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4 주일
로마서 14:13-23
화평의 일, 덕을 세우다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4: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4: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14: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14: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14: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난주일, 비판하지 말라는 것.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직고할 것임을 확인하였다. 잠깐 다시 살펴보자. 1. 비판하지 않기 위해서, 1) 믿음이 약한 자를 용납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 14:1).” 이들을 우리가 받아서, 대신 담당해야 하는 사역이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 신앙의 배려였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롬 14:2).”
양보할 수 없는 진리가 아닌 다음에는 참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이는, 3) 종교적 행위가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롬 14:3).” 예수님은 죄 많은 세리와 창녀를 보고 화를 내시지 않고 나름 종교적인 사람들을 향해서였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눅 11:42).”
그러는 우리에게 물으신다. 4) 너는 누구냐? 하고 물으신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 14:4).” 우리는 다만 권면하고, 격려하고 오래 참는 사람들이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우리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 우리 수고로 오지 않고 우리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다.
곧 5) 성도의 하루하루는 주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롬 14:5).”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어떤 성과를 바라시는 게 아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우리는 다만 ‘어떠한 날에든지’ 우리는 주를 경외함으로,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전 7:18).”
2. 우리는 구별된 자들이다(롬 14:6-9). 세상의 기준이 우리를 좌지우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3).”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우리는 다르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사 58:2).”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반드시 어느 훗날 우리는 죽음 너머에서, 3. 우리는 모두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해야 한다(롬 14:10-12). 그러므로 누구는 두려울 것이나 우리는 담대하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빌 1:14).” 오늘 우리에게 두신 여러 어려움이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살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그래서 우리가 왜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살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이는 저절로 드러날 것이고, 우리는 주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 본문은 비판하지 않음으로 우리가 행하게 될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신다. 이는 화평의 일이고 덕을 세우는 것이다.
화평의 일, 덕을 세우다
1. 어떤 일도 작은 일은 없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롬 14:13).”
누구를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저를 어렵게 하여 부딪치게 할 것을 주의해야 한다. 곧 우리가 주의하는 것은 그것이 죄냐 죄가 아니냐, 구원을 받을 수 있냐 없냐, 하는 따위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는 말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그래서 피하고, 조심하고, 자중하고, 절제한다. 별 것도 아닌 일 같고,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그러므로 우리는 충성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좀 더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눅 9:48).” 우리가 실제 아이들을 대하는 일에서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러므로 특혜인 것 같다.
2. 속된 것은 우리 안에 있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 14:14).”
우리가 주의하고 자중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하물며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15).” 내 의지와 판단으로, 소신과 신념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 8:11-12).”
우리가 주의하고 또 신중하게 되는 까닭은 주가 맡기신 일 때문이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우리도 저들처럼 굴며 하나님을 멀리할 때가 있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 5:11).”
3. 우리가 세워야 하는 믿음의 덕은 화평의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롬 14:16).”
화평하게 하는 일은 엄청나고 막중한 일이다. 곧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어디에 있든 그 주변을 화평하게 한다. 그래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주의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다.
번번이 실패하고 어려워하면서도 우리가 주를 바라보고 산다는 증거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될 수 있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이다. 거룩함을 따르는 길이다. 주를 보고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곧 우리는 우리의 자기 추구와 자아 성취를 위해 살지 않는다.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산다.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이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
4. 이름하여 우리는 성도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8).”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르다. 저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게 목표다. 행복을 추구한다. 자아 성취가 가장 최대의 보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것으로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는 게 성도다. 성도란 구별된 자들을 말한다. 기독교 신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그것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서로 사는 방식이 다르고 목적도 다른 사람들이다. 그런데 별 구분이 없다면, 똑같이 돈돈거리며 이 땅에서의 보람과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으려 한다면 뭔가 심하게 어그러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일은 그런 게 아니다.
5. 하나님의 일은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9).”
할 수만 있다면 누구와도 그리 지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나? 하다못해 아이들을 대하는 일도 얼마나 싫증나고 때론 역겨운 감정이 밀고 올라오곤 하는지!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우린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름으로 쓰실 거라면 귀히 여기고 소중히 다뤄 똥도 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곧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2-4).” 결국 우리에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 10:2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나오는 말
1. 우리는 신앙의 양심을 따라 산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 14:21-22).”
우리 삶의 기준은 세상이 가지는 기준과 다르다. 굳이 저들을 의식하며 살 것도 아니지만, 특별히 우리의 행실이 행여 믿음이 어린, 신앙이 연약한 이들에게 표준이 될 수도 있다. 싫든 좋든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보다 우리 곁에 있는 목사나 교사나 어른을 보고 그 행실을 따라 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4-5).”
2. 우리는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할 뿐이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23).”
믿음의 분량대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모자람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 겸손은 주가 채우시지만, 교만은 스스로 채워 자긍함이니 그 고달픔이 더하다. 결국 우리의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1).” 누구처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얼마큼, 그래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자기노력이 스스로를 망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후 10:13).” 고로 오늘 우리에게 두시는 이 일보다 더 적합한 일은 없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영적 게으름이 아니라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 4:7-8).”
결국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산다. 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주신 바 그 믿음의 분량대로 순종할 따름이다.
이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1-22).” 화평은 영적으로 우리에게 웃음이 더하는 일로써, 하나님이 우리로 웃게 하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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