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여호수아 23:8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편 95:6
이렇듯 천하의 아무개도 나이 많아 늙는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수 23:1).” 그럴 때 저가 들려줄 수 있는 말 중에 이보다 귀한 게 또 있을까?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8).”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을 유언으로 들려줄 수 있다는 게 값지다.
아이와 에베소서 6장 전반부(1-9)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다 누구 이야기가 생각났다. 저가 그랬다. 자신은 안 믿는 남편과 두 자식과 떨어져 혼자 천국에 가야 한다면 싫다고! 천국에 가서도 또 살아야 하는데 사는 내내 저들을 그리워하느니 차라리 저들이 가는 곳에 같이 가는 게 낫다고! 이는 그야말로 무지에서 나는 소리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아이는 안 믿는 부모와 사랑하는 두 동생을 두고 있었다.
주 안에서 순종할 때 주가 이루신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러했고 나의 이야기도 그러하다. 아이는 그 가정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될 것이다. 그 누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저의 고백이 지극히 감상적이어서 그렇다. 차마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그만두었다. 어느 가까운 훗날에, 저에게는 남자가 생겼다! 이혼을 하네 마네 하는 소리까지 들었었는데 다음은 어찌 됐는지 모른다.
사람은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어떠하든 시간은 흘러 우리는 모두 늙는다. 영국의 희극 작가 버나드 쇼는 죽기 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적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다들 능청을 떤다. 마치 지금 자신의 감정이 영원할 줄 안다. 혹은 최소한 이 순간만큼은 전부일 것이라 여긴다. 금세 돌아서면 참으로 부질없는 감상에 지나지 않을 것을 말이다.
예수님은 엄격히 이르셨다(눅 9:43, 45, 47). 만일 손이 범죄 하게 하면 찍어버려라. 발이 범죄 하게 하면 찍어버려라. 눈이 범죄하게 하면 빼버려라. 너무 끔찍한 소리 같으나 우리는 금세 상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관계이다. 그런 우리를 맞이할 지옥은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49).” 자기 말에 또는 그 확신하는 마음에 소금이 쳐질 것이다. 염장하는 것이다.
오늘을 살며 우리에게 두시는 말씀을 듣고 보고 느낌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게 계시다. 주께서 그리 열어 보이시는 세계가 귀하다. 아이와 성경공부를 하며 안 믿는 부모와 형제에 대하여 나아가 곁을 함께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위하여 우리가 기도하고 주 안에서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 뒤에 저를 지으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곧 내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형제를 위하고 누구를 살펴 돌보는 일도 모두가 ‘주 안에서’ 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50).” 말씀의 경계를 주목해야 한다. 부모자식간의 순종이 능사가 아니다. 공경만이 할 일이 아니다. 주 안에서다. 주를 사랑하는 만큼 부모를 공경라고 형제를 위하는 것이다. 내 곁에 두시는 이 작은 아이 하나라도 귀히 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37).”
마침 아이가 아이에게 대하는 마음을 두고 우린 같이 공감하였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병명을 가지고 살지만, 우리가 저를 위하고 사랑하는 것은 주의 마음으로이다. 그 뒤에 주가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잘 따르고 또 잘 위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말씀을 적용하고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러므로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 그 실현이 저들을 위함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태도이고 저들에게 순종하는 이유이다. 우리 안에 소금을 두고 사는 자로 우리는 또한 소금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아이에게 아이의 안 믿는 부모가 이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11).” 저들의 반대나 우려가 때론 박해로 이어지지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2).”
나는 아이의 형편을 다 이해할 길이 없다. 안 믿는 부모 밑에서 안 믿는 가족들 중에 홀로 주일을 지키며 믿음을 이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사실 잘 모른다. 그 가운데서 소금의 맛을 내고 그 역할을 하게 하시려고 아이를 먼저 세우셨음을 강조하였다. 열심히 공부하여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중요하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 남부럽지 않게 사는 일보다 귀하다.
아무리 어떠하든 천하의 아무개도 늙는다. 늙어서 늙은 자의 입으로 할 수 있는 말 중에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이 무얼까? 여전히 사리사욕을 자신의 신념으로 알고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의 공명심을 사명감으로 아는 늙은이의 주장은 허망하다. 설령 그의 말이 다 옳다 해도 그 옳은 말을 어디에 쓰려고 목소리를 높이며 머리를 들까? 나는 오늘 날 우리 사회의 늙은 위정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목청 높은 부르짖음이 우려스럽다.
늙은 자의 말이란 이런 것이다. 오늘 말씀은 표본적으로 들려주시는 것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23:6).”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참으로 헛될 뿐이어서, 죽고 못살 줄 알았던 사이도 돌아서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될 뿐인지.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8).”
늙어서 그 늙음 동안 자신과 동행하였던 하나님에 대하여 이와 같은 확신으로 증거 할 수 있음이 값어치 있는 일이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10).” 삶이 그 증거가 되는 삶이었다. 여호수아의 날들은 모세를 따라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하였던 것이다.“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11).”
자기 삶을 전체적으로 울려 공명하는 말은 참으로 귀하다.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14).” 그런데도 늙음에 이르러서까지 놓지 못하고 사는 것 서넛이 있었으니 권세와 명예와 명분이다.
대체 이 땅의 명분을 가지고 무얼 하겠다고 저러는지. 종종 나는 저들의 남은 시간을 가늠해보다 몸서리친다. 길어야 한 생인 것을, 그리하여 나라를 구한들? 나는 아이에게 감히 말해주기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독립을 위해 희생하였다고 하여 그 값은 한 평 반의 명예뿐이지 않은가? 우리가 그리하는 것은 그 나라와 그 민족을 주께서 주신 까닭이지 다른 목적이 없다. 주를 사랑함으로 나라를 구한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다. 나라 때문이 아니다.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게 아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15).” 결국 우리는 이 땅을 위하고 이 민족을 위하고 부모와 형제를 위하여 사는 게 아니다!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16).” 아이와 나눈 성경공부와 오늘 아침의 말씀 묵상이 하나가 되어 내게 들려주시는 것 같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엡 6:8)." 그러므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 9:50).” 그 무엇보다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곧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
그러므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 95:1).” 또한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2).” 왜냐하면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3).” 이에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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