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전도서 9:1-10 /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전봉석 2019. 1. 4. 11:01

20190106 주일


전도서 9:1-10, 2:8-9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전도서

9: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9: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9: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9: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9: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9:6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9: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9: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히브리서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들어가는 말

 

사람은 악하다. 문제는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4:1).” 마치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어떤 악한 영향을 받아 그런 것 같지만, 본래부터 그렇다. 본디 사람은 땅의 흙으로지음을 받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곧 이 땅은 그 땅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1:2).” 그 땅의 형질 위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 사람은 비로소 선하다.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9).” 사탄은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 중 일부가 타락하였고, 저들은 땅으로 쫓겨났다. 그들이 이 세상의 신이 되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저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함부로 할로윈 축제니 귀신놀이를 일삼아서는 안 된다. 저들은 아직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동안 세상 풍조를 주도하며 권세 잡은 자들이다.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안에서만 평강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48:22).” 하나님 없이 사람은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만물은 아직복종하지 않는다.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2:8).” 우리는 그 마음이 부패한 중에 살아간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17:9).”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12:34).” 곧 누구도 스스로 선을 이룰 수 없다. 악을 개선할 수 없다. 홍수 이전과 다를 게 없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24:38).” 여전히 오늘 날에도 설마한다. 이러할 때,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2:9).”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곧 미리 정하신 바 된 자들이다. 창세전에 예정하셨고, 택정하신 존재이다. 천사가 생겨나기 전, 저들 중에 타락이 있기도 전에, 즉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기도 전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그러므로 우리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그래서 아직오늘에 두셨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20:10).” 마귀도 안다. 안 믿는 저들도 은연중에 안다. 그래서 저들은 끝내 얼굴을 가리며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6:15-17).”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9:1).”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지혜자는 외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 다들 나름의 계획과 꿈과 목표를 가지고 살지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29).”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이와 같은 말씀이 전에 같으면 거부감이 들고 뭔가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 같았으나, 스스로의 연약함을 알면 알수록 얼마나 다행하고 송구한 일인지!

 

믿음의 사람들은 이를 분명히 붙들고 살았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19-20).” 이뤄진 일들이 때론 억울하고 납득이 안 되고 불공평한 것 같아도,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20:24).”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이처럼 새해 첫 주일, 첫 발을 내딛으며 먼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10:23).”

 

모순된 현실에서 중심잡기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9:2).”

 

종종 둘러보면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권선징악은 소설 속의 이야기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73:2-3).”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4-9).” 이는 불공평하다.

 

의인의 대명사 욥은 알고 있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1:21).” 끝내 그가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2:10).” 이와 같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5:41).”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10).”

 

곧 현실을 딛고 사는 동안 우리는 모순덩어리 세상으로 인하여 자주 피로하다. 그러나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이 또한 주의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살자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9:3).”

 

언제든 오라 부르시면 떠나야 하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다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미루거나 누리거나, 포식하거나 독식하거나, 외면하거나 부정하면서 설마하고 산다. 그런 우리에게 성경은 일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21:34).” 경고하신다. 결국 모든 사람이 일반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이든 믿지 않는 자이든 죽는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사는 것이 지혜라고 외친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7:1-2).” 그러니 비관적으로 살라는 게 아니다. 염세적인 삶을 구가하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웃음의 참된 의미를 알고, 비로소 그 영혼이 살아 있어야 죄를 무서워하고 멀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3).”

 

성경은 일관되게 가르치신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4).”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5).” 이는 우매한 자들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6).” 그 끝이 헛됨에 대하여, 이 땅으로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5:15-16).”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9:4-6).”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더는 어쩔 수 없는 때가 이르리니, 이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직 살아서 산 자로 이 땅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느 죽은 부자의 절규를 들어보자.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16:30).” 저는 아직 살아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부모와 형제를 회개하게 하려고 부탁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31).”

 

곧 아직 살아서 삶으로 사는 살아있는 것들이 아름다운 것은 돌이킬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복음을 부정하는 이들에게도,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1:11).” 우리는 오네시모와 같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5-26).”

