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전봉석 2016. 12. 17. 07:27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3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편 104:28-29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성복, <그날>).’ 전날 청문회를 보면서 생각하였고, 족히 20여 년 만에 만난 아이를 두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모두 병들었다. 그런데 아프지 않다. 문득 드는 병명은 나병이다. 한센인이라고 하는 저들의 병은 저주 같다. 아픈 걸 알지 못하는 끔찍한 병이었다. 아이를 만나고 내내 마음이 어려웠다. 어느새 아이 셋을 둔 엄마인데 나에겐 여전히 주일학교 어린이 같고 풋풋한 여고생으로만 느껴졌다. 살아온 날이 힘에 부쳐서 안쓰럽고 답답하였다.

 

어찌 그 내용을 말로 옮길 수는 없으나, 우리는 병들었지만 우리는 아프지 않았다. 하긴 우리가 그토록 감사하는 예쁘고, 잘생기고, 아름답고, 즐겁고, 건강하며, 넉넉한 것이 분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맙고 감사한 선물이지만 한편으론 위험한 것들이다. 이로써 하나님 경외하기를 잃기 쉽고 자칫 자기만족에 겨워 그릇된 길로 들어서기 십상이다. 또한 그것이 자기 노력에 의한 결과라고 여길 때면 영락없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싶은 마음은 어쩌면 죽기 전까지 버리기 어려운 완고함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온다고 해서 성경공부도 미뤘다. 하필 또 군포에서 다른 아이가 온다는 것도 다음 날로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전 주에 연락이 오고 일주일 내내 무슨 일일까? 하고 기도하게 하시더니… 자살까지 하려 했고, 여전히 그와 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는 데 따른 우여곡절이 마음 아팠다. 이게 다 내가 무엇을 어찌 잘못해서 그런 것 같다, 하는 데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누누이 말해주었다. 만일 우리가 겪는 고통의 문제가 어떤 죄의 결과라면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말해주었다.

 

고통은 ‘나 좀 보자!’ 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다급한 목소리다. 점심을 먹이고 서너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속이 상해서 나는 자꾸 주의 이름을 되뇌었다.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까지 안타까웠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이기는 하나 우선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가까이 하다보면 아이들 아빠도 만나게 하실 테고 말이다. 기도하고 있을 테니까 힘내고, 주님이 무얼 말씀하시려는가, 귀 기울이자고 말해주었다. 같이 기도하고 C. 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를 건넸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 32:27).” 주는 약속하신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38).” 이를 기억하고 계신 이는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도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2-3).” 마침, 아이와 만나기 직전에 읽은 말씀이었다.

 

아무리 그 생이 어떠하다 할지라도, 나는 요한의 절절한 소망을 들려주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우리에겐 영생의 소망이 있음을 알게 하시려고, 오늘에 하나님은 고통을 두신다. 고통은 결국 그릇 행하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처럼 거절하고 멀리하던 주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그 상으로 나를 이끄신다.

 

아이를 재우고 약을 삼켰는데, 순간 지옥이 무서웠어요. 이미 삼켰는데, 자살하면 지옥 간다던 어릴 때 선생님 말이 생각나는 거예요. 이미 삼켰는데, 하나님 잘못했어요, 도와주세요, 하면서 억지로 손가락 넣어서 토하고 물을 엄청 마시다 잠들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깨어났어요. 덤덤하니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가슴이 서늘했다. 오죽하니 그랬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한참을 이야기하게 그냥 두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3:10-11).”

 

나는 말씀을 되뇌었다. 다시 살리신 이가 또한 반드시 그 영혼을 붙드실 것을 확신하였다. 아이 셋, 주가 맡기신 사명이 크다. 반드시 하나님은 주야와 맺은 언약, 천지를 두고 약속하신 것 때문에라도 우리가 병들었음을 그리고 아파하는 것을 고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25-26).”

 

오늘 시편도 이를 붙들고 있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104:9).” 그러므로 “새들이 그 속에 깃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17).” 마치 인생이 풍비박산 난 것처럼 어찌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으나, 주님은 그 터 위에 다시 건설하실 것이다. 암담하고 착잡하지만,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면을 에우고 적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같으나… 죽을 걸 도로 살리신 하나님이 마저 그 남은 생을 다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영생을 준비하게 하신 것을 믿는다.

 

잘 돌아갔는지, 마음은 어떤지 묻고 싶었지만 그냥 두었다. 주가 하신다. 뜬금없이 다시 이어져 저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 이가 우리의 대화를 이루어 가셨고 그 가운데서 잃어버린 소망을 다시 가질 수 있게 하셨음을 믿는다.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하여서, “젊은 사자들은 그들의 먹이를 쫓아 부르짖으며 그들의 먹이를 하나님께 구하다가 해가 돋으면 물러가서 그들의 굴 속에 눕고 사람은 나와서 일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21-23).” 주가 임의로 인도하신다. 이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께서 또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붙들자.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시려고, 오늘 우리에게 두신 고통은 간절하게 부르시는 주의 음성인 것을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25:6).”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신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 17:3).” 연단은 불순물을 벗겨내고 순도 99.99% 아니 100%의 의롭다 하심을 덧입히신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최선의 고통을 더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시 104:33).” 이것이 오늘의 사명이었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34).” 이 아침, 아이를 생각하고 더하신 그 생의 굴곡들을 떠올리다 그러므로 사랑이셨음을 확신한다.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3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