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전봉석 2017. 11. 5. 07:2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에스겔 15:2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8

 

 

 

내 안에 드는 모든 감정의 출처가 불신앙의 것이었다. 조바심은 못 견디겠는 것으로 안달을 부리는 불신앙이었고, 걱정과 염려는 미래를 주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겠다는 증거이고, 외로움은 주님만으로는 만족함이 없을 때이며, 성급함은 주님을 기다리느니 내가 알아서 일처리를 해보겠다는 것이고, 성마른 짜증은 내 뜻대로 안 되니까 이는 하나님께 향한 반감일 것이며, 나름의 수고와 애씀은 미덥지 않은 마음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뜻이었겠다.

 

사사기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되풀이 되는 불신앙의 모습이 내 것과 다르지 않다는 데 놀랐다. 더불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인내하기를 우선 배웠다는 데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삼스럽게 그런 말씀이 다가왔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약 5:7-11).”

 

그래서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신 거였구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그러니까 포도나무야말로 기다림의 끝에 열매를 얻는 것이고, 열매가 없다면 불쏘시개로도 쓸모가 없는 나무이지 않겠나. 기다림을 빼면 아무 가치도 없는 포도나무를 들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일침을 가하신다.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겔 15:2).” 기다림이 배제되면 하등에 쓸모가 없는 것이어서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3).” 또한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4).” 곧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5).”

 

주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으면 도대체 가치가 없는 나무다. 기다림이 열매의 열쇠였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애 3:25).” 곧 내 안에 이는 온갖 감정의 출처가 바로 기다림에 대한 거부이면서 못 견디겠는 소요였다. 끊임없이 불신앙을 자아내는 요소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마음의 일이었다. 아, 그래서 인내라 하면 일시적인 이 세상 너머의 영원한 소망을 이루는 일이었구나. 주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인내의 열매를 맺음으로 주께서 쓰실 수 있었던 것이었을 테고.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6-18).” 그렇지. 심지어는 내가 늙어 또는 죽기까지 아무 쓸모가 없이 살다 간다 해도 이 모든 상황과 사건들은 연관이 있고 주의 뜻을 담고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하였다.

 

낮에 읽은 한 우화이다. 하루는 모세가 우물 저편에 앉아 물끄러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한 여행자가 돈 주머니를 들고 와 급하게 우물을 마시고 성급히 떠나는 바람에 돈 주머니를 놓고 갔다. 그 뒤를 다른 여행자가 우물곁으로 왔다가 돈 주머니를 발견하고 황급히 돈 주머니를 들고 오던 길로 돌아갔다. 다시 조용해진 우물에 다른 여행자가 와서 목을 축이고는 그늘진 곳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 돈 주머니를 놓고 간 첫 번째 여행자가 되돌아와 다짜고짜 잠들어 있던 여행자를 깨워 자신을 돈 주머니를 내놓으라고 시비가 붙었다가 그만 저를 칼로 찔러죽이고 말았다.

 

이를 본 모세는 한탄하며 하나님께 항변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하고 한심한지.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물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처음 사람은 도둑이다. 남의 돈 주머니를 훔쳐 달아나던 중이다. 두 번째 사람은 그 돈 주머니를 잃은 자의 아들이다. 늙은 아비를 대신해서 돈 주머니를 찾으러 온 사람이었다. 세 번째 사람은 살인자였다. 저가 살인을 하고 잠들었다가 그 일을 당한 것이다. 모든 상황을 네가 다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그 모든 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1).” 이 기도문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의 힘으로 나를 능하게 하신다. 곧 나로 하여금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을 이루게 하신다. 그것으로 나는 빛 가운데 살아간다. 이는 훗날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한다.

 

기쁨으로 오래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것. 말도 안 되는 이 아이러니가 성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브라함을 위시하여 요셉의 이야기에서, 모세의 이야기에서도 저들의 참고 견딤은 수행과 수고와 애씀의 결과가 아니라 그리할 수 있었던 바로 그 기쁨의 출처가 ‘성도의 기업’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의를 향한다. 하나님은 선을 이루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누구의 죽음은 또한 누구에게 새로운 삶이 된다. 그의 배에서는 여전히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8).” 프랑스 남부에 가면 한 성탑 돌벽에 ‘인내’라고 적은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는 17세기 말, 메리 투란트라는 14세 소녀가 이단으로 몰려 감금되고 38년을 갇혀 있는 동안 손가락을 적어놓은 글씨라고 했다.

 

지금도 그 글자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저마다 인내라는 단어를 새기며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끝내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한 소녀의 인내가 고스란히 자신들의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다. 저는 수차례 ‘신앙을 부인합니다.’ 하는 서류 한 장에 서명만 하면 풀려날 것을 회유당하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하루하루 저를 견디게 했던 힘은 무엇일까? 그저 남다른 투철한 의지였을까?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

 

주의 영광의 힘이 우리들로 하여금 인내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셔서 우리로 그리 능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기쁨이라니.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이 가능하게 하시는 거였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알 수도 없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이를 세상에 감추어 놓으신 것이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19:42).” 이를 오늘 내게 특별히 알게 하시려고, 어떤 어려움도 환난도 역경도 심지어는 질병이나 죽음까지도 허용하시는 것이다. 더 가치 있고 더 고귀한 소망에 대하여.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 그러므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이를 내게 알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종일 들어앉아 책을 읽거나 화초에 물을 주거나 간간히 서성거리며 청소나 하는 정도의 하루였다. 날이 쌀쌀해지면서 옥수수 물을 자주 끓여마셨다. 독감예방 주사를 맞아 몸이 으슬으슬했다. 아내는 중3 아이 수업이 있어 오후께나 수업이 끝났다. 늘 그렇듯 주일에 쓸 음식 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때론 책상에 앉아 있기가 힘들다. 누웠다 서성이다 종종 창밖을 내다보며 무작위로 떠오르는 아이들을 생각하였다. 생각한들 기도밖에 더 있나. 굳이 나에겐 인내랄 것도 없는, 평온함뿐인 것이다.

 

가만히 주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을 목격하는 자로 산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직접 당사자가 되어 누구를 상대하고 어떤 일을 지휘하지만 내겐 늘 토요일 오후 같은 평안함이 깃든다. 돌아보면 모든 게 견딜만한 것이었다. 아니, 어찌 설명하기 어려운데 어떤 일과 일의 연관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주 모르겠어도 상관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므로 모든 사건은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 비록 세상은 더 헝클어지고 망가지는 것만 같아도. 그 가운데 내가 기쁨으로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심이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8).” 그와 같은 확신이 내 것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을. 내가 무엇으로 도움을 얻을 것인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 그렇지.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2).”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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