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행 20:24, 딤후 4:7-8 / 한 길 가는 순례자

전봉석 2019. 11. 7. 17:21

20191110 주일

20:24, 딤후 4:7-8

한 길 가는 순례자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들어가는 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안다본다는 같은 맥락이다.” 사람은 아는 것을 보고, 보는 것으로 안다.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삶을 추구하는 바는 달라진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아는 데 따른 가치의 문제가 보이는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 앞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음의 청결과 그것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를 먼저 살펴보는 것은, ‘하나님을 본다하나님을 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일이다. 이를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13:16).”

 

한데 이 일은 우리가 임의로 그리하는 게 아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17-19).”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과정이 된다.

 

첫째,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야 한다.

둘째, 주의 영이 함께 하실 때 우리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셋째,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무엇을?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그의 힘의 위력이 어떠한지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

 

마음이 청결함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청결이란 저절로 깨끗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눈꺼풀은 하루에 약 25천 번을 깜빡거림으로 눈동자의 청결을 유지한다. ‘잘 안다해도 더러우면 보지 못하는 법이다. 마음이 갈리어 두 마음이 될 때 이는 불가능하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원래 눈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면 손이 가게 되어 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 그래서 친구를 보면 그를 알고, 그의 하는 일을 보면 성품을 알 수 있다. 재물을 추구하면 돈을 쫓고, 출세를 추구하면 양심을 저버린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22-23).” 곧 우리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 산다는 의미이다.

 

내가 달려갈 길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우리는 한 길 가는 순례자이다. 이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4:8).” 이는 마음이 청결한 자의 비결이고, 달려갈 길을 다하는 사명자의 자세다. 수시로 눈을 깜빡거리는 눈꺼풀처럼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하시는 말씀으로 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8).”

 

우리는 그럴 수 있다. 우리는 그럴 수 있게 하시는 이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4:5-8).”

 

그러므로 우리는 달려간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가지고 산다.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우리의 사명으로 삼고서 말이다. 이를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는 바울 사도의 결의는 단순히 개인의 각오가 아니다(20:24). 이는 이제 우리 모두의 의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이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가야할 길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3).” 이를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우리는 거저 얻었으나 이 구원의 값어치는 도무지 측량할 길이 없다. 이를 알고부터 바울은 자신이 달려갈 길을 바로 본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5:17).” 곧 믿음으로 이 자리에 나아온 우리 모두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영원히 안전하게 되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

 

이는 미리 정하신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32).” 이를 알 때 우리는 더욱 마음을 정돈하고 청결하여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단번에 깨끗해지는 마음은 없고, 깨끗해졌어도 언제든 다시 더러워지지 않는 마음도 없다. 그러므로 이 청결은 쉴 새 없이 닦아내야 하는 눈꺼풀의 수고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한다. 범사에 감사한다. 항상 기뻐한다.

 

선한 싸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있지 않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절대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상대이지만,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45:7).”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다. 이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 주를 주목하여 본다.’ 그러므로 이 사회가 아무리 죄로 아우성친다 해도,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5:4).” 그래서 우리는 계속 요동치지는 않는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55:22).”

 

오늘 본문은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 후에 우리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한다. 이는 주를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동일하다. 이를 아는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로 그 경주를 다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 준비를 하여야 할까? 곧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0-12).” 그렇다면 우리가 입을 전신 갑주는 무엇인가?

 

첫째, 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한다.

둘째, 의의 호심경을 붙여야 한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6:15).” 변치 않는 진리, 하나님은 나를 창세전에 예비하셨고 택정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그래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라고 담대히 부르며 나아온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 그리고 우리는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복된 자로 산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5:6).” 이 의는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이의 의다.

 

셋째, 평안의 신을 신는다.

넷째, 믿음의 방패를 들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6:15-16).”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가난해도 행복하고, 슬퍼도 행복하고, 핍박을 받는데도 행복하다는 데 어쩔 것인가? 이런 자를 세상이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11:38).” 그런 우리는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면서도 행복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하면 이 평안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다섯째, 구원의 투구를 썼다.

여섯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을 말씀을 가졌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6:17-18).” 아무리 하늘이 두 쪽이 나고 난리와 난리, 소문과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해도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24:6).”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이를 알게 하고 약속하시는 주의 말씀을 가졌다.

 

나오는 말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용사다. 달려갈 길을 다하는 경주자이고 그 선한 싸움 끝에는 반드시 면류관이 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12).” 즉 오늘 우리의 인생은 그저 고단한 나그네 길로 길에서 죽지 않는다. 순례자는 성지를 찾아간다. 하나님의 나라,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1:20-21).” 이와 같은 마음의 청결함이 우리의 것이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