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 주일
전도서 11:9-12:2, 6-7
기억하라
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11: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12: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12: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들어가는 말
한 해가 다 저물면서 어떤 후회와 회환이 우리의 발목을 붙든다. 또는 갑작스런 고통과 어려움이, 다사다난하였던 날들마다 우리를 불러 세우기도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확성기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잠 1:20).” C. S. 루이스의 말처럼 ‘고통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1년 중 12월은 다급하게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계절 같다. 그동안 안이하고 나태하였던 생활에서 멈칫, 되돌아보게 하시는 계절이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고 경고하셨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사 46:9).” 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여기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상기시켜 묵상하게 하신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그래서 오늘 본문은 아직 기력이 있을 때에, 기회가 남아있을 때에, 잠잠히 하던 일을 멈추고 주만 바랄 것을 알려주신다. 청년의 때, 돌이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에, 곧 더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때를 대비하라는 것이다.
기억하라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청년이란 중의적인 의미는 무엇을 해도 겁이 없을 때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여기는 때이다. 한데 이 모든 게 결국은 심판대 앞에 세워질 것을 상기시킴으로, 곧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요일 2:17).” 그러므로 우린 어찌 해야 할 것인가를 알게 하심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너는 기억하라.” 누가 우리를 구원하여 인도하셨는가를(신 5:15). 또한 그때마다 도우시며 인도하신 이가 누구인가를,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7:19).”
또한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가 누구인가를(8:2), 그때마다 함께 하신 이가 누구인가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18).” 우리가 저를 ‘거역하였으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이끄신 이가 누구이신가를(9:7), 곧 우리를 우리 죄악에서 속량하신 이를 기억하라(15:15, 24:18). 결국 “우리가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24:22).” 그때 어찌 살았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어디에서 걸신들린 듯 헤매고 있었는지, “옛날을 기억하라(32:7, 사 46:9).” 기억하라. 기억하라. 오늘 말씀은 우리 귀에 큰 소리로 외치는 듯하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찌 해야 할까?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짚어보자.
첫째, 감정: 근심에 휘둘리지 말자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전 11:10).”
지난주일 우리가 나누었던 말씀을 잠깐 떠올려보자.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긴다(5:3). 꿈은 늘 달콤하여 공상함으로 할 일을 무마하고 일반화시킨다. 오늘 우리가 지고 가야 하는 짐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다. 유치하지만, 아이들이 시험 때만 되면 계획표를 짜는 경우와 같다.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고 정리정돈을 하느라 한눈을 파는 것이다. 곧 꿈이 많아지면 헛된 일이 많아진다(7).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들로 신음하면서 정작 꼭 해야 하는 일은 자꾸 미루는 것이다. 늘 바쁘다고 하소연하면서 그래서 기도를 미루고 말씀묵상을 뒤로 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늦추는 것이다. 아니면 짬짬이 섞어 희석시키면서 안도한다.
시편 기자는 그런 우리에게 한 가지 기도를 가르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왜 그런가? 야고보 사도가 이에 답을 주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 성경은 이를 주목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둘째, 세월: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자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청년의 때는 참으로 꽃다운 시절이다. 한데 그날이 천년만년 이어지는 게 아니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6:6).” 그런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 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곧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시인의 기도가 울린다. 그러므로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4).”
그러니 누구도 자신의 내일 일을 자랑할 수 없다. 확신할 수 없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런데 이와 같은 증언이 청년의 때엔 잘 들리지 않는다. 아직 기력이 있고 여력이 될 땐 외면하기 십상이다. 설마, 하면서 방기할 뿐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0-41).”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이제 우리는 멈춘다. 정지선을 지키듯 잠시 멈추게 하는 계절 12월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더는 예전처럼 굴지 않고 싶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8-19).”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시 62:1).” 이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63:1).” 할 수 있는 고백이 복이다.
셋째, 영생: 우리의 날들을 영원에 투자하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결코 이 땅의 삶으로 끝이 아니다. 그러나 다음 생은 없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일컫는 다음 생은 모두 허구다. 우리 몸은 땅으로 돌아가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이를 알면 알수록 우린 점점 의연해진다.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마치 여행자와 같이 다소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우리가 돌아갈 곳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그 투자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곧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전 3:10).” 우리는 영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곧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그러므로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시 92:13-15).” 여기가 아직 세상이나 여기가 이미 영생의 나라 천국인 것이다.
넷째, 생명: 존귀하나 불완전하여 위태로운 것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전 12:6).”
오늘 우리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 그러나 얼마나 위태로운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종종 뉴스에서 보면 ‘밤새 안녕’이란 말을 실감한다. 그러니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고 한껏 외면하면서 태평한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고 거두시면 끝이다. 곧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9-21).”
이 얼마나 헛되고 허망한가? 군인 정신으로 모욕을 참지 못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뭐라 할 말이 없다. 곧 우리는 다 돌아갈 것이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나오는 말
‘하나님께 돌아가지 전에 기억하라(7).’ 하는 말씀이 우리를 불러 세우시는 것 같다. 어쩔 것인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 2:9-10).” 이는 진리다. 토론의 주제가 아니다. 진실공방의 화두가 아니다. 어느 훗날,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눅 16:23).” 애원하는 날이 이를 것이니! 우리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때에, 믿음을 가지고 주를 바랄 수 있는 이 때에, 우리는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2:7-8).”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하신 이에게 찬송과 경배를. 곧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그래서 우리의 12월은 감사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계절이다. 기억하라. 기억하자. 아직 그럴 수 있을 때에, 더는 그럴 수도 없는 날이 곧 임할 것에 대하여!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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