려는가 하고 기다리던 아이는 오지 않았다. 그만큼 한 영혼이 주 앞에 온다는 것은 참으로 천하를 얻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예배가 끝나고 몇 주째 딸애가 반주연습을 하였다. 초등학교 때 잠깐 쳤던 실력이라 자신 없어 하면서도, 그 마음을 주신 이가 그처럼 이끄신다.
사람을 경책하는 일은 감사하면서 두려운 일이다. 어쩌다 거반 평생을 선생 소리를 들으며 사는 셈인데, 말에 부끄러움이 없이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하시는 오늘 말씀에 주의한다. 좋은 말로 서로 좋게 좋게 지내는 사이보다 충성된 권고를 해줄 수 있는 사이는 드물다. 함께 교회를 이뤄간다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병행돼야 할 것 같다. 특히 큰 녀석에게 동생들을 좀 살피고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주기도 하면서,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데 교회 형이 좋다는 게 뭐냐! 하고 슬쩍 권하였더니 질겁한다. 그게 제일 어려운 아이다.
그런 거보면 내가 참 복이 많았구나, 싶다. 어릴 때 교회 형들이 참 여러 말을 들려주었던 것 같은데. 저들 가운데 목사가 된 이가 많은 것도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단지 교회에 ‘와주는 것’만으로 좋다고 할 게 아니라 ‘어떤 교류’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너무 앞서가는가 싶어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시편의 말씀이 교회가 이뤄갈 표어를 제시하시는 것 같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시 85:10-11).”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회 아니던가? 세상 어디서 이런 관계를 마주하며 찬송과 경배로 올려드릴 수 있을까? 결국은 주가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12).” 딸애 마음에 반주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넣으신 이가, 외조카 마음에 방화에서 인천까지 예배를 와야겠다는 마음을 넣으신 이가, 군포에서 오는 아이들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이가,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13).”
가만히 나는 가만히 한 자리를 지켜가는 것이 사명이려니….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하시는 이가 되게 하시는 것을 목격하는 자리이겠다. 뭘 좀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조바심처럼 일어날 때 또한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하는 게 충성이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드는 생각은, 성경이다. 내가 하는 일은 말씀을 붙들고 말씀으로 씨름하는 것. 외조카 아이의 ‘좋은 성격’으로 서로가 모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느꼈다. 자리가 꽉 차 의자와 책상을 더 들여놓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아이도 얼른 그러자고 인사를 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성경이 하시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겠다. 성령이 하신다. 적당한 때에 가장 적절한 이를 부르시고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심으로 적시에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 9:17).” 무던히 주 앞에서 충실하다는 것은 이걸까? 저걸까? 어떤 방법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주신 바 내 앞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11:23).” 하는 바로 그 확신이다. 그 확신을 주시는 통로가 성경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그럴 수 있는 기쁨이 말씀의 열쇠였다. 아이들과 잘 지내고, 새로운 사람을 인도하고, 어떤 일을 도모함으로 교회부흥을 꾀하는 일도 중요하겠으나… 나는 내 일을 하는 것. 마르다는 마르다의 일이 있고 마리아는 마리아의 일이 있다.
어쩌면 내 안에 드는 생각이 욕심이었다. 얘를 좀 이렇게 하면 저게 저럴 것 같은데 하는 어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잠 28:25).” 그러므로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9).” 그렇구나. 말씀 없이 바람만 구하는 일은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충족을 채우려는 것이기도 하였다. 나는 다만 말씀을 듣는 데 주력하여야 한다. 그 일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식사가 끝나고 아이들과 잠깐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되어지게 놓아두는 일. 하나님이 어찌 인도하시려는가, 확신을 잃지 않는 것. 그렇다면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게 말씀밖에 더 있나? 함께 성경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무엇보다 말씀을 묵상하며 지내기를 당부하는 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주가 열어 보이시는 만큼만 알고, 움직이면 된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잠 28:26).” 그렇지. 나는 누구보다 내 마음을 믿을 수 없다. 지혜롭게 행한다는 건, 주를 경외하는 것. 주를 바라며 섬기는 일에 있어 말씀 앞에 승복하는 일.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시 85:9).” 주의 영광이 우리 교회 위에 머무시는 제일 조건이었다.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신다. 내 생각이 앞서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오후 내내 여러 생각이 많다가 얻는 결론이다. 다시 말씀.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을 주목하는 한 주가 돼야겠다. 내 안의 조바심을 무뎌지게 하는 것이 오래 참음의 열매다. 유난히 신경 쓰이는, 과민 반응을 보이는 나의 예민한 것들에 대하여 성령의 열매 가운데 오래 참음은 나를 불러 세운다. 지나치게 깔끔을 떠는 것도 실은 누구에게 책잡히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의 정도다. 나의 숨겨진 본성을 미연에 방지하게 하신다. 그리고 부드러운, 주의 이름으로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 자비의 열매다. 늘 나의 행동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야 자비가 어렵지 않다. 도대체 그럴 수 없는 위인을 상대하는 일,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에 부드러울 수 있다면.
순하고 착한 마음이 양선인데, 보이는 나와 실제의 나는 꽤 먼 간극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므로 충성할 수 있는, 멈추지 않고 무던할 수 있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전에는 너무 먼 얘기처럼 들리던 성령의 열매가 내 삶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아서 더 욕심이 생긴다. 내 안에 두시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잘 건사하고 유지하기 위해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을 실천하고, 그럴 수 있는 게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려니!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응집력이 필요하겠다. 고로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바울의 고백이 참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그럴 수 있는 데 필연적인 요소는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심에나 가능하였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내 안에 두시는 여러 생각을 놓고 씨름하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바람을 주 앞에 내어놓는다. 이 모든 덴 나로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열매가 필수적인 것이 된다. 고로 그 또한 주가 하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시 54:2).” 나는 주께 아뢴다. 내가 하는 일이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5: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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