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5 주일
잠언 4:6-9
지혜를 버리지 말라
4:6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4: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4:9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들어가는 말
가까운 과거에 우린 역시 어린아이였다. 어렸고 무서울 게 없었으며 뭐든지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젊음이란 무모함에 대해 겁이 없는 때이기도 하다. 오늘 화자는 그러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운을 뗀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3).” 그리고 역시 가까운 미래에는 여러분도 후대에게 일러,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5).”고 당부하게 될 것이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인생에 있어 첫 직장에 출근하는 누구와 또 곧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누구에게, 무엇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 생에 있어 든든하고 구심점이 되기를 기도한다. 곧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6).” 여기서 우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주목할 수 있고, 인생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영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시 39:11).” 돌아보면 느닷없고 돌이키면 난데없는 게 인생이었다. 우리가 주의 은혜 가운데 산다는 건, 지나간 나의 시간이 얼마나 헛된 줄을 아는 데서 비롯된다. 숱한 우연의 조합들로, 우연히 글방을 다녔고, 느닷없이 글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난데없이 주는 나의 구주시라 고백하는 자들이 되었다. 얼떨결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주의 은혜였다면! 곧 모든 우연 뒤에는 하나님의 필연이 있었다. 이제 남은 생을 제시한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잊지 말고 어기지 말라
어느 때보다 지식이 넘치는 세대다. 문맹률은 현저히 낮아졌고, 최첨단 과학이 오늘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낮아진 문맹률과 달리 어느 때보다 지독한 난독증에 시달리고 있다. 넘쳐나는 인터넷 정보에서 기사 하나도 꼼꼼하게 읽지 못하는 이가 수두룩하다. 책이 지천에 널렸고, 게 아무리 유익하다 해도 이를 읽을 끈기가 우리에겐 없다. 하물며 그 내용을 파악하려는 의지도 없다. 최첨단 경비와 CCTV가 곳곳에 설치됐는데도 범죄율은 줄지 않으며 점점 지능화된 범죄는 늘고 있다.
1912년 2200명을 태운 타이타닉 호는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을 위시해 1500명과 함께 4천 미터 바다 아래로 두 동강이 난 채 가라앉았다. 당대 최고의 과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이에 각성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그 이듬해인 1914년에는 기어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뒤 20여년을 조금 넘겼을까?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안이하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하며 새로 도시를 재건하고 교육에 더 열을 올린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창 11:3-5).” 사람으로 사람들이 연합할 때 그 결과는 똑같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안정을 취할 수 없고 번영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경고한다. ‘잊지 말고 어기지 말자.’
지혜를 버리지 말라
지혜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하는 말씀을 앞서도 살펴보았다. 우리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어느 학자는 여기서 ‘하룻강아지’를 ‘하릅강아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는 강아지는 당연히 호랑이를 무서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1년을 일컫는 하릅 된 강아지라면, 1년씩이나 지났음에도 호랑이를 무서워할 줄 모른다면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들은 지 1년 이상이 됐음에도 우리 안에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른다면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경외란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경탄이다. 찬송이다. 칭송하게 되는 환희다. 그 앞에서 나의 연약함만 도드라진다. 내세울 게 없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일 뿐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때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가인아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4:9).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느냐(창 16:8). 야곱아 어찌하여 네 길을 숨겼느냐(사 40:27).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신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도 우리 이름을 부르신다. 누구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6-17).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눅 8:10).” 여기서 아는 것은 실력이 아니다. 지혜는 지식이 아니다. 지혜는 계시다. 열어보이심으로 안다. 앎으로 듣고 들음으로 보인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요 3:11).”
그러니 안 믿는 자들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는 마치 땅에 묻힌 귀한 보물을 발견한 농부와 같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가치를 알 때 우리는 모든 걸 잃어도 버리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다. 무얼 버리는 까닭은 그 가치를 다했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요 4:22).”
곧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 그러므로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20).” 영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가 너를 보호하시리라
그는 하나님이시다. 전능자 우리의 구원자 되신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그가 우리를 보호하신다. 도우신다. 함께 하신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이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시 79:9).”
어찌 보면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모든 것에서 항상 초년생일 뿐이다. 갓 대학 생활을 했던 것처럼 직장인으로, 군인으로, 아내로, 남편으로, 부모로, 우리는 늙어가는 동안에 모든 것에서 처음이다. 하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얼까? 도움을 받는 것, 이 모든 것에 가장 능통하고 원활하신 이인 우리 주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 아래 거하는 것! 이보다 더 지혜로운 지혜가 또 있을까? 인생에 선배는 없다. 저도 지금 처음일 뿐이다. 항상 오늘은 지나온 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남은 날 가운데는 첫출발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잠 4:6).” 오늘 지혜자는 명료하게 그 길을 제시한다. 곧 그를 사랑한다는 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주께 향한다는 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는 허탄한 생각을 버리는 데 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6).” 그렇다면 우리의 허탄한 자랑은 무엇일까?
※ 허탄한 자랑의 아홉 가지 예시
1. 형통함을 부러워함: 시기,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 73:2-3).”
2.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김: 사치,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사 47:8).”
3. 악을 묵인함: 타협,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
4. 부자가 되려고 함: 욕심,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5. 술 취함: 방종,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11).”
6. 거짓을 꾀함: 묵인,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 5:18).”
7. 자긍함: 교만,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1).”
8. 자부함: 객기,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2).”
9. 가난한 자를 능욕함: 멸시,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 10:2).”
나오는 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잠 8:13).”
※ 지혜에 의한 다섯 가지의 ‘오직’
1. 오직 믿음으로: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2. 오직 은혜 가운데: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5, 8-9).”
3. 오직 그리스도의 토대 위에: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4.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5. 오직 하나님으로: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이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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