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전도서 5:1-7 / 말씀을 듣는 것

전봉석 2018. 12. 7. 12:13

20181209 주일


전도서 5:1-7

말씀을 듣는 것


5: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5: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5: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5: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5:7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들어가는 말


연말이 되면 연초에 했던 약속과 다짐들에 대해 점검을 하게 된다. 우리의 각오와 약속들이 말과 말 속에 섞여 일상에 스몄거나 없었던 일이 되었거나 잊힌 채 방치되었다가 12월이 되면서 새로 기억나는 것이다. 그런 우리는 무엇으로 기뻐하는가?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잠 8:30-31)." 하는 지혜의 고백이 남은 한 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요 16:13). 우리의 보혜사이시다(14:26).


우리로 생각나게 하신다. 무엇을 사모하고 얼마나 자랐는지,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그리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


그는 누구신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신 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우리들로 주를 더욱 사모하게 하시려고 때를 따라 꼴을 먹여주셨다.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겔 2:8-9)." 먹으라. 때론 이와 같은 말씀이 입에는 단데 속에서는 쓰디썼다.


말로 하기는 쉬운데 행함으로는 어려웠다.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3:1-3)." 한 해를 돌아보며, 남은 시간을 잘 정돈하는 것이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지혜이다. 그러므로 우린 말씀을 붙든다. 묵상한다.


묵상이란, 사자가 움킨 것을 빼앗기지 않는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사 31:4)." 종종거리고 구구거리며 온종일 먹이를 쪼는 제비와 비둘기의 몸짓과도 같다.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38:14)."


이제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전도서를 중심으로 연말과 연초를 보내고 맞이할까 한다. 오늘은 항상 우리의 남은 날의 첫째 되는 날로써,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하여 그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자 배우고자 한다. 이는 우리를 훼방하는 소모적인 말과 은혜로 이끄는 서원의 말로 구분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말씀으로 오셨고 말씀으로 항상 우리 곁에 살아계신다. 오늘도 우리가 교회를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쓸모없는 말을 버리고 은혜의 말로 채워져야 한다.



1. 하나님의 집, 말씀을 듣는 것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1)."


오늘 첫 구절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교회에 나오는데 조심하라니! 삼가라는 말씀은 조심스럽게 가려서 하라는 것이다. 그냥 다니면 안 된다는 소리다. 내 취향이나 사교를 위해 다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함부로 구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증됨을 싫어하신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오늘 본문은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교회를 가까이 하여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은 그 어떤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낫다. 어리석은 자의 제물은 악하다. 하나님은 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15-17)."


그러므로 누군들 함부로 주 앞에 올 수 없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 우리의 참 예배는 우리가 받는 것이지 우리가 드리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우리가 거룩하여지는 일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참 예배의 기본이다. 사무엘은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 15:22-23)." 지혜자도 이를 거든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16:20)."


주를 의지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청각적인 의미일 뿐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껴 우리의 이해로 안다는 것이다. 어느 연구에서 깊이 잠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아이 엄마의 다급한 음성을 들렸을 때 어느 소리에 더 반응하는가를 테스트하였다. 이때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경우는 50%였고, 엄마의 다급한 음성을 듣고 잠에서 깬 경우는 90%였다고 한다. 듣는다는 것은 단지 소리의 의미가 아니라 몸에 배는, 스민다는 의미가 크다. 그 소리의 효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렘 7:23)." 고로 듣는다는 것은 행한다는 것이고, 행한다는 것은 변화하고 자라간다는 것이다. 곧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집, 교회에서 또는 우리의 일상에서 말씀을 듣는 일은 고로 참예배가 되는 일이다.



2. 우리 영혼을 훼손시키는 말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2-3, 7)."


