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잠언 3:5 /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전봉석 2017. 1. 26. 10:14

20170129 주일

 

잠언 3:5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들어가는 말

 

살며 삶에서 제 일 순위로 둬야 하는 게 무엇일까? 나름의 가치와 기준이 있겠으나 잠언은 주저함없이 이를 선명하게 밝혀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이는 지식의 근본이다.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22:19).” 이를 위해 우리에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저는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시끄러운 길목에서 성문 어귀에서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외친다(1:20-21).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2-23).” 지혜가 오늘 우리를 부른다. 설날을 지내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 열 개의 덕담을 건네려고 한다.

 

1. 주의 법을 지키라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1-2).”

 

법은 무엇인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 하시는 바, 이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왜 그래야 하나?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119:93).”

 

2. 인자와 진리를 곁에 두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3-4).”

 

인자는 어질고 자애로운 마음이다. 이를 주님의 산상수훈에서 살피면 온유함과 닮았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곧 온화하고 부드러울 수 있는 게 기질의 문제는 아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다. 이는 통틀어 예수 그리스도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저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곧 어디에 서든 저의 땅은 굳건함이다. 저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

 

3. 주를 신뢰하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5).”

 

주를 신뢰한다는 것은 내 의지나 노력으로 애쓰던 것을 멈추는 일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던 것의 구심점을 바꾸는 것이다. 우린 수시로 자기 꾀에 빠진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말씀을 의지하여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 말씀에 그 뜻을 기다리는 데는 상당한 시일과 인내가 필요했다. 결국 저는 자기의 판단으로 이스마엘을 두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 하는 주의 말씀을 붙들었다. 한데 다급하게 됐다. 남편 이삭은 큰 자 에서에게 축복을 빌려고 하는 것이다. 리브가는 거짓을 꾸며서라도 야곱을 장자로 대신하였다. 하나님이 아무래도 실수를 하시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처럼, 마음을 다해 주를 신뢰한다는 건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했을 땐, 물론 하나님이 이를 선으로 바꾸시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는 먼 길을 돌아야 하고 자신의 행위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 이를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기독교는 결코 앞을 알 수 없는 운명에 맡겨지는 숙명의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인 관계란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4.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6).”

 

우리는 각자 자신의 바람으로 주께 나오지만 여전히 자신의 바람으로 주께 머무는 자들이 아니다. 다들 나름의 형편과 사정으로 주를 만났다. 하나님은 숱한 우연을 동원하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주 앞에 나오게 하신다. 우리는 결코 운명론자들이 아니다. 운명론자는 모르면서 살지지만 우리는 앎으로 이 길을 간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주를 알게 되지만 저들은 위기 때문에 주를 바라는 자들이다. 범사에 주를 인정한다는 건, 위기까지도 주의 것임을 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주 앞에 모든 우연이 필연이 되고 숱한 위기가 축복이 되는 것을 마주하는 것이다. 범사에 주를 인정한다는 건, 나의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든지 나의 주님이시다.

 

5. 자긍하지 말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7-8).”

 

오늘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요지경 속 이야기를 봐도 다들 나름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긴 이게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닌 것이고, 사람은 본래 자신을 믿는다. 그게 죄의 특성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자 한 것은 단지 그 맛이 궁금해서였겠나? 그렇지 않았다.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마음껏 먹어도 되었다. 한데 유독 왜 선악과였을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사탄이 우리에게 심는 마음은 자긍심이다. 스스로 긍지를 갖는 것으로 자신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악이다. 악을 떠날 수 있는 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두려워할 줄 아는 게 경외함이다. 함부로 굴지 않는 것으로 이는 내 몸의 양약이 되고 골수를 윤택하게 한다. 단지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실제 건강한 몸의 비결이기도 하다.

 

6. 소유의 권리를 주께 이양하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9-10).”