 

그리하면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72:14).” 이에 우리가 사는 목적이 분명해진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16:26).”

 

은혜는 우리가 누릴 특권이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9:7).”

 

이처럼 오늘 우리를 이곳에 두시는 것은 그 모든 게 주의 은혜라. 이를 누리고 감사함으로 사는 일이 충만한 삶이다. 가난하면 가난한 가운데, 부족하면 부족한 중에, 부유하면 부유하여서, 학식을 더하셨으면 그 많은 학식으로,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일을 다 받으셨다!’ 기독교는 무얼 나서서 어떤 성과를 내야하고 가시적인 결과물을 들고 주 앞에 나와야 하는 강박적인 종교가 아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외치는 자는 거짓되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15:11).”

 

이미 우리는 충만하여서 항상,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그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9:7).” 우리 안의 이와 같은 만족함은 주가 주시는 것으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어떠하든,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11:38).”

 

충만한 삶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9:8).”

 

곧 우리의 충만한 삶이란 단지 느낌이나 구호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단연컨대 그 생활이 정갈하여져서 시간이나 물질이나 사람 관계나 모든 일처리에서나, 우리는 질서 있는 삶을 산다. 그런데 너무 바쁘다거나 늘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도 그렇지만 영적으로도 어디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느니, 하루 24시간을 48시간으로 쪼개서 산다느니 하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영혼이 불안한 것이다. 외면해도 될 일을 떠안고, 저 소경이 누구의 죄인지! 남의 일에 참견하여 저는 어찌 되겠나?’ 묻던 제자들처럼!

 

사랑은 참견과 간섭으로 둔갑하였고, 성실은 무질서한 삶의 욕구를 대신하였으며, 희생과 인내는 보상을 바라는 투자의 의미로 변질하였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었으며, 모든 가치는 그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분기조로 전락하였다. 마치 어린왕자에 나오는 각 혹성의 대표자들처럼, 어떤 이는 종일 남을 위한 일이라며 가로등을 껐다 켰다하느라 시간이 없고, 지리학자는 탐구과 연구에 몰두하느라 정작 그곳에는 가보지를 못하고, 술주정뱅이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깰 수 없고, 어느 임금은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혼자서 늘 호통을 쳐댄다. 이처럼 우리의 충만한 삶을 저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질서한  자기욕구 때문인 것이다.

 

우리 성도의 가치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9:9-10).”

 

그러므로 족한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성도다. 모든 게 주의 손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저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몫의 감사로 산다. 나는 이를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사로라 이름 하는 한 거지라고 말하고 싶다. 저는 누구보다 처절하고 비루하고 한심하고 불쌍한 처지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고, 존재감도 없이 살다간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저를 들어 천국에 들어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대표적인 인물로 꼽으셨다. 모든 비유의 인물은 익명이었는데 유독 저의 이름을 앞세운 데서 그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 대표적인 인물. 물론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으나, 정말 거지같이거지로 살다 간 저의 인생을 들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대표적인 인물로 세우신 까닭은, 그 어떤 열심도 또는 그 성과에 따른 결실도 아닌 저의 순응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로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18:22).”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5:28).” 다시 말해 오늘 내게 두시는 이 모든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나오는 말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2:8-9).”

 

지금은 모순되고 불공평한 것 같다. 만물이 주께 아직복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잠시 동안그러하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한다.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 ‘곧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아무런 소득도 없이 죽은 것 같은 예수시다. 종종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12:8).” 자칫 허망함으로 흘러 아무런 소망도 없어 보인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5:15-17).” 우리는 지혜 있는 자로 세월을 아껴야 한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13:11).”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은 것은 그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그래서 예수님은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지도 않는 때에 고난을 당함으로,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하지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4-15).” 결국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이를 바로 알 때 지금, ‘아직’, ‘잠시 동안우리를 쓰러뜨리고 넘어뜨리는 이 땅에 살면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7).”

 

왜냐하면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