급한 마음에 나오는 말은 앞뒤 가릴 게 없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그러므로 마땅히 말을 적게 하라. 이것이 상책인데 그게 또 어디 그런가? 말이란 참으로 격정에 의한 것이어서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하였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게 돼 있다. 쓸데없는 걱정이 온갖 몽상을 끌어들인다. 몽상은 말을 더하고, 설명이 길어져서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난다. 꿈이란 아직 현실이 아닌 것이다. 현실이 아닌 걸 쥐려고 하려니까 더하고 빼고 보태고 나누고, 말이 많아질 수밖에.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것저것 해도해도 끝이 없고 돌아서면 또 할 게 지천이다.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그럼 어쩐다?


오늘 본문은 그 해결책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정의하였다.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경외란 경탄이다. 마치 장관인 어느 비경 앞에서 우와, 하는 감탄과 함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두려운 마음마저 드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하여는 앞으로 다시 살펴보자. 우선 우리 영혼을 훼손하는 말이 급한 경우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여러 생각과 근심과 말들로 인하여,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한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 18:8, 26:22)."



3. 우리의 서원은 은혜의 말이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4-6)."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우리의 기도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서원은 그러한 자신의 결연한 의지의 선언이다. 야곱이 서원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20-21)."


한나도 서원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서원은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이다. 나름의 각오와 다짐이다. 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데 이를 악용하여 종교화하거나 의식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은 당부하셨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마 33:36)." 곧 우리가 함부로 맹세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 그처럼 책임감 있는 인물이 못 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기도는 향기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우리가 주를 바란다는 것은 아뢰는 일이다. 우리의 아룀을 더 결연하게 다짐하는 것이 서원이다. 서원기도는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나의 비밀이다. 중언부언하여 남에게 보이려는 게 아니다(마 6:6-8)." 그러므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


곧 기도는 주님께 향한 우리의 마음이다. 서원한 것은 갚아야 한다. 서원한 것을 갚지 못할 땐 저들은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민 30:2)." 그래서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 23:23)." 이에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레 5:6)."


바울은 서원을 지키지 않은 결례비용을 대신 내주기도 하였다.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행 21:23-26)."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값이 모두 지불된 은혜의 시대에 산다. 하나님 앞에 얼마든지 우리의 다짐과 각오를 은혜의 언어인 서원으로 올려드려야 한다. 이를 이루지 못하였다 해서 죄가 되거나, 속죄제로 갚아야 하지는 않다. 다만 하나님을 능멸하듯 헛된 맹세가 되지 않게 하고, 이를 과장하거나 억지스럽게 드러내어 남을 현혹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늘 본문은 이 또한 주의하여야 함을 일깨운다. 곧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급하여 주께 구하고 주께 약속을 드리고 이를 미루거나 더디 하면, 이는 우매한 자이다.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곧 함부로 지껄이듯 서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차라리 주 앞에서 함부로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이는 두려운 일이다. 나중에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그래봐야 소용이 없다.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그러므로 기도는 두려운 것이다. 온전한 기도는 말씀을 들음으로 이뤄진다. 온전히 말씀을 듣는 일에는 또한 바른 기도가 필수적이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민 30:2)." 그러므로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 23:23)."



나오는 말


우리의 혀는 향기를 낼 수도 악취를 풍길 수도 있다. 소모적인 말로 사람을 진 빠지게 할 수도 있고 은혜의 말로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5-6)." 그러므로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잠 20:15)."


한 해를 며칠 남기고 있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린 먼저 말씀을 듣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스스로 옳다 여김으로 드리는 서원은 그릇되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의 결단으로 주의 은혜를 바라는 결단이 필요하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이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주를 경외하는 마음이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왕하 17:39)." 주가 이루신다. 주만이 이루실 수 있으시다. 고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시 25:12)." 우리가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주가 우리의 길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고로 말씀을 붙들고 움킨 것을 놓지 않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말을 해야 한다. 날마다 드려지는 서원을 살자. 약속하고 다짐하고 그 다짐한 것을 지키려고 무던히 수고하고 애쓰는 모습을 주님은 사랑하신다.


곧 우리가 주의 이름을 의뢰함으로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