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거룩한 방

전봉석 2017. 12. 2. 07:12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에스겔 42: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시편 148:13

 

 

 

동생 가족들이 밤늦게 와서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묵상을 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글방으로 올라왔다. 12월의 찬바람이 콧구멍을 뚫는 것 같았다. 전날에 내린 눈발이 얼어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 몇이 고단하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거리 신호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글방. 나의 교회. 주님은 문득 이렇게 들려주신다.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42:13).”

 

거룩한 방이다. 주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주의 것을 먹는 곳이다. 나는 종일 이곳에서 책을 읽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람을 만나고 누워 졸기도 하면서, 주를 가까이 하며 주의 음식을 먹는다. 이는 거룩한 곳이라. 이를 알게 하려고 우리는 저녁에 가정 예배도 성전에 올라와서 드리고 있다. 아이가 일 끝내고, 아내가 수업 끝내고 이곳에 와서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차를 마시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

 

기적이 일어났어. 아내는 수선을 떨며 어제는 한참을 앞서 이야기 했다. 한 아이엄마가 얼마간의 교육비를 보낸 것이다. 이래저래 다들 어려우니까, 아내 말로는 밀린 교육비만 다 들어와도 돈 천만 원은 훌쩍 넘을 거야, 한다. 그런데 어제 교육비를 보낸 아이 같은 경우가 가장 좀 심하기는 했다. 그런데 아이가 좋아하고, 또 달라지고, 재미있어 하니까 더는 뭐라 하지 못하고 주님께 드린것이었다. 그러니까 아내는 거의 포기해야 할 경우 그 교육비를 하나님께 청구하는 식으로 앞으로 저로 인한 수입은 모두 교회 후원헌금으로 바치는 식이다.

 

아이엄마는 새 아저씨와 같이 산다. 앞서 낳은 큰 딸은 나가서 따로 살고 스물이 넘은 형은 하루 종일 게임만 하다 저녁에 잠깐씩 밖을 나간다. 아저씨가 집에 들어와 살면서 엄마가 밤에 일을 나가지 않고, 지난주에는 같이 자전거도 타러 갔었다. 아이는 그런저런 이야기를 허물없이 하면서 유난히 글방 오는 걸 좋아한다. 글쓰기도 제법 늘어서 한 시간에 1200자는 뚝딱 쓴다.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감사하고,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엄마의 카톡 내용을 읽어 주며 아내는 뭉클했다. 그러게 월세만 간신히 내고 관리비를 못 내고 있었는데, 그거 참.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놓고 기도한다. 우리 마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어서, 우리에게 맡기신 교회와 글방과 아이들을 두고 주의 사랑을 간구한다. 동기 전도사가 금요예배를 가는 길에 전화를 하여 친정엄마가 심장 조형 수술을 했다고 기도를 부탁했다. 아들애가 그렇게 자주 잔병치레를 해서 지난주엔 또 병원에 입원을 했었단다. 기도해 주세요, 하는 말과 위해서 기도할게, 라는 말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들어앉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나.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148:13).” 주를 바라는 것. 어제 아침의 묵상처럼 주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걸 기뻐하시지 않던가.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147:11).” 이렇듯 새벽에 글방에 올라와 주를 바라는 일. 여기는 거룩한 방이라. 나는 오늘 아침 말씀이 주시는 의미를 오래 되씹는다.

 

함부로 나다니지 못하게 하시면서 이처럼 주의 글방에 들어앉아 뭘 해도 이 안에서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유도하심의 의미를 알겠다. 아니면 내가 저 어린 것을 뭐 그리 안타깝게 여길 것이며 또 저의 얘기를 귀담아 듣기나 하겠나. 가끔은 아빠가 보고 싶어요. 그런데 왜 이혼 했는지는 스무 살이 돼야 가르쳐준대요. 대충은 알아요. 아이의 맹랑한 구술을 듣고 있다 보면 어른들이 아이들 속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다 듣고 눈치 채고 알면서도 엄마가 슬퍼할까 봐, 나이 많은 형 누나가 화낼까 봐, 아이는 모르는 척 할 뿐이었다.

