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9 주일
로마서 12:1-2
일(직업), 우리의 영적 예배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들어가는 말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은 단지 한 끼 식사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것이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땅을 일구고 개간하여 씨앗을 뿌리고 농작물을 거두는 손길과 이를 유통하여 여러 경로를 거쳐 비로소 우리가 그 값을 치르고 먹는 모든 일에까지 적용이 된다. 이에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시 145:16).” 곧 주가 아니시면 그 복잡하고 어지러운 순환관계를 어찌 감당하며 치르고 살까?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시 147:13-15).” 그리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알게 하신다.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일에 있어 동역자로 삼으신다. 곧 오늘 ‘우리의 일’은 하나님의 일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이에 우리 곁에 사람을 두시며 ‘내 양을 먹이라.’ 명령하시는 것이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두시는 일로써 첫째,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곧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그리하여 둘째,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스스로 애써 열심을 다할 때, 우리의 왕성한 의욕은 과욕이 되기 쉽다. 또는 누구보다 강단 있고 자신감 있는 추진력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탈진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스스로 자족하는 마음은 곧 타협하여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고, 남에 대한 어설픈 배려는 자부하여 공명심을 부풀릴 수 있다. 무엇보다 주의 뜻을 운운하면서 스스로 열심일 때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려 들고, 안 믿는 사람들처럼 세금을 탈루하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변칙을 감행하기도 한다. 곧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강구하는 자리에 빠져서 결국 남을 판단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해지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우린 우리의 사명에 대해, 그 일상이 어떠하며 우리의 일(직업)의 의미와 뜻을 되새길 수 있다. 우린 그냥 어쩌다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분명한 직분과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지키신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5-6).” 그런데 우리는 종종 세상적인 도움을 구하느라 귀인을 찾아 세상을 기웃거린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 굽실거리며 두리번거리다 어디, 누구, 귀인을 찾아 헤매지만 성경은 이를 옳지 않다고 하신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146:3).” 이는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사 40:23).” 그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데 훼방한다. 우리는 우리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살아야 한다. 땅은 엉겅퀴를 내고 수확은 늘 적다. 왜냐하면 우리의 만족은 결국 땅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믿는 자로서의 일-직업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영적 예배가 되는 것이어야 함을 확인시켜준다. 몸은 일단 육신의 쓰임으로 그 역할을 한정한다. 그럴 때 우리의 일이란 빈부의 귀천이 없다. 정신을 쓰는 일이나 몸을 쓰는 일이나 모든 육신은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져야 한다.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가 어떤 행위의 구별됨이 없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곧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그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20).” 말과 행실과 생각은 같은 맥락에서 이어져야 한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우리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그 기준이 무엇인가?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좋은 연봉과 성과급 보너스와 복리후생이 보장된다는 게 기준일 수 없다. 자신에게 주신 재능과 그것으로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춰 이웃을 섬길 수 있는가, 하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 이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온전히 바란다. 곧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그러므로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 2:4).” 오늘 우리에게 주신 남다른 기회와 은총은 사랑의 빚이다. 이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이것이 첫째가는 기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이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삶의 명령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이로써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 순종이다. 이것이 영적인 예배가 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그러므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이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드러내야 할 때,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이것이 우리에게 두신 두 번째 기준이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사 61:6).”
한 마디로 최우선순위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삶에 따른 목적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분별한다는 건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옳고 그름을, 바르고 정함을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첫째는 율례와 규례다. 오늘 날 우리에게 두신 성경이다. 말씀을 지침으로 삼지 않으면 그 평가와 구분은 오락가락 한다.
왜 그런 게 중요할까? 둘째로는 성장해야 하는 게 모든 생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성장을 멈춘 모든 생명은 썩는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우리가 자라기는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믿음의 분량에까지이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5-7).”
그에 따른 확실한 구별은 세상에서 귀인을 찾지 말라는 소리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얼마 전부터 부쩍 사회 저명한 인사들을 초청하는 강연이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각기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 저마다 약진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일이다. 그러할 때 저가 그리스도인인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는 아랑하지 않는다. 그저 저의 출세와 성공만을 바라고 구한다.
한데 성경은 일러 우리의 역할을 분명히 하였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4-15).” 이를 위해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2-14).”
곧 우리는 주의 백성으로,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그러니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왜? 어떻게? 누구와 같이 할 것인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나오는 말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온전하시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우리는 어디에 속하였나?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시 119:68).” 관심의 척도가 배움을 길을 연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내 안에 두신 성령을 소멸하지 마라.
곧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 13:21).” 왜냐하면 우리의 제 일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그럼 우리의 삶은 어찌 남다르게 드러날까? 그 증거는 무엇일까?
1. 은혜가 넘치게 하신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3. 범사에 하나님께 하듯 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4. 우리로 영광을 받게 하신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 1:11-12).”
5. 주가 하신 일을 선포한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시 118:17).”
6. 분수에 맞게 조용히 성실하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
7. 의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11).”
8. 선한 일을 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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