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전봉석 2017. 9. 24. 07:37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예레미야 30:32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시편 83:13, 16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정치공방과 사사로움에도 이는 개개인의 분노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서도 안일하기 그지없는 무기력과 나태와 가벼움과 탐욕과 쾌락과 자기만족에 겨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주말 저녁 소래포구 쪽에서 축제의 고조를 이루며 폭죽이 연발 터져댔다. 밤하늘을 수놓은 오색찬란함이 우리 사람의 어쩔 수 없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의 우매함은 그러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

 

북한이 핵폭탄을 터뜨렸을 때, 미국이 한반도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을 한 언론이 시뮬레이션 하여 돌려봤다. 이는 45분에서 60분의 시간이 경과된 뒤였다. 아이가 수업 중에 물었다. 목사님은 어디로 도망가실 거예요? 뭔 소린가 했다. 자기 가족들은 부산에 있는 삼촌네로 갈 거라 했다. 아이다움의 안도였다. 그리고 나를 염려하는 것이다. 45분에서 60분. 참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었다. 서로의 말싸움이 유치하고, 상대를 ‘미친 폭탄맨’으로 조롱하지만 같이 대대거리는 꼴이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펑펑 쏘아 올리는 소래포구 불꽃놀이 축포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진짜, 나는 어디로 도망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 말았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45분에서 60분.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모처럼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두 권의 소설을 연달아 읽으면서 기분은 까부라졌다. 사람의 사람됨에 대하여, 그 어쩔 수 없음을 생각하며 주의 이름을 불렀다. 단원 고 아이 두 명의 유예가 발굴되어 그 어미 품으로 돌아왔다. 무너져 내리는 저들의 슬픔에 가슴이 저렸다.

 

어느 나라에는 지진이 나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는 세계 여러 곳을 훑고 있었다. 때 아닌 홍수에 허리케인에 지진에 폭설과 폭염이 닥쳤다. 창밖의 검은 하늘에서는 소래포구 쪽에서 쏘아올린 오색찬란한 불꽃이 사방으로 피어오르다 사그라졌다. 나는 어디로 피신해야 할까? 사람마다 사는 데 따른 사연이 꼬리를 물고 발목을 잡는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먹고 마시고, 노아의 때에 홍수가 나서 모두가 멸하기까지 거침이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성경구절을 가만히 바라본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달리 어떤 더 좋은 수가 있을 수 있을까?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30:32).” 이보다 더 안전한 피난처가 있을까? 주의 영광이 나에게 임하시기를.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시 26:8-9).”

 

가장 두려운 게 있다면 북한의 핵폭탄도 아니고 자연재해도 아닌, 주의 영광이 내게서 떠나는 것이다.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22).” 뭐가 어떻다 한들. 그래서 그게 어떻다 한들. 적들의 엄포와 실제 드러나기 시작하는 자연의 반격과 사람들의 이질감과 그 파렴치한 위선들보다, 주의 영광이 떠나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복되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겔 43:2).” 이를 소유하고 살 수 있는 게 복되었다. 우리는 부산에 사는 삼촌네로 피난 가면 된다는 아이의 안도감이 어찌 유치하다 하겠나. 미군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저들도 십수 년 전에 단종 된 45년 된 연식의 중고 헬기 기종을 어처구니없는 가격으로 수십 종을 구매해놓고도 손가락 빨고 있는 우리 군의 안이함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나. 뉴스를 보다보면 우리가 너무 한심해서 저절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럼에도 나는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이 무섭다. 몰랐다고 하는 이들이 나는 무섭다. 저마다 홍수가 났을 때 이미 닫힌 방주의 문을 두드리며 나는 아니라, 나는 몰랐노라, 그게 그런 게 아니라, 숱하게 이어져 나올 후회와 한탄을 상상하였다. 헬기에서 총을 난사하고 시민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했음에도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몰랐다, 나는 아니라 한다. 재판을 받는 그 누구도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우리의 사람됨이 참으로 악랄하다.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잠을 청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초딩 아이가 카톡을 했다. 내일 못 가요! 나는 무슨 소린가 했다. 두세 번 주일에 나오고는 더는 감감무소식으로 예배에 나오지 않는 아이였다. 어딜? 나는 짐작을 하면서도 설마, 하고 되물었다. 교회요. 왜? 친구랑 놀기로 했어요. 아니면 올 거였어? 그러려고 했죠. 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어쨌든 아이 마음에 뭔가 계속 있기는 있었던가보다.

 

주를 신뢰한다는 일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래서 목사님은 어디로 피난 가요? 아이의 끈질긴 질문에 나는 잠깐 머쓱해졌다. 내가 여기 지키고 있을게. 나의 말에 아이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참나, 서울보다 인천이 더 위험하대요. 아이의 이어지는 시나리오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부산까지 가면 좀 나을 거라는 결론이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 그냥 나는 여기 교회에 있을 테니까 너네도 이리 와. 아이는 건물을 운운하였고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운운하였다. 그 어떤 정치인보다 또는 전쟁전략가보다 아이의 방안과 모색이 일리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기 있을게. 아이는 말이 안 통한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사 60:4).”

 

주가 계신 곳. 그 외의 지경에 대하여는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시 83:13, 16).” 기어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30:32).” 하는 주의 말씀이 선봉에 서는 것이다. 요지경인 세상에서 나는 주의 백성이 되고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보다 안전한 게 또 있을까?

 

오전에 읽은 신명기 28장의 말씀도 누누이 그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듣고, 지켜 행하면, 청종하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1).” 이는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6).” 그 복이라 함은 주가 선도하시는 삶이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시 119:33).”

 

말씀만이 등불이 되는 삶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 그리하여 세상을 비추신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18:28).” 그러므로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신 28:10).” 주의 이름이 나를 위하여 불린다! 참으로 가슴 벅찬 소식이지 않나? 그리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 무던하여도 또한 의연함으로 나는 늘 한결 같을 수 있기를.

 

느닷없이 아이의 마음에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일 못 가요! 하는 아이의 카톡이 새삼스러움으로 소망이 되었다. 복이라 하면,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신 28:10).” 이 천하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를 위하여 불려진다는 것 아닌가!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12-14).”

 

그러게. 내가 할 일은 다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길이다. 순종, 그 들음으로 복이 있다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6).” 하여 나의 자랑은 오직 주의 이름뿐이다.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고후 12:6).”


곧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