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전봉석 2017. 10. 1. 07:05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예레미야 37: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때론 어려운 마음이 한다고 하는데도 그 일의 흐름이 마음 같지 않아서이다. 오히려 이럴 거면 왜 했나, 싶은 후회와 절망이 앞을 가릴 때가 있다. 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갇히었다. 저가 한 일은 주의 말씀을 전한 것뿐이다. 그때의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2).” 저들은 왕권을 잃을까 전전긍긍하였고, 저의 멸망을 선포해야 하는 주의 사람 예레미야의 갈등은 어떠했을까?

 

‘그와 그의 신하와 그 땅의 백성’은 승리를 원하지만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전할 수밖에 없던, 그리하여 “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16-17).” 그럼에도 전해야 하는, 절박한 주의 말씀이 있는 법이다.

 

여느 날 보다 일찍 눈을 뜨고, 말씀 앞에 앉아 생각이 많아졌다. 기어이 전해야 하고 견지해야 하는 말씀 앞에서 용맹함이란 그 결과에 굴하지 않는 것이겠다. 초연함이란 그리하여 주의 말씀만으로 세워지는 일이겠구나, 생각하였다. 현실은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고, 이게 아닌데 싶은 어떤 위기감이 실제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것 같다 해도 붙들 수밖에 없는, 증거 해야 하는. 나는 말씀 앞에서 자신감을 잃는다. 내 의지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이겠으니까 말이다.

 

내 안에 소망을 두시는 성령께서 하시지 않으면 어찌 견딜 수가 없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마음에 소원을 두시는 이가 이를 행하게도 하셔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사는 데 있어 그 일에 연연해하지 않게 하시기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긴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후였다. 결혼한 지 스물여덟째 해가 되었다. 아내와 둘이 식사를 하러 갔다. 어슬렁거리듯 동네를 돌았다. 차를 가지고 어디 나가는 걸 못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저녁에 딸애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와 하루 전날인 결혼기념일을 축하해주었다. 생각보다 감흥이 적었다. 고생만 시키고 짐만 되는 것 같아 은근한 마음으로는 미안함뿐이었다. 그러게. 때론 어려운 마음이 한다고 하는데도 그 일의 흐름이 마음 같지 않아서 말이다. 머쓱해서 일찍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서 아들 녀석의 일기장을 보았다. 힘들지? 하고 건넨 말에 아이가 여러 개의 일기장 가운데 하나를 꺼내어 보여준 것인데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없었다. 뭐라 적긴 적었는데 읽을 수 없었고, 그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것을 티낼 수 없어 나는 그냥 읽는 척만 하였다. 답답하여 여러 장을 넘기다가 눈을 떴다. 언제부턴가 공연히 아이들에게도 아내에게도 자꾸 미안함만 쌓인다. 안 됐고 서글픈데 뭘 어찌 해야 할지 몰라, 꿈속의 나처럼 그저 알아보지도 못하는 저의 일기장을 들고 아는 체만 하는 것 같다.

 

아, 다 늦은 오후께 친구가 지나는 길이라면서 멸치 세트를 추석선물로 주고 갔다. 명절 때마다 목사인 친구를 위해 일부러 하나 더 장만해서 가져다주는 것인데, 황송하여 고맙기만 하다. 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낼 때 어쩌다 내가 곁을 지켰다는 데서 보은이 되는 것인지, 안 그래도 되는데 그리 마음을 써준다. 것도 서둘러 가야 한대서 그냥 아파트 주차장에서 음료수 한 잔을 대접하고 보냈다. 주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니 주의 이름으로 되돌려주는 수밖에, 내겐 달리 갚을 능력이 없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 90:3-4).” 사는 일이란 속절없는 것이어서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시간 앞에서 어질머리를 느낀다. 할 때,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1).” 주께서 나의 중심추가 되지 않으시면 돌고 도느라 정신이 팔릴 것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2).”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어찌 표현할 길 없는, 마음의 서글픔에 대하여는 감당이 안 된다. 공연한 미안함이 자꾸 짐만 되는 것 같아 우울하게 옥죌 때 공교롭게도 그걸 짜증으로 또는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려 드는 내가 참 어리석다. 그런 나를 감당할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2).” 오늘 시편의 말씀이 새롭다. 사는 날을 바로 알고 살면서 주 앞에 온전할 수 있기를. 보면 다들 잃고 난 뒤에야 서러워서 미안함으로 가슴을 쥐어 뜯는 격이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4).” 한 순간일 뿐임을.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속절없음을 여실히 노래한다(6). 스물여덟 해. 만나서 연애하고 같이 알고 산 것까지 치면 삼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게, 참 길다 싶은데 ‘어느새’가 되었다. 어느새 두 아이는 장성하여 우리가 연애하고 결혼할 때보다 더 나이가 들어있으니. “우리의 모든 날이 …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9).” 하는 고백이 실감난다. 친구도, 많이 늙었더라. 선물을 받아들고 들어와 나는 무심히 중얼거렸다. 스무 살 때 같이 대학을 다니며 알았으니까 것도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정말이지 주께 빌어서 바로 알아야 할 기도구나(12). 우리 날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허투루 함부로 굴지 않는 생을 살다갈 수 있게 하시기를. 아내와 둘이 식사할 때 나는 대표기도로 그리 구하였다. 우리의 남은 날이 바르게 잘 살아드리는 날들로 채워지기를. 그리하여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와 같은 삶으로만 채워가기를. 하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 사는 날 동안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어가기를.

 

그러기 위해서도 육신을 잘 돌보고 건사해야 할 것인데,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고전 15:46).” 나의 어눌함이 참으로 민폐만 되는 것 같아 큰일이다. 어수선한 연휴 느낌 때문인지 어떤 불안은 고조되었다. 추석을 쇠러 멀리 강원도까지 가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냥 의연하고 말 일을, 그러려니 하고 대하면 될 일을 나의 몸은 너무 예민하게 받으며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육의 사람이 온전해야 신령한 사람도 그러할 수 있을 텐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나는 시편의 말씀을 읊조려 기도한다(14). 주의 인자하심이 아니고는 살 수가 없는 것을. 그것으로 나를 기쁘게 하소서. 곧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15).” 나의 어려움이 변하여 주께 감사와 기쁨이 되게 하시기를.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30:11).” 오늘에 두시는 나의 날들을 감사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곧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90:16).”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