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2 주일
로마서 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들어가는 말
우리의 가장 잦은 잘못은 스스로 하나님을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으로 나름의 열심을 붙들 때 그렇다. 수고와 애씀에 대한 요구를 바랄 때 그렇다. 이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의 의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은혜가 아닌 율법의 요구에 따른 삶이어서 그렇다. 보면 다들 성경을 들어 논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운운하며 떠벌인다. 그러는 이들은 주로 자기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다. 나름 한다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오히려 주의 뜻을 바라고 구하는 자는 늘 자기와 싸운다.
나만 이러나싶고, 이 길이 맞나싶을 때, 성경은 우리에게 앞서 간 허다한 증인들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숱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 11:12).” 저들의 그릇됨이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사 58:1).” 이를 아는 자로서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곧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 2:23).”
그럴 자격도 가치도 없는 자인데,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욥 5:9).” 우리로서 감히 무슨 자격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겠나?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시 89:8).” 세상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일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주가 사람이 되신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 32:27).” 비로소 나를 새롭게 하셨다.
신앙의 열매
우리 신앙의 기본자세는 빚진 마음이다. 늘 우린 사랑에 빚진 자들이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저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음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세워졌다. 그렇듯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1).” 우리의 이 사랑은 두렵고 떨리는 긍휼하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22).”
그러므로 이제 우린 우리의 삶으로 그 열매를 드러낸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 7:16-17).”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열매를 알아본다. 냉소적이고, 차갑고, 논리적이며, 야박하고, 남을 향해 엄격한 사람은 역으로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의 증거를 그리 숨겨두고 사는 것이다. 내가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내 곁의 사람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게 열매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2).” 하나님은 안다, 믿는다, 경외한다 하면서 사람들에게 늘 불편하고, 차갑고, 모진 경우의 사람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곧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대단한 것을 바라시는 게 아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빌 4:17).”
엄위와 인자하신 하나님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 이것이 어떻게 드러날까? 누가 제일 먼저 알 수 있을까? 사람을 보고 사람들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유난히 완고하고 남들에게 엄격하고 냉정하여서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외면하게 하지는 않는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 57:10).” 어딘가 다르다. 그 마음 씀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어떤 것’이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86:5).” 이렇듯 긍휼을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몰인정하고 쌀쌀맞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는 우리가 믿는 사람에게 뿐 아니라 안 믿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다. 곧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103:13).”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는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자이다.
그런데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느 9:17).” 그런 자신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받은 은총을 드러내어 알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중요하다.
즉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자신이 송구하고 미천하여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가 주의 엄위하심과 그에 따른 인자하심을 바로 아는 자이다. 대대거리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남을 정죄는 사람으로서는 말도 안 된다. 이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 주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7).” 두려워할 줄 알 때 그 고귀함도 안다. 귀하고 귀한 것일수록 더욱 조심히 또 신중히 다루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시 33:5).”
한데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합리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운운하곤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는 나를 또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데 있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 30:18).”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결코 후회가 없으시다. 성경에 종종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우리 자신의 어처구니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곧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롬 11:28).” 우리가 저들 이스라엘 민족을 정죄할 수는 없는데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29).” 언젠가 저들의 복권이 지구의 종말이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삼상 15:29).”
사람을 지으시고 저들이 어떠할 것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음에도 후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어 사람의 추하고 더러운 죄악을 부각시킨다. 곧 그것까지도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1).” 어쩌다 아담이 범죄하였고, 궁여지책으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어주신 게 아니다. 종종 우리 안에 두시는 마음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내가 왜 이 일을? 저 같은 아이를? 왜 여기에서? 하는 회의가 들 때 그것은 오히려 그러므로 주의 긍휼하심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곧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욥 23:13).” 우리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약속으로서는 할 수 있다. 그 이름을 위해서도 말이다. 약속은 약속을 하신 이의 이행이지 그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때의 것이면 약속이 아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 14:24).”
주는 주의 이름을 두고 약속하셨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하신 말씀 앞에서도 우리는 이스라엘과 저들의 역사를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 6:17).” 우리로서는 저들을 대신하여 누릴 수 있는 권세를 얻은 것이다. 곧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구원의 경이로움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로 경이로움을 두게 하신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어딜 감히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구나? 마치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구원에 관여한 것처럼 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믿는다는 걸 무슨 권세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한데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욥 5:9).” 솔직히 우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를 오늘에 이처럼 귀히 여기시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 3:8).” 만일 이것이 내가 어떤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또는 무슨 선행으로 이룬 것으로 착각한다면 이보다 불신앙은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결코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
때론 놀랍고, 때론 두렵고, 때론 신비하기만 하여서,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시 103:15-16).” 여느 피조물보다 못하게 된 우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이시다. 그리하여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 5:29).”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길이 없다. 때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그래서 우리는 당황하기도 하고 때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일이다. 곧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29:29).” 이는 우리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이다.
성령의 조명
이를 우리로 알게 하시는 것이 또한 우리의 지식이나 이해가 아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롬 11:34).” 우리 안에 성령의 조명이 있음으로 우린 또한 그의 사랑을 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이를 마치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운 지식으로 또는 특별히 어떤 재능이나 기술로 아는 것처럼 행하는 이들이 종종 있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성령이 우리를 이끌지 않으셨으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도 없다.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
그러므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어째서 우리가 남들보다 두려움을 느끼곤 하는지,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인지. 결국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사는 일이어서 때론 우리 스스로도 우리 자신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다 주의 것
결국 이 모두가 다 주의 것이라는 데 안도한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롬 11:35).” 대체 무얼로 이 은혜를 갚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께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나의 이 모든 게 다 주의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고통도 즐거움도, 평안도 불안도. 그렇다면 이것으로 주가 이루실 것은 무언가?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욥 41:11).”
우리는 성공을 위해 주를 믿는 게 아니다. 좋은 사회, 훌륭한 결과를 내려고 열심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곧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4-25).” 이 모두는 주의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주가 누리시는 그 영광의 나라에서 주와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자들로 우리를 세우시는 일이다. 그 나라에는 율법으로도 완전하여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우리들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로 삼으신 것은,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 41:4).”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까지도 주의 섭리 가운데 주의 목표하심에 따라 주의 주권 아래 있음을 명백히 알게 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6).”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하시려고,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17).”
인생의 목적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오늘 우리의 목적은 무언가? 왜 사는가?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곧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리들로 인하여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고,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사는 날 동안 그 영광을 바라고 구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다.
곧 이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결코 우리는 공짜가 아니다. 저절로 얻어진 게 아니다. 어쩌다 어른이 아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10:31).” 우리 인생의 단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 따른 올바른 태도 열두 개와 그에 따른 실천 방법 여덟 개를 말씀에 근거하여 정리하였다.
※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
첫째, 은혜대로 살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둘째, 택하심을 입은 자답게 살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셋째,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을 확증하며 살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넷째, 속량하심을 명심하며 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다섯째, 의를 덧입었음을 명심하며 살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여섯째, 새로운 피조물인 것을 알고 살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일곱째, 이미 천국인 것을 잊지 말고 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6-7).”
여덟째,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아홉째, 거룩하게 하셨음을 알고 살라.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열째, 풍성하심으로 더하실 것을 믿으며 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열한째, 하나님이 우리의 평강을 지키신다는 것을 알고 살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
열두째, 영생을 붙들고 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천
첫째, 읽어라.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 3:4).”
둘째, 분별하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셋째,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 4:6).”
넷째, 찾아라.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4-5).”
다섯째, 생각해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딤후 2:7).”
여섯째, 표현해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일곱째, 기억해라.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딤후 2:8).”
여덟째, 전해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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