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사무엘상 28:15, 30:6 / 다급하였던 두 사람

전봉석 2018. 2. 2. 13:38

20180204 주일

 

 

사무엘상 28:15, 30:6

다급하였던 두 사람

 

 

 

28: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주변 상황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 시글락에 은신하던 때였다. 저는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체 하여 목숨을 부지하였고(21:10-15), 이로써 아기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아기스는 더 이상 저를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에게 시글락 땅을 내어주어, 그곳에서 다윗은 14개월을 살았다(27:5-6). 다윗은 그동안 그술 땅을 치고,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여 이기었다. 아기스 왕은 그럴 때마다 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노략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10).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12).”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하였다. 아기스는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라.” 다윗은 난감하게 되었다. 아기스는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할 정도로 저를 신뢰하였다. 그들의 군대가 아벡에 모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쳤다. 이때 블레셋 수령들이 왕 앞에 나와 다윗이 같이 전쟁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 히브리 사람이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저들의 염려는 간단하였다.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는 다윗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말하였다.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였다. 다윗은 못이기는 척,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갔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갔다.

 

사울의 상황

 

그 시각,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다. 그런데 블레셋이 수넴에 이르러 진을 치매, 사울도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을 쳤다. 그런데 사울이 블레셋 군대의 위용을 보고 두려워 그 마음이 크게 떨었다. 그래서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초조하였다. 사울은 다급히 신하들에게 일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고 하였다. 신하들은 엔돌에 가서 신접한 여인을 찾았다.

 

사울이 변장을 하고 두 사람과 같이 밤에 그 여인에게로 갔다.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올리라.” 사울은 여인에게 명령하였다. 여인은 되물었다. “당신은 사울이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모르십니까? 어찌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죽게 하려하십니까?” 그러자 사울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장담하였다. 그제야 여인은 그럼 누구를 불러 올리리이까?” 하고 물었다. 사울이 사무엘을 불러올리라.” 대답하였다. 여인이 사무엘을 부르다 큰 소리로 외쳐 사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사울이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말했다.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사울이 다시 물었다. “그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그러자 여인이 말했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것을 알고, 땅에 얼굴을 대고 절하였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사울이 대답했다. “나는 심히 다급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을 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습니다.”

 

사무엘이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사울이 심히 두려워하여 그 기력이 다 쇠하였다.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었다. 신접한 여인이 사울에게 떡을 주어 기력을 얻게 하였다. 여인이 살진 송아지를 급히 잡고 가루를 가져다가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사울과 그의 신하들 앞에 내어놓았다.

 

다윗의 상황

 

그 시각,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말렉이 쳐들어와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다.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을 다 잡아갔다. 이때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서 보니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힌 것을 알았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들이 소리 높여 울었다.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혀갔다.

 

그러자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하였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고,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아말렉을 쫓아갔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군사가 육백 명이었다. 브솔 시내에 이르렀을 때 기력이 다해 더는 따르지 못하는 백성이 이백 명이었다. 저들은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하였다. 다윗은 남은 사백 명만을 거느리고 뒤를 쫓았다. 길에서 버림받은 애굽 소년을 만났다. 다윗이 소년에게 물었다. “네가 나를 그들 군대에게 인도하겠느냐?” 저를 살려줄 것을 약속하자, 소년이 길을 일러주었다.

 

아말렉 군사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먹고 마시며 춤추고 있었다.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쳤다. 그리고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았다. 그의 두 아내도 구원하였다. 결국 다윗과 그의 백성들은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도로 찾았다. 뿐만 아니라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브솔 시내에 머물던 남은 이백 명의 백성에게 당도하자 분란이 일었다. 저들은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으니 그 취한 것을 나눠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다윗이 말했다.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이곳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나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다.” 그 날부터 다윗은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다.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도 보내었다.

 

다급하였던 사울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28:15).”

 

스스로 결단했던 것을 파기했다.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3).” 박수와 점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19:31).” 이를 저는 엄수하려 했다. 그런데 다급해지자 자기 나름의 수단을 동원했다.

 

하나님의 침묵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16).” 저는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저는 다윗과 같이 부르짖지 않았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22:1-2).” 그 원인은 하나였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66:18).”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숭배하는 자기숭배신앙이었다.

 

돌이켜 회개할 줄 몰랐다.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18).” 회개는 자백이 아니다. 고백만으로 울컥, 감정이 일어 울부짖는 게 아니다.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진정한 회개의 열매는 화목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사과가 회개의 전부가 아니다. 죽어져야 한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2:16).”

 

다급하였던 다윗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30:6).”

 

풀무에서 정금이 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8:2).” 어렵고 다급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누구도 그와 같은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어렵고 힘든 시련을 겪음으로 진정한 소망을 얻는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었다.

베드로 사도의 증언으로 들어보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먼저 우리는 그 때를 알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게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7).” 그 과정에서 주가 돌보심을 느낀다. 어렵고 힘들면 다들 쓰러지고 넘어질 수밖에 없어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8-9).”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2).” 더는 사람의 용기로 사는 게 아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환난도 근심도 어려움도 고통도 없을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한 적 없다. 또한 하는 일이 다 잘 되고 출세, 성공할 것이라고 기독교는 보장하지 않았다. 보면 불교인은 어디에 얽매이지 않음으로 넉넉히 사는 것 같고 천주교인은 모든 걸 포용함으로 넉넉한 것 같은데 기독교인들은 지지리 궁상 편협하게 굴며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만 찾는 것 같다. 무엇으로 용기를 얻을 것인가? 우리는 자고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나오는 말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다. 십대의 생활이 전부가 아닌데 청소년시절엔 왜 그렇게 반항하고 방황하며 자기 고집에 빠져 있었는지. 이십대가 전부가 아닌데 왜 그처럼 무모하였는지, 삼십대가 전부가 아닌데 왜 또한 그 열심을 허튼 데 쓰곤 하였는지, 사십대가 전부가 아닌데도 왜 그처럼 기를 쓰고 자가당착에 빠져 살았는지, 오십대가 전부가 아닌데도 왜 그처럼 더 늙기 전에 붙들으려 하였는지, 과연 나의 육십대는 또한 칠팔십대는 어떠할지. 산다는 일은 죽기 직전까지 다급함에 시달리는 형국이라. 우리에겐 이생 너머의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시려고!

 

그리하여 오늘의 말씀이 쓰였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모든 즐거움도 끝이 있듯이 모든 어려움도 끝이 난다. 하나님으로 힘을 얻자. 용기를 내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 , 이제 무엇을 믿을 것인가? 사울과 다윗, 다급하였던 두 사람에게서 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