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들 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
에스겔 28:9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21:5-6
말씀을 기준으로 놓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산다 해도, 때론 너무 멀어지고 더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이제 모든 게 끝장난 것으로 알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넓고, 길고, 높고, 깊으시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바울의 이와 같은 기도가 새삼 더욱 새로운 하루였다. 종종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아는, 내가 하나님이 되려 할 때의 경고다.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들 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겔 28:9).” 지금의 것은 영원하지 못하다. 이를 여실히 느낄 때 주의 손길이 내 삶 깊숙이 자국을 남기셨던 것을 눈여겨본다. “그것의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토기 조각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그것이 지나갈 때는 진흙 바닥에 도리깨로 친 자국을 남기는구나(욥 41:30).” 아침에 저와 말씀을 나누면서 보면 주의 손길이 나의 지난 날 위에 어찌나 선명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순 엉터리로 살아온 날들 뿐인데, 진흙같이 질퍽거리고 금세 또 형체가 물에 덮였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며 주의 은혜의 골이 깊이 패여 생수의 물길이 선명하였다.
쓸모없는 돌무더기 땅이 일구어져 가시덤불을 거둬내면서 농부 되시는 하나님은 씨를 심으셨다. 이 모두는 내가 이룬 게 아니다. 내가 싸워 이길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사탄은 늘 같은 보폭으로 내 곁을 맴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3).” 내 안에는 여전히 선을 원하나 악을 행하기 좋아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그러는 중에 주의 은혜를 구하였다. 하나님은 나의 진토보다 못한 추하고 더러움보다 언제든 선하시었다. 스스로 위로를 얻고 피로를 풀려 하던 것에서는 평안을 얻지 못하였다.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욥 7:13-14).” 이제는 말씀이다. 그의 책이다. 얼마 전에 읽었는데 새로워서 다시 읽고 있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성경과 같이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15).” 그와 같은 고통 중에서도 주는 나의 선하신 목자라. 나의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11:8-9).”
이러한 말씀 앞에 한참씩 앉아 시선을 두고 물끄러미 주를 묵상하는 일은 즐겁다. 그의 사랑의 길이를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을까?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 30:4).” 때로는 주와 멀리 떨어져 신음할 때도,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그 비참하고 암담한 상태에서도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애 3:17-18).”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주께서 약속하시는 언약이라. 주의 손이 짧아 닿지 못하시겠나?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사 50:2).”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시겠나?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59:1).” 성경은 늘 한결 같다. 곧 ‘거기서부터 나를 이끄셨다.’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 30:4).” 아무래도 성경을 같이 나누다보면 서로의 어떤 날을 돌아보며 자신의 체험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일을 더듬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늘 놀란다.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여겼는데, 언제나 ‘거기서부터’ 주님은 나를 이끄셨다. 그런 고백을 하다보면 진저리나는 나의 오늘의 일상이 감사할 따름이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느 1:9).” 그 하나님의 손길은 요나가 더는 가망이 없었던 물고기 뱃속에까지 닿아서 저를 건지셨다. 그처럼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9-10).” 그 놀라운 은혜 중에 오늘은 이처럼 누구와 말씀을 나누며 서로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찌 운행하시는가를 나눌 수 있다니. 아무리 멀리 더 멀어져 더는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떨어져나가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 해도,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욥 40:9).” 그때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사 33:2).” 오늘도 주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사 51:9-10).” 그렇게 월요일은 시작되었고, 나는 읽었던 책을 다시 더듬었고, 오후께는 아이엄마가 갑자기 복숭아를 한 박스 들고 직접 전해주고 갔다. 저이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하였고, 아이는 옆에서 새로 귀를 뚫고는 머쓱하게 웃고 있었다.
이런저런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우리의 절망은 우글거린다. 고통으로 깊이 팬 상흔은 선연하고 이를 두고 저마다는 고단하다. 사느라 힘에 겨운 날들이고, 나는 말로다 저들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하고 주께 간구한다. 내 입에 늘 적절한 말씀을 머금게 하시고, 때에 맞는 말씀으로 저들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생각을 주도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 간구하고 바랐다. 결국 나 하나 힘에 겨워 쩔쩔매면서도, 온전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쇠하는 기분으로 가라앉다가 그리하여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 88:9).” 이토록 주를 찾게 하심이 가까웠다. 이제 살아서 사는 날을 다해 산 자의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때로는 아무리 현실이 설 곳 없는 수렁 같아도,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69:2).” 그래서 더욱 주를 바라며,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14-15).” 주께 간구함이다. 주의 손길이 아니면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나? 차라도 한 잔 하시겠나? 하고 대접하려는데 복숭아만 놓고 휑하니 가버리는 아이엄마의 뒷모습이 속상하였다. 장성한 아들을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노심초사 하는 어미의 마음 때문인지, 그 얼굴이 초췌하였다.
그러할 때 내가 무엇으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신 33:27).” 언젠가 나는 저이와도 말씀을 같이 나누며 주의 이름을 의뢰하고 그 중심에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들어서 알지만,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로 여념이 없는 생활이라, 그 일상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으나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이와 같은 말씀이 저이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기를 기도하였다.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서 주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것!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아, 나는 이제 이와 같은 말씀을 붙들고 늘어진다. 말씀으로 ‘좌우정렬’ 할 때 때로는 말씀에서 멀어져 허덕이곤 하지만,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5-6).” 아무리 어떠어떠하다 해도 주가 우리를 지키시는 이심을.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7-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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