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전봉석 2017. 11. 27. 07:01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37:5-6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시편 143:8

 

 

 

주님만 보고 가야지, 내가 뭘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매번 이와 같이 상기시키시는데도 번번이 나는 마음이 아프다. 속이 상한다. 안 오면 걱정되어 속이 타고, 나오면 늘 그 모양이어서 속이 터진다. 이를 어찌 표현하면 좋을까? 그나마 주일을 기억하고 여기까지(!) 나온 것으로 기특하게 여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무지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애를 태워야 하는 것인지. 모처럼 예배에 나온 것이고, 또 군에서 휴가 나온 동생아이도 있겠다, 거기다 선생이 하루 전에 생일이기도 하였다니 좀 이래저래 안부라도 건네면 좋으련만…. 참 이기적이다. 여전히 자기밖에 모른다.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은 넷이 오네, 다섯이 오네, 서로 약속을 정하고 어쩌고 하면서 한 주간 내내 부산하였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직접 만들어 먹을 간장떡볶이거리를 준비하고, 물감불기(?)를 할 채비를 다 했던 터였다. 한 녀석은 느닷없이 졸업 여행 준비를 하러가네, 누군 뜬금없이 엄마랑 자전거를 타러가네, 서로 어쩌고저쩌고. 주일 아침 아이들 카톡방이 한참을 시끌벅적하더니 결국은 아무도 오지 못했다. 나 원.

 

마침 어린아이들도 안 왔겠다, 두 녀석은 다 자란 것이니. ‘삼손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를 기억하라고, 이를 자기만의 장점이나 특권으로 여기지 말라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럴 바엔 차라리 불구자로 살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부디 은혜 앞에 그것을 주신이가 누구신지, 왜 그걸 우리에게 맡기셨는지, 이를 함부로 여기면 어찌 되는지…. 왜 그 명석함을 허튼 데만 사용하는지, 아직도 십일조를 할 줄 모르고 주의 것을 주께 올려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는 일에 대하여….

 

조금은 거칠게, 직설적으로 증거하였다. 그래놓고 속상한 건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옆에서 같이 식사를 하며 일이 생겨서 또는 너무 멀어서 힘들 때면 가까운 예배당에라도 가서 주일을 꼭 지키라는 당부에 아이는 피식, 농담으로나 듣는 것이다. 얘가 대체 뭘 들은 걸까? 나는 화가 났다. 속이 상하는데 뭐라 더 말할 수 없었다. 밥만 먹고 휑하니 돌아간 아이를 생각하며 애를 끓이다 다 저녁에 결국 위경련이 일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알면서도 또 그런다. 안 오면 걱정되고 오면 속상하고.

 

이런 나의 마음을 오늘 아침도 말씀으로 위로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5-6).” 마른 뼈처럼 다 죽은 줄 알았는데 기어이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힘줄을 두고 살을 입혀 가죽을 덥고, ‘너희가 살아나리라.’ 그것으로 주가 주님이심을 알게 하시겠다는 말씀 앞에서 아이 생각으로 속상하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내가 이고 지고 갈 수 있는 무게가 아닌 것이다.

 

아내는 그리 말을 해주었다. 여기까지 그래도 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야. 우리가 뭘 하겠어? 괜히 또 속 끓이지 말고, 떡볶이 재료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 주일에 쓰면 돼. 아니면 우리가 해먹고 새로 사도되고. 여장부처럼 털털 털어버리는 아내와 달리 나는 시무룩하여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저녁으로 먹은 생칼국수면에 속이 볶인 것이다. 어쩌겠나. 나 역시 이리 생겨 먹은 걸. 나는 약을 털어 넣고 한참을 앉았다 잤다.

 

그리고 말씀이 곧 나의 기도이지 않나.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 143:8).” 다른 더 좋은 수를 모르겠다. 주를 의뢰할밖에. 하긴 저렇게 잘난 아이가 여기까지, 것도 아직, 이제는 가끔이지만 그래도 온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지 않나.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와 가장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고 가장 좋은 여건으로 살면서, 어쩌다 저리 가난하게 굴고 있는 것인지.

 

아무리 말씀 중이었다 해도 괜히 말했나, 싶게. 말씀이 내 속에 얹힌 듯 답답하였다. 아이를 배웅하면서 어깨를 툭툭 칠 때, 괜히 눈물이 핑, 돌기도 하였던. 잘난 저 애가 여기까지 오는 것이 기적이라면 이처럼 못난 나를 세워 목회를 하게 하시는 것도 신기하였다. 답답함에 울컥하지만 것도 또한 내 몫이 아니라. 그래, 오늘의 이 일상이 나를 만든다. 내가 안고 씨름하는 것이 결국은 다 나를 위한 것이겠으니. 그런 가운데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다. 말씀의 위로가 배가되어 크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34:8).” 다른 더 큰 복이 무엇이겠나. 그리하여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143:8).” 결국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게 하시려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고로 나의 골수에 기름진 것으로 먹이시려고,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 63:5).”

 

나는 알지 못하나 나의 영혼을 먹이시고 채우시는,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 신기하지? 아침엔 또 이렇게 멀쩡하게 속도 편안하니 일어나 앉아 말씀을 섭취하게 하신다. 내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으로 나를 이미 먹이시며 그 힘을 공급하고 계시는 거였다. 곧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시 143:10).” 그리하심이다. 그러려고 그리하심이었다. 내가 아이로 애태우는 건, 나를 자라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양육이셨다. 내가 그리 짐작하는 건 확실한 주의 말씀 때문이라.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7:14).” 그리 아는 내가 살아난 게 아닌가. 더는 다른 것으로 위로를 삼으려들지 않고, 오직 주께만 의지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3).”

 

그래. 그리 알고 명심하고 또 묵상하며, 나나 잘 살자. 말씀으로 전하되 안달부릴 거 없고, 애가 탄들 안 오는 걸 어쩔 것이며 자기 고집대로 구는 거야 별 수 있겠나. 주가 하실 것을.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27).” 말씀 붙든다.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28).” 이를 내게 두신 한 날 가운데 보고, 듣고, 느끼면서. 윽박지르고 강제하는 것으로는 어쩔 수 없어다는 걸.

 

그래서 묵상이고 기도였다. 나에게서 벗어나게도 하시려고, 도로 일상으로 보내시기도 하면서. 그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주가 나의 주님이신 것을. 결국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이보다 더 선명한 소망이 또 어디 있겠나.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이가, 한 영혼을 두고 씨름하게 하시는 까닭이었다. 어느 가까운 훗날 아이도 오늘의 나처럼 주 앞에 앉아 자신을 돌아보며 송구해하며 그 은혜에 감사할 것을 안다.

 

주의 긍휼하심 앞에 아멘, 하고 엎드릴 것을.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그렇듯 나의 부모형제가 걸어가고 있는,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 여겨오는, 산 소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그래그래, 말씀밖에 답이 없다. 이 아침 주께 아뢴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시 143:1).” 이는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5-6).” 그러라고, 그리하게 하시려고, 나를 애태우신다. 애간장을 녹이신다. 마른 뼈만 남기셨다가 힘줄을 두어 살을 입히고 가죽을 덮어 생기를 불어넣으신다. 너는 군대라. 아직은 맞서 싸워야 하나니. 그 힘을 잃지 않게 하시려고.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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