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0 주일
사무엘상 2:1-10
한나의 기도
2: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2: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2: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2: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들어가는 말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살았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 한 사람은 한나고 한 사람은 브닌나였다. 브닌나에겐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엘가나는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다. 당시의 제사장 엘리에게는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었다.
엘가나는 제사를 드리는 날에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로 주며 그를 더욱 사랑했다. 그러나 여호와는 한나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다. 이를 빌미로 둘째 부인 브닌나는 늘 한나를 격분하게 하고 괴롭혔다. 매년 한나는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가 격분시키므로 먹지도 않고 울었다. 그의 남편 엘가나가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마음이 슬픈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엘가나는 슬퍼하는 한나를 달랬다.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성전에 남아 괴로운 마음으로 주께 기도하고 통곡했다. 한나는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가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는 동안 엘리 제사장이 이를 보고 그가 술에 취한 줄로 생각했다. 엘리 제사장이 다가와 말했다.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했다. “내 주여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엘리는 그의 말을 듣고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말하였다. 한나는 이어,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답하였다.
한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음식을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라마의 자기들 집으로 돌아갔다.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셨다. 한나가 임신하였다.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하는 뜻이다.
한나는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젖을 뗀 후에 아들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로 올라갔다.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갔다. 한나가 엘리를 보고 말했다.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합니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입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 한나는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 어머니 한나는 매년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 주었다.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였다.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다.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랐다.
※ 한나의 기도에서 배울점
1. 우리의 유일한 기쁨은 하나님이시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1).”
한나가 기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남모를 고통 때문이었다. 고난은 기도의 촉매제이다. 저는 브닌나로 인해 견분하였다. 실은 시샘이 났고 부러움이었으며 질투였고 억울함까지 보태어진 마음이었다. 이를 누구에게 말한들, 그 마음을 누가 알까? 오늘 한나는 이를 기도로써 고백하고 있다. 간단하다. 하나님으로 즐겁다는 것, 주께서 나를 높이신다는 것, 나로 하여금 저들 앞에서 말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고통이 축복이라 하면 듣기 싫다. 한데 돌아보면, 그게 나를 유익한 길로 인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사 29:19).”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저들이 추구하는 기쁨과는 별개의 것을 기뻐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라고 증거하였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2.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대상은 오직 주밖에 없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2).”
도대체 무얼 의지하며 사는 것일까? 돈, 명예, 출세, 성공, 남들에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오늘 말씀은 이를 재점검하게 하신다. 돈이 많아도 죽는다. 힘과 권세가 능하여도 늙는다. 당장은 모르겠으나 곧 우리 앞에 이르게 될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며 살고 있을까? 잘 이해가 안 되면 원로 가수나 배우들을 보자. 그 곱고 아름답던 미모도, 그 화려했던 인기나 명성도, 또한 저가 축적하였던 그 엄청난 부와 권세도, 어느 것도 나이듦을 막을 수 없고 죽음을 대신할 수 없다.
그 너머의 생에 대하여는 무엇으로 예비할까?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히 1:11-12).” 그것들은 무엇인가? 주밖에 다른 의지의 대상들이었다. 그러므로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3. 하나님은 말이 아닌 행동을 달아보신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3).”
나름은 다들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그럼 그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약 2:18).” 고로 그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 단호하였다. 우리의 착한 행실로 사람들이 우리가 어떤 이인가를 알게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인가, 알려면 그가 어울리는 친구와 주로 관심을 두는 일과 지금 즐기는 것을 보면 안다. 성경은 이를 열매로 비유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사람들이다. 그럼 그 열매를 보고 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4.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신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6).”
살고 죽는 일이 하늘에 달렸다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도 잘 안다. 낚싯배에 탔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살았고 누구는 죽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다. 이를 그저 운으로 돌려 재수가 없다, 있다 하는 말로 가벼이 여길 수 있는 문제일까?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누군 이 신을 믿고 누군 저 신을 믿고 누군 아무 신도 안 믿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시라. 우리는 확신한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9).”
5. 하나님이 하신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8).”
우연은 없다. 운이 좋았네 재수가 나빴네 하는 따위의 말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때론 내 생각과 틀려도, 아니 오히려 더 곤란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하신다 해도 우리는 그 모든 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안다. 성경에서 기구한 운명으로 살다 간 요셉을 보자. 저는 얼마든지 분풀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당장은 희미하여 확실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이로써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나오는 말
그러게 말이다. 누가 알겠나? 다 나름 저들마다의 논리가 있고 생각이 있고 붙들고 사는 신념이 있고 가치가 있고, 때론 무개념이 상팔자인 세상인데 이런 말씀을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그렇다면, 살자. 살아서 끝내 살아보고 결정하시라.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오나니 당장의 겨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이지 않나? 나이 들고 병 들면 안다. 느닷없는 낭패가 말해준다. 아뿔싸,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오나니,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그래도 다행인 게 아직 우리는 살아서 고통을 겪고 고난 가운데서 주를 바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돌이켜 죽기 직전 십자가 위에서 주를 영접하였던 어느 강도의 아찔함처럼.
우리는 이를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신 11:19-20).” 좋은 학원에 다니고 수천만 원을 들여 좋은 대학을 다니는 게 능사가 아니라,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욜 1:3).”
내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입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그 주를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만난 이 귀하고 복된 소식을 가장 먼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세상 모든 열방을 향해 마땅히 가르쳐줘야 한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말씀 붙들자.
오늘 우린 한나의 기도에서 다섯 가지를 배운다. 첫째, 우리의 유일한 기쁨은 하나님이시다. 둘째,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대상은 오직 주밖에 없다. 셋째, 하나님은 말이 아닌 행동을 달아보신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신다. 다섯째,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므로 이를 다시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당부한 말씀으로 연관 지으며 마친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전 3: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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