 

은혜는 소란하지 않다. 어수선하고 요란하지 않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20:16).” 문득 보면 내 앞에 걷는 이가 나보다 늦된 이였다. 내가 앞서 걷다 돌아보면 그처럼 큰 산 같던 이가 저만치 뒤에 멀어지곤 한다. 가장 현명한 길은 무던하면서 묵묵한 것이다. 나는 내가 목사가 되면 요란을 떨 줄 알았다. 나름 생각하던 일도 있다. 멋지게 그려보던 목회에 대한 그림도 있었다. 그 막연하였던 나의 상상은 글방으로 집약되었다.

 

거룩한 방이라. 하나님은 그런 자를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게 하시면서 어디에서도 함부로 나대지 못하게 하심으로, 나를 온전히 들어앉히셨다.

 

예전처럼 함부로 굴었다면,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4:4).” 빤한 일이다. 그러므로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18:10).”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길 줄 알게 하시려고. 누구에겐 하찮은 일이겠으나 좋아라, 하는 저 아이의 마음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 원리였구나.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2).” 그러라고 나를 약한 데 두신다. 가끔 누구랑 얘기할 때 당신은 모를 거다, 하는 식으로 여기며 이해를 구하는 이에게 나 역시 안정제를 복용하며 산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의 약한 데서 강함을 드러나게 하시려고, 그리하여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8:35).”

 

어려움은 그저 어려움이지 그것으로 주저할 게 아닌 것이다. 때론 불편하나 부끄러운 건 아니다. 함부로 굴며 내가 나를 의롭게 여기지 않게 하시려고, 이를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시려고,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18:9).” 나는 가만히 주를 바란다. 글방은 내게 그런 곳이다. 그런데 이런 누추한 곳을 주의 거룩한 방이라 여기시다니. 그렇지. 회개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이셨다. 돌아보면 모든 게 부끄러운 것뿐인데, 그래서 이를 무장하고 아닌 척 굴며 애쓴 것인데.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렇구나. 나의 약함을 약함으로 인정하면서 그것으로 주가 이루시는 세계를 본다. 내가 그렇게 위트 있거나 재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아이들이 글방에 오는 걸 좋아하는 건 그야말로 신비다. 때론 퉁명스럽고 때론 무뚝뚝하여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사람을.

 

이처럼 주의 거룩한 방에 두시고 주를 바라는, 그의 인자하심을 사모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삼아 주시니 이것이 은혜로다. 아내의 호들갑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듯하나 새삼 주의 은혜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아내의 약은 지혜도 놀라웠다. 돈이 안 들어온다, 아이가 그만둘 것 같다 싶으면 얼른 이를 교회로 돌려 주께 바친다. 그 수입은 모두 주의 것입니다. 그 아이는 주의 아이입니다. 우리에게 두시는 전부가 그러하겠으나, 이를 바로 알게 하시려고 주는 그리 환경을 놓아두시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아내의 마음이 평안할 수 있는 것이 그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날마다 체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게 아닌 것을. 여기까지 온 것도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 일구어낸 삶이 아니었음을. 목사님은 참 편해 보이십니다. 이곳만 오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하는 이의 느낌이나 판단이 결코 사사로운 게 아닐 것이다. 내가 아니라 내 안의 주의 영이, 나의 글방이 아니라 이를 거룩한 방으로 삼으시는 주의 긍휼하심이 은연중에 저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붙들리게 하시고, 좋아라, 하게 하시는 거였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148:1).” 왜 그래야 하는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2-4).” ?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5).” 나를 이렇게 지으신 이가 나로 하여금 찬송하게 하시려고,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6).”

 

비록 지상의 단칸 방 하나에 세 들어 글방으로 들어앉아,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일 뿐이겠으나. 겨우 이제는 코흘리개 아이들이나 드나들며, 누가 휘익 지나는 길에 들러 차 한 잔 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 것 같으나, 그 잘난 모든 것들아 찬양할지어다.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7-12).”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13).”

 

빈부귀천 높고 낮음이 모두 주의 이름 앞에서는 사사로운 것이었으니,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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