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7 주일
전도서 3:1-15, 마태복음 3:15
합당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의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3: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3: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3: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3: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3: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3: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3: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3: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마태복음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들어가는 말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군 그래서 감사를 배우고 누군 그래서 더욱 완고해지는 마음으로 돌아선다. 우리는 주를 바라고 그의 의를 구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 차이는 문제를 문제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그 문제를 풀어간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인생은 없다. 전도서 6장에서 우린 그 허망함에 대하여 이미 살핀 바 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1).”
오죽하면 낙태한 자가 더 낫다고 했을까!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6).” 외람되지만 인생이란 참 허무할 뿐이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89:47).” 이는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시 94:11).” 우린 누구나 문제를 안고 산다. 문제 때문에 문제로 문제를 덮는 형국이다. 그 문제로 누군 더욱 주를 바라고 누군 더욱 세상을 좇는다.
인생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다만 다른 문제로 문제를 덮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풀어야 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 땅에 쏟아진 물처럼 쓸모없어진 우리를 위해 방책을 세우셨다는 것.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삼하 14:14).” 곧 하나님도 다른 방법이 없으셨다는 것.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곧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손수 담당하시는 수밖에! 말씀은 이를 엄중히 선포한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그러기 위해 ‘구원의 창시자로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셨던 것.’ 만일 다른 방책이 있었다면 그리하셨을 것이다. 한데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와 충돌하였다.
그냥 인자와 자비로 사람의 죄악을 용서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충돌하는 것이다. 아니면 아예 없었던 일로 시치미를 떼도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다(출 3:14). 결국 다른 방도가 없었다. 사람이 되어 사람의 죄의 죄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값을 담당하시는 수밖에. 세례요한이 이를 알고 화들짝 놀랐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세례는 죄를 회개하고 씻음을 받는 표징이다.
이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저를 일깨우셨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그때에서야 요한은 순응하였다(마 3:14-15).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이루신 합당하심에 대하여 좀 더 살펴보려 한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의를 위함이다. 하나님의 의는 모든 의다. 여기서 우리의 자세는 하나뿐이다. 경외함으로 우리 발에 신을 벗는 것.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 합당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든 의를 위하여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삼하 14:14).”
1. 우리를 하나님의 의의 증인으로 세우신다.
땅에 쏟아진 물처럼 쓸모없는 자가 되었으나 하나님은 방책을 세우셨다. 스스로 구원의 창시자가 되어 사람의 죄의 죄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었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모두 충족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의의 합당하심을 이루시었다. 이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알게 된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보면 늘 모든 일은 적당하여서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통해 공의를 행하신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단 2:21).” 이로써 모든 게 다 때가 있다는 것.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없어서 조급해하고 망설이다 두리번거리며 당황스러워하다 좌절하고 주저앉기도 하면서,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8).” 곧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이심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때를 알려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열심을 다해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때와 시기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 하는 이와 같은 사명을 붙들고 산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삶에 대하여 신뢰하고 의뢰하는 것이다.
2. 세월을 아끼게 하신다.
우리는 시편의 기도를 따라 아뢴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시 89:47).” 그 기한이 허무할 정도로 짧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잘 안다. 젊음과 건강은 그래서 위태로울 따름이다. 장담하는 순간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갈 뿐이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곧 우리 안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으로 오늘에 연연해하지 않고 당장 처한 현실에도 의연하게 하심이다.
그래서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30-31).” 이를 전도서의 말씀으로 다시 읽는다면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곧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전 7:16-18).”
이를 축약하면 우리는 우리 의지로 판단하고 선호하고 이를 좇아가는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세상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속한 우리의 본성이다. 늘 끊임없이 이는 욕구를 말이다. 사는 데 드는 부대비용이 다들 만만치 않다. 이를 행복 추구권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행복을 위해 그 값을 무느라 다들 돈돈거리며 돈의 노예로 산다. 보면 그 기준이 ‘남들처럼’인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안엔 거머리의 두 딸이 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잠 30:15).”
부질없는 것에 너무 연연해하느라 인생을 탕진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고로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전 3:9-10).” 그러니 그 노고가 우리의 만족함을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다.
3. 우리로 자족의 비결을 알게 하신다.
이어서 오늘 본문을 보자.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 3:12-13).” 이를 바울은 알았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이는 주가 다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2).” 하나님은 우리의 편이시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시 56:9).” 곧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118:6).” 그는 우리를 돕는 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54:4).” 다시 말해 우리는 그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아는 것은 반드시 그 때가 이른다는 것이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그러므로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전 6:2).” 오늘 본문도 이를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그러므로 오직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으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4. 우리들로 하여금 주를 더욱 사랑하게 하신다.
고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그러니 지금 우리 수준은 모두들 자가진단이 가능하다. 곧 입만 열면 말하는 것이 우리의 영성이다. 지금 붙들고 애쓰는 일이 우리의 영적인 수준이다. 지금 바라고 붙들고 의지하는 게 무엇인지. 자주 언급하고 늘 생각을 떠나지 않는 게 무엇인지. ‘지금, 네 발에 신을 벗으라.’
결국 주께서는 우리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가장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그 가운데서도 가장 최선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은 그 말이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 3:12-13).”
이는 우리가 주를 사랑하고 주가 우리를 사랑하심을 아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두시는, 먹고 마시고 수고하여 낙을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족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하였다(빌 4:11-12). 이어서 말씀은 이르신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나오는 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 3:14).”
우리로 주를 경외하게 하려하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 발에서 신을 벗는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내 방책, 자구책, 의지하는 모든 수단을 내려놓는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5).” 이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정의로 알았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
싫든 좋든, 알든 모르든, 인정하든 부인하든, 우리는 때가 되면 모두 죽는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그래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곧 이제 우리로 아들을 삼으시려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물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하나님은 이 또한 강제하지 않으셨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결국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로서 하나님의 모든 의는 합당하시다(유 1:24).
그러므로 ‘우린 이제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살자(6:1-2). 참 행복이 무엇인지 바로 알자(3). 인생은 그저 허무할 뿐이다(4-6). 고로 자족하는 삶이 복되다(7). 그러므로 자신을 자랑하지 말자(8). 하나님 앞에 승복하자(9-10). 이는 덧없는 인생에서 덕 있는 삶을 사는 비결이다(11-12).’ 지난번에 이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동일하다. 모든 의로 합당하신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5).”
곧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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