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전봉석 2016. 12. 3. 07:2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시편 90:10, 14

 

 

 

어쩐지 마음에 밟혀 뜬금없이 문자를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암이 재발하여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고 하였다. 회복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다. 가슴이 먹먹하였다. 이제 스물여덟. 참으로 꽃다운 나이에 흉부암(?)이라니. 두어 해 전 치료를 끝내고 더는 전이가 되지 않고 자라지 않아, 모든 걸 주께 맡기고 더욱 주의 일에 매진하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 아이를 생각하였다.

 

참 당돌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잔망스럽게도 날 위해 기도한다던 아이다. 글짓기 선생님이 다시 신학을 하고 목사님이 되게 해주세요. 금요철야에 이와 같이 기도를 들고 갔다며, 신학을 마저 하게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진학하는 동안 아이는 수재였다. 로스쿨을 마치고 한국에 진출한 모 외국기업에 취업을 했더랬다. 가슴이 답답하여 병원을 찾았다가 흉부 한 가운데서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무남동녀 외동딸인데 그 부모의 심정은 또 오죽할까. 아이엄마는 참 살가운 사람이라 어느 명절 때 갈비찜을 했다며 그릇 채 내다 실어두고, 또는 수업 중간에 과일 박스를 차에 가져다 두곤 했었다. 그때는 글방이 있기도 전이니까 얼추 12년 전인 것 같다. 아…! 다 저녁에 아이의 문자를 받고 내내 어려워 잠결에도 주의 이름을 불렀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힘내라, 더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만 붙들자. 다시 재발했다는 소식에 아이에게 준 말이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제 인생을 주님만 바라보며 갈 수 있도록, 빚어가는 시간인 것 같아요. 아이의 말이 돌아왔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굳게 믿을 수 있도록, 날마다 새 소망이 넘쳐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아이의 문자에 말씀을 보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미 7:7).”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먹먹하니 어쩔 수 없음 앞에 과연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이란 참으로 덧없음이다. 늙으신 장모가 꾸부정하니 실버카를 끌고, 12월 후원헌금을 들고 인천에 왔다. 돌아가는 길에 교회에 들러, 나란히 앉은 장모와 아내를 두고 함께 기도를 하였다. 저녁을 대접하고 장모를 전철역에 배웅하며 아내는 문득, 한 10년은 더 사시겠지? 하는 아내의 말은 쓸쓸하였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가벼움을 허락하신다.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기쁨이다. 내가 그럴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연역함을 아시고 주가 이루신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4:7).”

 

당연히 나는 당황하고 주춤거리며 두려워 떨지만,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이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39).” 어릴 적 아이의 맹랑했던 기도가 헛되지 않았듯이 오늘 우리에게 두시는 이 모든 상황, 그 너머에 있는 주의 선하심을 붙든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