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전봉석 2019. 8. 4. 07:04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삼상 29: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시편 146:10

 

 

일의 조화에 있어 사람은 그저 아둔하고 미련할 따름이다. 가령 늙으신 장모의 꼬리뼈가 금이 가서 아프고 힘들었던 것을, 파스나 붙이고 진통제를 먹이면서 모시고 여행을 다녔으니. 당사자나 가족이나 누가 알았겠나. 사람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면서 저마다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하면서 산다. 결국 꼼짝도 못하고 끙끙 앓자 우왕좌왕하였고 서둘러 우리 집 근처로 옮겨와 입원을 시켰다. 그러느라 나는 안개 속 같은 우리의 생의 가벼움을 생각하였다. 단지 노인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생은 그러하다. 누가 알겠나?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삼상 29:10).”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같은 민족 하나님의 백성들과 전쟁하는 자리에 다윗을 내보내지 않으셨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언제나 큰 교훈을 더한다. 아기스 왕이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나 다윗의 능청에서도 그 일의 조화는 하나님께 있음을 새삼 읽을 수 있다. 병원에 가면 온통 다 아픈 사람들이라. 한 젊은 아가씨는 그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간신히 검사를 받으러 다녔다. 보니 어쩌다 삐끗하여 허리를 펴질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마다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스스로의 나약함을 직면하게 된다. 어기적거리며 고통으로 일그러져 힘겨워하는 모습에 우리의 연약함을 배울 수 있었다. 결국 우리의 고백은 하나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저는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죄가 얼마나 깊든 하나님의 구원은 높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이 모두를 하나님이 하신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 일을 행하시는 것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서다(36:24-27). 단지 우리의 고충을 헤아려 고쳐주고 도와주어 잘 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더 확실하고 엄연한 사실이 우리들 이야기 안에 담겨 있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29).” 이를 알게 하시려고 모든 일의 조화를 주관하신다.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 당장 어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할 때 그것도 토요일이라 뭘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 차라리 인천으로 모시고 오게 하여 이 일을 대응하게 하시면서!

 

구원을 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게 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16).” 누구는 발을 동동 구를 때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께 의뢰할 따름이다. 오전에 나는 자동차 서비스센터에 들어가서 차를 맡기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천주교 사상 평가>를 e-북으로 읽었다. 누구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그 무엇도 그의 이름보다 높을 수 없다. 우리 안에 얼마나 수시로 마술사 시몬이 나대는지 모른다. 이를 내가 가진 선행으로, 능력으로, 노력으로, 이치와 가치로 해결하려 든다. 온갖 것을 숭상하고 숭배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다. 그러나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6-17).”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구속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스스로 행하는 모든 노력의 것들은 죄악되다.

 

저마다 그저 당면하는 일에 쩔쩔맬 수밖에 없는 주제에 어쩌면 그토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는 과감하고 무모한지. 그래서 바울 사도는 결연했구나!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이게 옳다 저게 맞다, 다들 알아서 돌아치는 때에 그저 묵묵히 주의 인도하심과 그의 섭리에 순응할 수 있는 것이다. 주께서 나의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오직 주만이 나를 아신다. 나도 나를 알지 못하면서 누가 누구를 어찌할까?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5).” 그럴 수 있게 하시려고, 일의 모든 조화 가운데서 하나님은 홀로 열심이시다. 하나님은 결국 우리의 온전한 변화를 원하신다. 그저 일부분과 고치고 점검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13-14).” 이처럼 말씀 붙들고 말씀 가운데서만 거할 수 있기를.

 

실은 고통이 두렵다. 아픈 게 무섭다. 나는 장모의 고통을 보고 그 급박한 일의 진행을 지켜보다 생각하였다. 곧 닥쳐올 앞일을 누가 알겠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별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전혀 다른 사람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저 난다 긴다 하며 잘난 줄 알고 살다가도 허리 하나 삐끗하면서 제대로 설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럴 땐 기계만도 못하다. 뚝딱 고쳐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보호자의 입장에서 보는 고통과 직접 당하며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고통스러운 당사자의 입장은 다르다. 어디나 병원 대기실은 일의 조화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다.

 

그런 가운데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를 의뢰할 수 있는 자의 든든함이라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4:6).” 오직 우리 안에 두시는 내밀한 주의 손길 앞에 나는 새삼 감사하였다. 고로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146:10).” 주가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나라가 복되다. 그 한 날이 귀하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1).” 그러므로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2).” 다른 무엇을 의지하고 누구의 도움을 의지하는 일이 미련하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3).” 당사자나 보호자나 엉치에 금이 간 것을 그저 파스나 붙이고 나아질 줄 알고 있었으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4).”

 

오직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