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2-13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시편 82:5
가짜와 진짜가 섞여 어느 게 진짜인지, 너는 어느 쪽이냐? 하고 묻는 세상에 살고 있다.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우리 눈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어렵다. 포로 되어 잡혀간 바벨론의 조속한 멸망을 예언하는 쪽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는 쪽의 예언이 갈린다.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 29:5-7).”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우리의 역사는 기구하다. 굽이마다 온갖 잔인함이 판친다. 항상 가짜는 득세하고, 오늘 날에도 저의 회고록은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신봉자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는다. 뭐라 한들, 저들에게 들릴 리 없다. 5.18 광주의 참상은 그 사실에 더해지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과하고 있다. 읽다말고 여러 번 책을 놓아야 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잔혹할 수 있다.
국정원이 저질렀다는 심리전단지를 보며 낯부끄러워 어찌 이해가 안 된다. 설마, 하는 음지에서 사람 이하의 일들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데올로기를 위한 것인지, 정권연장을 위한 것인지, 그릇된 충성이 빚어낸 것인지, 뭐라 해도 형용할 수 없는 수치와 자괴감이 인다. 드러난 사실 앞에서도 저마다 논리와 변명으로 새로운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세상이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 82:8).”
모 교회 목사는 황제처럼 굴림하며 고급 세단을 타고 수십억대의 집에 들어간다. 저를 신봉하는 신자가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영접하고 저는 유유히 교회와 집을 오간다. 발포명령을 내렸던 이는 구국의 일념으로 어쩔 수 없는 통치수단이었다면서 일말의 속죄도 없다. 저를 두둔하는 이들은 그 당시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 득실거렸다며 총질은 정당하였다고 운운한다. 누구 손에는 태극기가 들리고 누구 손에는 촛불이 들리고, 누군 저를 지지하고 누군 이를 지지하고, 저마다 자기 좋을 대로 믿고 빻고 삿대질을 해대면서 산다.
나는 책을 읽으며 또 누구에 대한, 어떤 목사에 대한 보도를 보며,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는 말씀을 붙든다(렘 29:12-13). 그러면 그럴수록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인 것에 대하여.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시 82:5).” 부디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사 온전한 길로 가게 하시기를. 누가 보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무슨 일에 놓이든,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2).”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나로 하여금 세상에 익숙한 인물이 아니라 말씀에 익숙한 인물로 살게 하시기를.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119:102-103).” 그러니 세상을 두고 가짜니 진짜니 백날 운운한들 온통 그 밥에 그 나물이지 않겠나. 전념하라.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 다른 무엇을 운운할 겨를이 없다.
곧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4-5).” 어떻게 저와 같은 악을 선이라 할 수 있겠나, 싶어도 이것으로 또한 선을 이루어 가시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한다. 너무도 뻔뻔한 세상에서, 저마다 나름의 논리와 가치를 준수하며 나름의 선을 이루고자 하는 세상에서, 나는 오히려 환멸을 느낀다. 그 꿍꿍이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소설읽기는 그런 점에서 세상의 속셈을 엿보게 한다. 이는 속되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 내 안에 두시는 마음이었다.
점심을 먹고 시적시적 걸어서 조금 멀리 돌아서 갔다. 그늘은 차갑고 햇살은 따가웠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음걸음이 내게는 힘에 겨워 감사하였다. 나는 이 재주를 아주 오래 전 모 특수학교를 매주 토요일마다 다니면서 알았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해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체장애, 정식박약 아동들이 모여 생활하는 일층과 저들을 위한 특수교육시설이 갖춰진 이층의 학교가 양립하던 곳이었다. 말 한 마디를 끌어올리기 위해 온 몸을 비틀고 쥐어짜야 하는 아이와 대화를 할 때는 경이로움이 앞선다.
복도를 한 번 나설 때면 지면으로부터 끌어올린 상체를 철퍼덕 소리가 나게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여기서 오는 반동으로 하체를 이끌어 한 뼘의 진보가 이루어지고, 다시 안간힘을 다해 상체를 들어 올려 저만치 패대기를 치듯 바닥에 갖다 붙이면 딱 그만큼 하체는 이끌려 두 뼘을 나아가는… 물개를 연상하면 된다. 처음엔 기이하고 또 다음에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그의 진격은 세상 끝까지 거뜬하여서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었다.
또 한 아이는 키가 난쟁이처럼 작은데 나보다 형이었다. 기형적으로 상체가 하체보다 커서 저의 별명은 땅아리였다. 저가 운동장을 뛸 때면 팽이가 돌아가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듯 좌우가 움직일 때 상하 모두 역반동을 일으켜 상체가 앞으로 기우는가 싶으면 평소엔 몰랐던 하체가 디딤 발을 돋우며 땅을 내찼다. 저와 탁구를 친 적이 있는데, 어찌 형용할 수 없는 저의 아름다운 스매싱을 나는 사랑한다.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탁구공이 낮아졌을 때 이를 끌어올려 상대편 매트에 꽂아 넣을 때 그 스핀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게. 조금 먼 길을 돌아 다시 글방으로 가면서 나의 걸음이 그늘져 출렁거릴 때 느닷없이 나는 저들을 생각하였다. 다들 이제 나만큼은 늙어 어디서 무얼 하고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학창시절 내가 어쩌면 주말마다 저 아이들을 찾아갔던 것은 그 잘난 봉사도 아니었고 어떤 대단한 선행도 아니었다. 충분히 더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살아내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경이롭고 충성된 지 그때는 미처 정의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확실히 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드셨다. 이를 악하고 추하게 일구는 것은 사람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시 119:138).” 그 의는 한때의 추억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142).” 그것으로 주의 증거를 삼으시고 이를 깨닫게 하신다.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144).” 그러므로 내가 의지할 것은 말씀이라.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98).”
이는 내 발의 등이다. 빛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 종일 혼자 있을 때면 외롭고 심심하고 답답하여 때론 견딜 수 없다가도 지난 날 나의 거짓으로부터 나를 돌아서게 하심을 감사한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104).” 그리하여 더는 죄가 나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셨음을 말이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133).”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내 안에 이는 감정에 귀 기울였다. 시적시적 걸으며 생각하기를 어찌 한들 무엇으로 선을 이룰 수 있을까? 절망하였다. 굳이 다시금 말씀 앞에 앉는 까닭은 말씀으로밖에는, 말씀뿐이라. 나로 하여금 성경에 익숙한 삶으로만 살게 하시기를.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 139:19-24,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0) | 2017.09.25 |
---|---|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0) | 2017.09.24 |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0) | 2017.09.22 |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0) | 2017.09.21 |
전하리이다 (0) | 2017.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