 

내 것 중에 얼마를 덜어 주께 바치는 것이라 여기면 전부를 드려도 소용이 없다. 그 전부가 주의 것이고 나는 다만 이를 맡은 자일뿐이라 여길 때 드림은 헌신이 아니라 본분이 된다. 십일조에 대해 여전히 어려워하는 교회와 교인에게는 그 삶이 팍팍한 것은 당연하다. 이는 하나님이 축복을 주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넘치는 축복을 담아내질 못하기 때문이다. 없어도 풍성한 이가 있고 넘쳐나게 많은데도 빈궁한 사람이 있다. 창고에 쌓은 건 많은데 평생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다. 참된 신앙은 나의 의지적이 모든 소유를 주님께 넘기는 것이다.  

 

7. 경고음을 들으라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11-12).”

 

모든 사건 사고는 경고음이다. , 하고 위험을 알려주는 신호다. 몸에 이상이 오고 마음에 어려움이 끼쳐올 때, 이를 가벼이 여기는 자는 어리석다. 모든 위기는 기회다. 고통은 축복의 통로다. 이런 말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라 장구한 역사를 통해 사람들이 직접 살아냈던 삶으로 드러나는 증명이다. 주는 우리를 징계하신다. 하지만 징계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으신다. 결코 위기는 하나님의 작정이 아니었다. 우리의 그릇된 판단과 자기 꾀로 빚어지는 온갖 어려움이다. 이를 주의 섭리 가운데 선으로 인도하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는 은보다 낫고 그 이익은 정금보다 귀하다. 우리가 사모할 그 모든 것으로도 이 값을 비교할 수 없다. 그 오른 손에 장수가 있다. 그 왼손에 부귀가 있다. 그 길은 즐겁고 지름길은 평탄하다. 지혜를 얻는 것은 생명나무다. 주께서 지혜로 이 땅에 터를 세우시고 명철로 하늘을 견고하게 하셨다. 그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고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이 지혜다(13-20).

 

8. 지혜와 근신으로 살라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21-24).”

 

근신으로 산다는 건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주의 빛 앞에 선 자들의 특징은 모두가 자신이 죄인인 것을 통회한다. 함부로 굴던 때를 돌아보며 다시는 그와 같은 자리에 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근신이다. 성결한 삶이란 예수를 알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근신을 따라 사는 삶이다. 그때 근신의 기준은 지혜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내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팔복을 운운하며 산상수훈의 말씀을 바라던 자들도 도저히 자기 힘과 의지로는 온유할 수도 청결할 수도 없음을 여실히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애통이다. 다른 무엇으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가난함이다. 저는 온유하다.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이를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9.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25-26).”

 

내가 어찌 해보려고 할 때 두려움이 온다. 두려움은 앞선 불안이다. 죄로 인해 사람은 고질적으로 염려와 근심을 달고 산다. 이를 자의적으로 극복하고자 보험도 들고 나름 선하게도 살고 의를 구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천국도 지옥의 한 부분일 뿐이다. 살면서 어찌 갑작스런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 우리가 의지할 이는 여호와시다. 우리의 발을 지키심으로 두려움에 걸리지 않게 하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12-13).” 이로써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7:38).”  

 


10. 선을 베풀라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27-33).”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이 되라고 이 땅에 보내신 게 아니다. 우리에게 선을 행하라고 구원하여 주신 게 아니다. 의와 선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의를 행하고 선을 구한다. 사랑은 본래 나의 의지를 능가하는 무엇이다.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나를 유치하고 맹목적이며 진중하고 성실하며 바르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이다. 억지로도 아니고 위선적으로 가장하여 과장 되이 혹은 드러나게 행하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이 사랑이다.



나오는 말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34-35).”

 

새해 덕담을 건네듯 그러나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나는 오늘 잠언 3장의 말씀을 순서에 따라 설날 아침 설교 내용으로 주신 데 감사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척도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주의 법을 지켜야 한다. 인자와 진리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곁에 모시고 살아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를 신뢰하며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지혜롭게 여지기 말고 우리의 모든 소유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명심해야 한다. 평소 삶 가운데서 들려주시는 징계에 주의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지혜와 근신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어떤 갑작스러운 두려움에도 주를 바라며 있는 힘껏 선을 행해야 한다.

 

거만하여 이와 같은 말씀에 주의하지 않을 때, 주가 비웃으신다. 결국은 미련하여 그 영달함은 수치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