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아이 글

전봉석 2019. 11. 6. 21:40





작년 봄, 집에 있던 약을 다 털어먹고 응급실에 갔다. 죽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다고 죽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 증상을 적던 간호사가 갑자기 내 팔을 걷어 올렸다. 막을 새도 없이 바로 앞에 있던 엄마는 엉망진창인 내 팔을 봤다. 그간 이거 감추겠다고 얼마나 꼴값을 떨었는데. 얼이 빠졌다. 팔이 왜 이러냐고, 언제 그랬냐고, 계속되는 엄마의 질문에 나는 침묵했다. 접수를 마치고 위 세척을 기다리면서 응급실 구석에 있는 침대를 배정받았다. 늦은 저녁때였고 응급실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피떡이 된 붕대를 감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아, 그냥 집에 있을걸.

 

 

응급실에 오기 전, 집에는 나 혼자였다. 매번 팔을 긋는 것도 지친다는 생각이 들 때쯤 모아두었던 정신과 약이 생각났다. 집에 있던 비상약까지 수십 알을 털어 넣고 10분쯤 지났을까, 속이 뒤틀리고 어질어질한 게 이러다 죽겠더라. 급하게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을 듣는 내내 설명할 말을 골랐다. “약을 먹었는데 배가 아파.”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온 말이 저거였다. “그래서? 무슨 약을 먹었는데?” “몰라. 좀 많이 먹었어. 병원 가고 싶어.” 몇 분 뒤 엄마가 집에 데리러 올 때까지 나는 이 상황이 우스웠다. 금방 전까지만 해도 죽고 싶다고 생각했으면서 이젠 아파 죽겠으니 병원을 가겠다는 내가 참 어이궁ㄱ없었다.

 

 

긴 대기 끝에 위 세척을 시작했다. 발버둥 치면 위험하다며 손발을 침대에 묶고 호스를 입에 집어넣었다. 편하게 받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위 세척 하는 내내 헛구역질을 했다. 처음엔 호스를 잘못 넣어 다시 뺐다 넣기도 했다.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위 세척이 끝나고 입에 있던 고무를 빼는데 하도 세게 물었던 탓에 턱이 다 얼얼했다. 엄마가 힘없이 누워있던 내게 오더니 “아빠 지금 도착했어. 보호자 한 명씩 밖에 못 들어오니까 교대해주고 엄만 좀 있다가 다시 올게.”라며 밖으로 나갔다. 아빠도 왔구나. 화를 내면 어쩌지. 이걸 다 뭐라고 설명하지. 몸에 힘이 다 빠져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면서 생각은 끊이질 않았다. 잠시 뒤 아빠가 사람들 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빠는 날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입 주변을 닦아주고 곁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고 참 애지중지했었다. 어릴 때,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아빠는 생각해보겠다는 말만 하고 얼른 화제를 돌렸었다. 나중에서야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동생이 생기면 나한테 소홀해질 거 같다고 나 하나만 키우고 싶다고 했더랬다. 시끄러운 응급실에서 아빠와 나는 한마디도 없이 몇 분을 있었다.

 

 

입원실이 다 차서 응급실에 딸린 간이 병실로 갔다. 수액을 맞고 있으면 간호사들이 종종 와서 상태를 체크 하고 갔다. 팔도 같이 소독해주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엄마랑 아빠를 내보냈다. 커튼을 치고 그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간호사는 얼른 꿰매야 한다고 했지만, 처음엔 거절했다. 그럴 거면 왜 그었게요. 하지만 소독을 할 때마다 계속 꿰매야 한다고 말하는 간호사도, 내 팔을 보려고 하는 아빠도 성가셔서 결국 하기로 했다. 새벽에 수술실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옆 방으로 가서 누웠다. “흉 안 지게 해 주세요.” 아빠는 내 옆에 서서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이렇게나 벌어져 있는 살이 꿰맨다고 흉이 안 남겠는가. 죽으려고 발버둥 치는 나를 아빠가 끌어올리는 거 같았다. 아빠의 마음이 너무 따듯해서 서러워졌다.

 

 

마취 주사를 하니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실수라도 눈이 떠질까 싶어 고개도 반대쪽으로 돌렸다. 내가 째 놓고 꿰매는 걸 보기는 무서웠다. 눈을 감아도 틈새로 눈물이 계속 흘렀다. 아픈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이따금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 졌다. 괴롭고 쪽팔렸다. 죽고 싶다며 자해를 해놓고 병원에 와서 얌전히 누워있는 꼴이 한심했다. 나는 수술이 끝나고 붕대를 감을 때가 돼서야 눈을 떴다. 눈물 자국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불편했다. 마취가 풀리면 조금 아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침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아빠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내 침대는 병실 맨 안쪽에 있었다. 수액 걸이를 끌며 돌아오니 엄마가 앉아있었다. 엄마는 내 붕대 감긴 팔을 보더니 어휴, 하는 한숨 섞인 소리를 내고 밖으로 나갔다. 일정 시간 외에는 보호자 1명까지만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아빠는 잠깐 더 있다가 엄마랑 교대하고 내일 출근을 위해 집에서 자기로 했다. 눈도 뻐근하고 머리도 아프니 잠이라도 빨리 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침대에 누웠다. 아빠는 간이침대에 앉아 내 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빠가 생각이 많아질 때면 무서웠다. 내가 본 아빠는 약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넘쳤지만, 본인은 챙길 줄을 몰랐다. 어릴 때 아빠와 고기를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빠는 취해서 벌게진 얼굴로 “아빠가 없으면 어떡할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왜 그런 소릴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빠가 왜 없다는 건지, 어디론가 떠난다는 건지, 죽는다는 건지, 취중에 하는 소리인지,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빠가 걱정됐다. 죽고 싶은 걸까, 죽으면 어떡하지, 나는 어떡하지. 하지만 나는 어렸고 마음을 전하는데에도 서툴렀다. 사랑한단 말도 편지에 쓰는 게 아니면 하지 못했다. 결국, 머뭇대다가 “아빠 없으면 돈은 누가 벌어.”라고 대답했다. 아빠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나온 말이 저거였다. 그 후로 며칠 동안은 아빠가 저녁에 돌아오지 않을까봐 혼자 마음졸이며 시계를 쳐다보곤 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아빠가 늦게 오는 날이면 예민해지곤 한다.

 

 

“아빠 무슨 생각 해?” 한참을 가만히 생각하는 얼굴로 있던 아빠를 보니 불안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생각의 흐름을 끊고 싶었다. “응? 아니 그냥, 왜 이렇게 됐나 싶어서.” 아빠는 담담하게 말했다. 수술이 끝나고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올 거 같았다. 분명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릴 때부터 나와 보내는 시간이 적다고 소홀했던 점에 대해 줄곧 신경 쓰던 아빠였다.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는데. 아무도 모르지.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아빠가 걱정하는 게 싫었다. 나한테 미안해하는 것도 못 견디겠더라. 그렇게 투박하게 말을 전하고 대화는 끊겼다. 계속 생각이 많은 듯한 아빠를 뒤로하고 나는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아빠의 말은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당황스러웠겠지, 잘 지내던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보니.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의문의 답을 찾긴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바로 잡을 기회는 있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나는 그날 밤 어지러운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