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3 주일
룻기 1:15-18
현숙한 여인, 룻
1: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줄거리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였다.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 거류하였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다.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맞았다.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이 거기 거주한 지 십 년쯤 되었다.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죽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했다.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새로운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한다.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고 서로 소리 높여 울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돌아갔다. 하지만 룻은 그를 붙좇았다. 나오미가 다시 말했다.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으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지만 룻이 말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은 단호하였다.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다. 베들레헴에서 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이가 나오미냐?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다는 소문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퍼졌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였다. 저들은 땅을 매각할 수 없으며, 아들을 보지 못한 여인은 그 친족이 거두어 그 대를 잇게 하였다. 하루는 며느리 룻이 나오미에게 말했다. 내가 밭으로 가서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그래서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그 밭은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렀다. 그리고 한 소녀를 보았다. 이는 누구의 소녀냐? 저는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에게 물었다.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입니다. 사환이 말했다. 보아스가 룻에게 말했다.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보아스도 룻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한다. 보아스가 말했다. 보아스는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단 사이에서 곡식을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라고 일렀다. 아니,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더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도 하였다. 룻이 이 모든 일을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나오미는 말했다. 그 사람이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저를 알고 있었다.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기 거주하였다.
그날은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는 날이었다.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시어머니 나오미가 일러주었다. 룻은 시어머니가 이르는 대로 행하였다.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누웠다.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웠다. 밤중에 그가 놀라 룻인 걸 알았다. 룻이 말했다.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보아스가 말했다.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보아스는 덧붙여 말했다.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갔다. 거기 앉아 기업 무를 다른 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보아스가 그에게 말했다.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았다.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도 여기 앉으라. 하고,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말했다.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한다.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한다.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다. 그러자 그는 내가 무르리라 말했다.
보아스가 다시 설명했다.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인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한다. 그러자 그 기업 무를 자가 말했다. 그럼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겠다.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그렇게 하여 자신의 신을 벗어 사람들 보는 앞에서 보아스에게 주었다. 옛적부터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할 때 그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어 증명하는 전례가 있었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확정했다.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다.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겠다.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하겠다. 너희가 오늘 증인이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다. 룻이 임신하여 아들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어려움에도 자리를 지키는 게 믿음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흉년이 들어 저들이 모압 땅으로 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항상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럴 수 있다고 해서 그래도 된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 17:5).” 주를 믿고 따른다는 건 무수히 많은 ‘그럴 수 있는’ 함정에 처한다는 소리다. 주를 떠나고 교회를 떠나는 게 나을 때가 많다. 그럴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더 나은 자신의 꿈을 위해. 우리는 모두 나름의 이유로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성경의 기본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분명히 하신다. 그러므로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사 31:1).” 하나님 아닌 것으로 의지할 때 그 결과는 자기 몫이다.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기회는 주어진다
누구는 돌아갔고 누구는 남았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 1:9-10).” 누구는 알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 오르바는 돌아갔고 룻은 남았다. 누구는 따랐고 누구는 외면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또한 누구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28-32).”
말씀을 붙좇는 신앙
룻은 나오미를 따랐다. 저의 신앙을 받았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16).” 단지 의리를 따른 게 아니다. 더 나은 쪽을 택한 게 아니다. 이방 여인이었지만 룻은 하나님을 알았다. 이를 바울 사도의 목소리로 정리해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우리는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그게 뭘까?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14).” 이 땅이 생의 전부가 아닌 것을 알았다. 누가 알겠나? 죽고 난 뒤 영생이 있을지, 없을지. 있다면 어떤 영생의 삶일지. 전에 한 아이가 물었다. 그러다 죽었는데 천국도 없고 하나님도 없으면 어쩌실 거예요? 그래서 나도 물었다. 그러다 죽었는데 천국도 있고 하나님도 계시면 어쩔 거니?
자기의 주도권을 양도하는 일
룻은 어머니의 것이기를 원했다. 어머니의 하나님의 것이기를 원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으로 그 주도권을 양도하지 못하는 한 어림없는 일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살면서 우리가 의를 행한다는 데도 나름의 희생을 운운하는데 하물며 영생을 앞에 두고서야,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4).”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다. 주를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것이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 147:11).”
우연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다
우리는 우연히 글방을 오게 됐고, 서로 알게 됐고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2:3).” 하지만 우리의 우연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마침이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4).” 마침 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연과 마침 사이에서 우린 종종 갈 길을 잃는다. 우연과 마침 사이에서 설마가 극성이다. 설마, 하는 막연함이 우리를 주저하게 한다. 농담으로 듣게 한다. 당장 더 가려운 곳에 손이 가게 한다.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요셉의 증언을 들어보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7-8).”
확신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20).” 누가 알겠는가? 산 자 중엔 죽어본 자가 없고,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영생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지 없는지. 공연히 우리만 어리석은 자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까지도 인다. 그러나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성경의 숱한 사람들이, 역사 속의 숱한 그리스도인들이 앞서 걸어간 사실이 있다. 잘 모르겠거든 양무리를 따라 걸으라.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아 1:8).” 같이 가자.
영적인 타작마당
그날에 알곡과 쭉정이는 가려질 것이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그때 가 봐야 알겠다면 그때까지 살아보는 수밖에. 갈 데까지 가 봐야 알겠다면 또한 끝까지 가 봐야지 별 수 있겠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성경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였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룻은 돌아가는 게 현명하였다. 과부가 되어 기구한 과부 시어머니를 따라 저의 고국으로 따라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붙들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타작마당에 서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는 죽음이 그 관문이라면 저 땅에서는 믿었던 자와 믿지 않았던 자의 자리가 갈릴 것이다. 안 믿어지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죽음 앞에서 돈도 명예도 나름의 소신도 보람도 무슨 위로가 될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호소하는 듯하다.
나오는 말
성경에 등장하는 현숙한 여인들을 통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저 이방 여인으로 일찍이 생과부가 된 모압 여인 룻이 훗날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저는 알았을까? 기생인 척하여 시아버지 유다에게서 베레스를 낳은 다말이 예수님의 계보를 이을 줄이야! 여리고 성의 라합이 ‘우연과 마침 사이’에서 살몬을 선택하였고, 모압 땅 룻이 보아스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이 이새를, 이새가 다윗을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이 나오고 후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구세주가 탄생하실 줄이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이를 듣고, 보고, 느끼고 누군 돌아가고 누군 남는다. 누군 제 갈 길로 가고 누구는 따랐다. 이를 누가 강제할 수 있겠나? 다만 분명한 사실은 그와 같은 은혜가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5).”
오늘 우리가 섬기는 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살던 대로 그냥 살든지 또는 거주하는 이 땅에서 남들처럼 살든지, 너희는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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