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사사기 6:12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시편 102:25
주가 함께 하심이 가장 귀하였다. 우리 인생의 허망함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노래한다.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시 102:3).” 또한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11).” 늙으신 부모를 뵐 때면 그 증거가 한 뼘씩은 더해져가는 것 같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일보다 더한 은총은 없다. 이를 아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6-7).” 이는 곧 우리의 낡아짐과 새로워짐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4:16).”
고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그의 함께 하심이 얼마나 진귀하고 놀라운가 하는 것을 기드온의 이야기에서처럼 생동감 넘치게 그려지는 부분도 없는 것 같다. 저의 당돌하고 무모함이 외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17).” 그것을 마땅히 삶 가운데 살면서 주께 바라고, 이를 들어주시는 주의 선하심 앞에 신나는 일이다. 이를 바로 아는 것이 지혜이고 믿음이겠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시 102:25).”
늘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고, 그러니 그 생이 어쩔까? 힘에 겨울 뿐이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애통해하는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아이의 이런저런 모습에서 안쓰럽고 답답하다가도 그리하여 저보다 절실하게 주를 바라며 사는 삶이 또 어디 있겠나싶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다. 우리는 저의 온전하지 못한 부분을 보고 혀를 끌끌 차지만, 저의 그러한 모습에서 우리의 한계나 어쩔 수 없음을 주께 고백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래도 좀 낫다고 여기고 온전하다고 생각하여 얻어진 삶의 결과가 어떠한가?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에만 매몰되어 살아가는 인생에 대하여 아이는 교훈이다. 훈계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로 하여금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을 부정하며 사는 사람의 차이를 확연히 구분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 그러나 하나님을 외면하는 이에게는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66:24).” 곧 저의 삶은 사는 게 지옥이라.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주를 바라고 저들은 저들의 강인함으로 자기들을 무장한다. 하여 뒤늦은 후회뿐이니,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마 25:11).”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무슨 이야기 끝에 딸애가 말했다. 우리도 아빠가 죽으면 지금처럼 하나님을 바라고 살까? 교회나 나갈까? 하면서 제 엄마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가늠하느라 말을 보태지 않았고, 결국은 자신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이겠거니. 어느 가까운 지난날에 나 또한 그러한 생각을 하였었다는 데 놀랐다. 아버지 죽으면 더는 하나님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는 할까? 내가 교회는 나갈까? 하고. 그런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시고 이로써 치료하신다는 데 확신을 갖는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주가 고치시고 건지신다.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147:18).” 그리하여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이는 누가 그리 들려주고 설명한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 행하시는 이의 선하심으로 우리는 다만 맛보아 알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이것이 어찌 저의 굳은 결심에서 나온 고백이겠나. 결의나 결연한 각오의 진술이겠나. 종종 나는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22).” 때론 삶의 고단함으로 인하여 극단적인 회의가 밀려들 때도 있으나.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23-24).” 아직은 육신에 있는 것이 유익한 까닭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 14:7).” 이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8).” 그럴 수 있어 감사한 것이다. 무심코 건넨 내 딸아이의 진솔한 고백이나 종종 드는 내 안의 회의와 갈등이나. 그것으로 과연 나는 하나님과 상관이 있는가, 의기소침할 때도 있지만.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무엇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인가를 보면 안다. 살아서 저긴 꼭 가보고 싶다는 둥, 사는 재미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세상 것에 현혹될 때도 있겠으나 주가 날 위해 갚아주신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6-9).” 이와 같은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것이라면.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 102:26-27).” 내 아무리 힘에 겨워 사는 게 지옥 같을 때도,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28).” 그것이 오늘에 이르러 나의 부모의 증거였고, 나의 삶의 증거였으며, 우리 후손의 증거가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새로워지는 것이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삿 6:23).” 주가 붙드시고 함께 하심의 증거는 모두가 동일하였다. 이에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할 수 있는 삶의 자세가 복인 것이다(24).
종종 엎드러져 고난 중에 주의 이름을 부를 때도,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시 102:1).” 그리하여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게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특권이며 엄연한 구별됨인지! 나는 이제 주께 간구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2).” 때로는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6-7).” 외로움에 목이 졸려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을 때,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12).” 이와 같은 고백의 기도가 누구의 것이었던가. 살면서 살아서 이를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이 은혜였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17).”
이는 나의 늙으신 부모의 고백이었고 오늘에 이르러 나의 고백이 되었듯이 어느 훗날 우리 후손들의 노래가 될 것이었으니,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21).” 고로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26-27).”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0) | 2019.06.19 |
---|---|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0) | 2019.06.18 |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0) | 2019.06.16 |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0) | 2019.06.15 |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0) | 2019.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