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사도행전 10:38, 요일 2:20 / 기름부음 받은 자

전봉석 2019. 10. 23. 10:05

20191027 주일

 

사도행전 10:38, 요일 2:20

기름부음 받은 자

 

 

사도행전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들어가는 말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은 무얼까? 성령이 임하셨다, 성령이 내주 임재하신다는 말은 또 무얼까? 중요한 것은 이를 우리가 어떻게 확신하며 무엇으로 삶의 증거를 삼고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에 따른 성경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한다. 먼저는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따른 우리 삶의 증거는 무엇인지, 끝으로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

 

1) 하나님 안에서 거한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

 

도대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누가 묻기를 성령 받았나? 기름부음을 받았나? 하면 과연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앞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느 어린아이가 있다. 여러 명의 비슷한 여자들을 세워 놓아도 아이는 엄마를 알아본다. 그때 엄마의 키가 몇이고, 혈액형이 뭐고, 학벌이 어찌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이는, 그냥 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누구를 대언자로 세우고 어떤 이로 중재를 맡겨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담대히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3:12).” 이와 같은 증거를 몰라도 안다. 주께서 보증하시는 일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고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 아뢴다는 의미다.

 

2)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우리는 이제 안다. 때로는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해도, 우리 안에는 언제부턴가 들은 바를 지키고자하는 본능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29).” 여기서 처음부터 들은 것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주의 보혈로 우리 죄는 씻은바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이들이시라는 것이다. 이를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믿음으로만이 아는 진리다. 이를 우리 안에 거하게 하라, 하심은 어린아이가 엄마를 알아보고 저가 자신의 엄마인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그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음으로 더욱 더 자라가는 것처럼, 믿음으로 난 자는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할 길 없다 해도 하나님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고, 이를 확신하고 그와 같은 주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바란다.

 

3)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여기에서 성령을 주셨다, 인치셨다, 기름부름을 부으셨다 하는 말은 모두 동의어다. 보증이 되셨다하는 표현도 같은 의미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이와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없다. 들리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으며, 보이지도 않고 보려하지도 않는다. 오직 성령을 주심으로만이 우리는 믿는다.

 

2. 기름부음 받았다는 증거

 

1) 진짜와 가짜를 안다.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요일 2:21).”

 

우리는 이제 안다. ‘이건 아닌데싶은 것을 안다. 아무리 친절한 여인이라 해도 그가 자신의 엄마인지 아닌지 아이는 안다. 진리를 알수록 우리는 거짓에 예민해진다. 진리로 나지 않은 것을 불편해한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27).” 이는 누가 가르쳐서 아는 게 아니라, 이상하지만 언제부터 안다. 우리 안의 성령이 이를 불편해하시는 것이다.


2) 본능적으로 생명의 말씀을 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그래서 우리는 이제 진리 아닌 것을 불편해한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것이 더는 견딜 수 없는 모욕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을 때 우리는 분개하며 괴로워한다. 또는 내가 왜 저 사람으로 인하여 애통해하는지 설명할 수 없으나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도 안다. 왜냐하면 내 마음으로는 도무지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일까?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다시 말해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살아난 것이다.

 

3) 참됨과 거짓됨을 분별한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우리 안에 찔림이 있다. 뉘우침이 있고 후회가 있고 반성도 있다. 이를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 앞에 아뢰며 회개한다. ‘다 그렇지 뭐, 그럴 수 있지!’ 하던 것을 이제 용납하지 않는다. 문화라고 또는 관행이라고 하던 허울을 더는 허용하지 않는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7).” 아멘.

 

4)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속하였다는 것은 저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82:8).” 이를 더는 구속으로 여기지 않고 자유함으로 받는다. 주께 속함으로 더 큰 혜택을 누린다. 하물며 이 사회도 저들 소속의 식구들을 변호하고 위하고 방어하는데!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94:14).” 아멘.

 

5) 말씀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일이다. 다들 분주하고 바쁜 날들로 쫓기느라 순간의 휴식이 찾아오면 뒤죽박죽이 되기 십상이다. 저들의 주말은 그러해도,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이를 먼저 알고 구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더하신다는 사실을 이제는 체험으로도 잘 안다.

 

6) 더욱 말씀에 유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2:1).”

 

유념한다는 것은 마음에 두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 마음은 보물이 있는 곳을 향하게 되어 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1).” 이는 필연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하고 요한은 기도하였다. 영혼이 잘 돼야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다. 범사는 잘 되고 강건한데 영혼이 비실거리면,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같이 된다. 저가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을 만족스러워하며 되뇌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12:19).” 참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시니(20).” 우리는 이제 이와 같은 말씀에 유념한다.

 

7) 우리는 당당해진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수치심으로 자존심 상해하던 일이 오히려 이제는 자랑이 되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4:16).” 고로 우리는 당당하다. 가진 게 없어도, 병들고 늙은 몸으로도 우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3:17-19).” 아멘.

 

8)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귐이 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이와 같이 성도의 교제는 누림의 필수다. 도움을 받을 줄 아는 것이 도움을 주는 일보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교회는 결코 곁치레로 다닐 수 없다. 적당히 선을 긋고 사귀는 사귐은 교회의 사랑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심을 받은 곳이다. 주께서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아멘.

 

9) 또한 주의 약속을 신뢰한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2:25).”

 

그래서 우리는 미혹당하는 영에 빠지지 않으며, 이를 위하여 말씀에 유념하고 기도에 전념하며 서로를 붙들어준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28).” 아멘.

 

10) 그리하여 우리는 점점 더 의연해져 간다.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29).”

 

곧 우리가 하려고 해서 하는 게 아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지만 이는 우리 안의 주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80:19).” 곧 우리는 이제 남은 생을 살며 점점 더 의연해진다. 병에 걸려도, 사업에 실패해도, 원하던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3. 우리 삶에 나타나는 증거

 

1) 힘이 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84:5-7).”

 

2) 고통 중에서도 축복을 경험한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10).”

 

3) 어떠하여도 주를 의뢰한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13:15).”

 

4) 드려지는 삶이 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10).”

 

나오는 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11-12).”

 

우리는 이제 우리 삶 자체로 하나님의 이야기가 된다. 곁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여진다. 그러므로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이것이 우리 삶의 증거다. 믿는 자의 도리다. 기름부음 받은 자로, 성령이 임하시고 내주하시는 자로, 인치시고 보증이 되신 자로 사는 자의 특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