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
잠언 30:33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시편 119:50
어떤 어려움, 양심의 책망이 휘몰아치면 두 갈래 길에 서게 된다. 스스로 끝내려고 들거나,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부르거나.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주를 신뢰하는 것뿐이다. 주는 선하시다는 대명제 앞에 얽히고설킨 고통을 묵묵히 준행하는 일. 이 말씀은 고통 중의 나의 위로라.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시 119:49).” 말씀을 붙든다는 건 그럴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가졌다는 것이다. 언제나 묵상할 때면 구원은 초자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그래서 성령이 없는 복음은 상업주의로도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원 장사, 은혜 장사를 하는 교회들이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점심을 먹고 수영을 갔다. 노인들 행렬을 따라 풀 안을 도는 것이라 수영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상쾌한 기분 때문에도 좋다. 사우나에서 두 노인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을 잘못 잤는지’ 하면서 어디가 아프고, 하루가 다르게 어디가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저들이 주를 아는지, 하나님을 믿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주어진 생을 다하는 게 모든 생명의 기본일 거였다. 나는 이를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 하는 말이 아니다. 충성이란 내 의견을 더하는 게 아니라 주신 바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오후께 혼자 극장을 찾아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왔다. 여전히 마음 한 곳이 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생을 보면서 ‘그럼에도’의 생을 바란다는 건 무리가 있을 거였다. 저쪽 건너에 앉은 이는 영화 내내 훌쩍거리며 울었다. 한 생을 다한다는 게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를 생각하였다. 저가 어찌 살았든, 어떤 사람으로, 어떤 생명으로, 어디에 있었든. “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잠 30:33).”
돌아와 책을 읽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가에 서서 한참을 생각 없이 서 있었나보다. 사장이 건너와 커피를 한 잔 대접하였다. 사업에 따른 이야기와 둘째 아이를 필리핀으로 보내 공부를 시켜볼까 한다는 말을 하였다. 생각이 정해지면 동생의 ‘이루는 교회’로 직접 연락을 해보시라 일렀다. 일상은 소소한 것 같으나 엄중하다. 에이 설마, 할 때 휩쓸려가는 게 운명이다. 누가 그리 될 줄 알았나? 모든 후회는 지나고 난 뒤에 밀려드는 법이다. 의식 있는 자로 산다는 건 그렇지 않은 자보다 고단할 것이나 주를 바람으로 살 수 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 119:50).” 감히 말할 수 있거니와 말씀은 언제나 나를 살리신다. 더는 바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그리워하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라. 노인은 말했다. 얼른 죽어야지. 너무 오래 사는 것도 욕이야. 못할 짓이지. 그래서 가끔 술을 한 잔 먹고 자면 아주 잠깐은 푹 잠들 수 있어. 나의 유일한 낙이지, 뭐.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두 노인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주의 긍휼하심을 바라고 구하였다.
주를 알지 못하는 생에 대하여 그 피폐한 영혼의 고달픔을 알 것 같았다. 생각보다 인생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주신 삶을 다하는 데 있어 주를 바라고 구할 수 있는 게 복이었다. 하나님으로 얻는 위로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대체 뭘 얼마나 고귀하여야 그 생이 훌륭할 수 있을까? 죽자고 덤비는 세상에서 그 모두의 주권자 되시는 이를 바로 안다는 것보다 고상한 게 또 있을까?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9).” 내가 가진 생의 위로는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서 난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내가 이와 같은 말씀을 의지할 수 있는 거였다. 스스로 생을 다하는 생명이란 없다. 주신 이가 또한 거두시기까지 살아서 그 삶을 다하는 게 충성일 거였다.
지하철로 비록 한 정거장의 거리였지만, 가고 오는 길에 마주치는 숱한 사람들의 인생살이를 생각하였다. 풋풋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에서 누구의 부축 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사람에 이르기까지, 누구는 절고 누구는 구르면서도 끝내 살아서 사는 날 동안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었다.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시 119:57).” 살아있는 모든 것의 몫이다. 창가에 놓아둔 가녀린 풀들조차도 제 생을 다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창조주 나의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다. 그리하여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는 오늘 시편의 말씀이 새삼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를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몰랐다. 그저 그때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 때로는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81).” 꾸부정하니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풀줄기가 안쓰러워 버팀목을 세워주었다. 보잘것없는 이것도 주신 바 맡기신 생을 다하는 것이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88).” 주가 나를 살게 하실 때 내가 주의 교훈을 지킬 수 있는 거였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때로는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일이 피곤한 일일 것이나,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 주가 행하신다. 주께서 행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게 순종이었다.
한 낮의 더위에 축 쳐져 있던 풀잎도 오후께 물을 주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들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잠 30:5).” 그렇구나. 그리하여서 그렇구나. 사우나 안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두 노인의 이야기와 오후께 본 <노무현입니다>가 교훈을 더하였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9).” 나의 생이 적당하기를.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 38:4).”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나의 악함에 대하여 나는 질식할 것 같으나 그것으로 주를 바란다. 건강도 생각도 생활도 그 무엇도 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겁고 어려운 것 같으나,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요즘은 말씀 그 자체로 족하다. 더할 사연이 없다. 가만히 되뇌는 것으로 족하였다. 이미 충분하여서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시 119:58).”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뭐라 한들, 애써 거들어도 소용없는 게 주의 영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모든 게 헛거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그러므로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시 119:63).”
곧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75).” 그리하여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76-7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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