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34편 / 돌아온 자와 돌아오는 자

전봉석 2020. 10. 30. 13:51

 

 

20201101 주일

 

 

시편 34편

돌아온 자와 돌아오는 자

 

34: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34: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4: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들어가는 말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요 6:65).”

 

오늘 시편의 말씀은 ‘돌아온 자’와 ‘돌아오는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는 얼마나 끔찍한 죄인인가, 하는 것을 호세아서를 통해 다시금 살펴보고 들어가자. 호세아의 이름의 뜻은 ‘구원하다’이다. 저로 사랑하게 하신 여인은 고멜인데 그 이름의 뜻은 ‘끝’이다. 의역하면 ‘끝장난 여자’라는 뜻이다. 저는 창녀로, 우상을 섬기고 바알을 숭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에 대한 예표이다. 호세아는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예표가 된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호 3:1).” 눈에 띄는 부사어 ‘또’는 ‘어떤 사태나 행동이 거듭되는 것’을 말한다. 호세아는 그런 고멜을 데려오는데 ‘은 30’을 달아주었다.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2)” 그때 보리 ‘한 호멜 반’은 ‘은 15’의 값어치다. 당시 종의 몸값은 ‘은 30’이었다(출 21:32).”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긴 값이 ‘은 30’이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마 26:14).”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은 30’에 죄의 종 된 몸으로 팔려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셨는데, 이에 저를 데려오는 데 그 값을 지불하신 것이다. 이처런 ‘돌아오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 시편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존 번연의 <내게로 오라>(지평서원)에서 ‘돌아온 자’와 ‘돌아오는 자’의 차이를 여섯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돌아온 자는 어깨에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지만 돌아오고 있는 자는 여전히 그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둘째, 돌아온 자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도록 영원한 생수를 마시지만 돌아오는 자는 여전히 타는 목마름으로 허덕이고 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셋째, 돌아온 자는 더 이상 원수에게 쫓기지 않지만 돌아오는 자는 여전히 쫓기며 불안해한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 4:3).”

 

넷째, 돌아온 자는 설령 유혹을 받아도 곧 주의 능력으로 물리칠 수 있으나 돌아오고 있는 자는 온갖 유혹의 광포에 휘둘리며 자주 고꾸라진다.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눅 9:42).” 다섯째, 돌아온 자는 예복으로 갈아입고 잔치에 들어갈 준비를 하지만 돌아오고 있는 자는 죄 많은 누더기를 걸치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산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눅15:22).” 여섯째, 돌아온 자는 저들의 눈물과 한숨이 기쁨과 찬송으로 변했지만 돌아오는 자는 여전히 눈물과 한숨을 짓고 산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

 

그리스도는 결코 ‘돌아오는 자’를 내쫓지 않으신다. 이를 돌아오고 있는 자만 모르지, 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이에 …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가령 삭개오는 호기심에 나무로 올라가 예수를 보려하였으나 예수님은 저에게 오고 계셨다.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19:4-5).” 그처럼 나다나엘이 빌립의 전도로 예수 앞에 오기 전에,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먼저 알아보셨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궁금해서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그러자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보았노라(요 1:47-48).” 곧 우리를 창세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택정하신 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다(엡 1:4).

 

 

본문 이해

 

1연. 돌아온 자의 여유(1-7)

 

-돌아온 자의 감사는 현실을 초월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1).” 다윗은 지금 이방 나라 왕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났다. 얼마나 비참하고 한심한 상황인가? 그런데 현실을 초월하는 감사가 나온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0).”

 

-돌아온 자의 찬송은 날마다 자랑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2).” 입만 열면 하는 소리가 자랑이고 이것이 관심이며 찬송이다. 우리의 자랑을 듣고 곤고한 자들이 기뻐한다. 이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우리의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 함이다(고후 12:9).

 

-돌아온 자는 믿음으로 동행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3).” 우리가 누구와 같이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갇혀 있으면서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와 함께 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빌 2:19-20).”

 

-돌아온 자는 시련을 통해 주의 긍휼하심을 배운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4).” 참 희한하게도 우리는 어려울 때 주를 부른다. 더는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을 때,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

 

-돌아온 자에게 연단은 주를 더욱 앙망하게 한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5).” 앙망함은 ‘우러러 존경하며 자신의 희망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처럼 우리는 주의 말씀을 따른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27).”

 

-돌아온 자는 천사들이 돕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7).” 하나님은 그때마다 돕는 손길을 두심으로 우리를 돕게 하신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 1:14).”

 

 

2연. 돌아온 자만이 맛보는 것들(8-14)

 

-돌아온 자는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8).” 전에는 야속하고 막연하여 미심쩍던 일들이 뚜렷하게 그 맛을 낸다. 이는 곧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2-13).”

 

-돌아온 자는 말씀을 들음으로 그 맛을 더한다.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11).”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말씀에 있으니(롬 10:17),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돌아온 자는 화평을 누리며 점점 더 익숙해져간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14).” 돌아온 후에 그동안 치이던 것들에서 놓여나 더욱 더 화평을 찾아 따른다. 이는 곧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3연. ‘돌아오는 자’에게 향하시는 하나님의 마음(15-22)

 

- 하나님의 눈길은 돌아오는 자에게 집중하신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15).” 돌아오는 길이 버거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이를 귀담아 들으신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벧후 2:9).”

 

-하나님의 손길은 매순간 돌아오는 자를 향하신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17).” 부르짖는 소리를 듣기만 하시는 게 아니라, 손을 펴서 건지신다. 그러므로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하나님의 기쁨은 돌아오는 자로 인해 즐거워하신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18).” 구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 66:2).”

 

-하나님의 사역은 돌아오는 자에게 집중되신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19).” 의인의 고난은 인애를 낳는다(호 6:6). 인애는 어질고 너그럽다는 뜻으로 마음이 온유한 자를 이룬다. 하여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하나님의 심판 때에 돌아온 자들은 증인이 된다.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21).” 돌아오는 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자로 돌아올 리 없는 자와 다를 바 없으나 주께서는 기필코 저들을 돌이키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22).” 이는 우리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예정하심이다(엡 1:4).

 

 

나오는 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돌아온 자’나 ‘돌아오는 자’는 자는 함께 주의 낙원에 ‘들어갈 자들’이다. 이를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45).” 고로 ‘돌아온 자’들과 함께 예수님과 성령님은 저를 위해 기도하신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이는 우리의 의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예수님은 이를 가리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오늘 말씀은 ‘돌아온 자’들 어떻게 범사에 여호와를 송축하고 찬양할 수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시 34:1). 그때 다윗은 “그들 앞에서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며 쫓겨 나와서 이와 같은 시를 지었다(삼상 21:13). 이처럼 비참하고 처절한 인생에서도 우리의 찬송은 주를 송축함으로 자랑한다. 오늘 시편과 같이, ‘돌아온 자’의 역설적인 찬송이 ‘돌아오는 자’에게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기쁨이 된다. 그리하여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시 34: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