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8 주일
시편 34:16, 21
그리고 ‘돌아오지 못하는 자’
34: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34: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들어가는 말
지난 주일에 우리는 <‘돌아온 자’와 ‘돌아오고 있는 자’의 여섯 가지 차이점>과 <‘돌아온 자’의 은혜>에 대해 시편 34편에서 같이 나누었다. 이어서 오늘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단언컨대 저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우리는 모두 돌아올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의 중보가 아니면 하나님의 권능도 없다. ‘돌아온 자’는 이를 알고, ‘돌아오는 자’는 이를 찾는다. 잠깐 그 차이점을 다시 한 번 짚어보자.
첫째, 돌아온 자는 지고 있던 짐(인생의 고달픈 무게)을 내려놓았고, 돌아오고 있는 자는 여전히 짐을 지고 있다(마 11:28). 둘째, 돌아온 자는 목마르지 않지만(그때마다 말씀을 사모함) 돌아오는 자는 여전히 타는 목마름으로 먹고 사는 일에 쫓긴다(요 4:14). 셋째, 돌아온 자는 크게 원수에게 쫓기지 않지만(주를 의지함) 돌아오는 자는 여전히 쫓기고 눌린다(히 4:3).” 넷째, 돌아온 자는 설령 유혹을 받아도(좌절하고 넘어져도) 주의 능력으로 물리칠 수 있지만 돌아오는 자는 자주 유혹의 광포에 휘말린다(눅 9:42). 다섯째, 돌아온 자는 날마다 예복으로 갈아입고 영원한 잔치(찬양과 경배)에 들어갈 준비를 하지만 돌아오고 있는 자는 여전히 죄 많은 누더기를 걸치고 부끄러워한다(15:22).” 여섯째, 돌아온 자는 저들의 눈물과 한숨이 기쁨과 찬송이 되어 곁의 사람을 격려하지만 돌아오는 자는 자신의 눈물과 한숨으로 쉬 지친다(롬 5:11).
여전히 돼지우리에서 아버지의 집을 떠올리며 ‘손에 쥔 쥐엄나무 열매’로 주린 배를 채우려 하는 ‘미련한 탕자’가 있다. 저는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가지만 ‘혹시’ 거절당하지 않을까? 받아주시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의심에 사로잡혀 주저하고 망설이기 일쑤다. 그러나 “…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먼저 달려오신다. 삭개오는 구경하러 나무에 올라갔으나 예수님은 저에게 오고 계셨고(19:4-5), 나다나엘이 빌립을 따라 마지못해 나온 것 같지만 이미 저를 알고 계셨다(요 1:47-48). 곧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창조 전에, 예정하시고, 택정하신 바,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알고 계신다(엡 1:4). 그럼에도 ‘돌아오고 있는 자’들은 ‘돌아오지 못할 자’들에 섞여, 저들처럼 생각하고 저들처럼 산다. ‘돌아온 자’처럼 ‘돌아올 것’이나 그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나날은 고달플 따름이다. ‘돌아오는 자’들이 그처럼 자주 넘어가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돌아오지 못할 자’들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뭐라 하시는가?
단도직입적으로 저들은 “악을 행하는 자”이다. 악의 결과는 끔찍하다. 저들을 “땅에서 자취를 끊으”실 것이다(시 34:16). 결국 저들을 죽이는 것은 저들의 악이다.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신기하게도 저들은 “의인을 미워하는 자”이다. 의당 그 “벌을 받으리로다.” 오늘 말씀은 단호하시다(21). 우리가 조금만 눈을 돌려도 이 땅에 있는 수많은 현상을 봐도 안다. 그런 사회에서 ‘돌아온 자’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베드로는 일찌감치 경고하였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 5:8).” 그래서 ‘돌아오고 있는 자’들은 수시로 미적거리고 뭉개면서 ‘돌아오지 못할 자’들을 떠나지 못한다! 저들의 특징은 끔찍하다.
1. 돌아오지 못하는 자의 특징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시 34:16).”
1) 저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 지옥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구원하실 예수를 원치 않는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 73:27).”
2) 저들은 거듭날 수 없다. 이를 원치 않는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하나님을 떠나있다.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사 46:12).”
3) 죄로 인해 성한 곳이 없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6).”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한, 몸과 마음은 영혼도 병들었다.
4) 우리는 저들과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을 알지만 저들은 우리를 희한하게 여긴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결국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13-18).”
5) 저들은 진영 밖에 격리된 것 같이 불결하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민 5:2).” 하지만 저들은 자신들이 교회를 멀리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욥 36:14).”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행 8:23).”
6) 저들은 마귀의 올무에 잡혔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 3:14).” 그저 사망 가운데 거하며 이를 즐긴다.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6).” 믿는 자로 사는 일보다 안 믿는 자로 사는 게 더 신나는 일 같다.
7) 저들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한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8-31).” 한술 더 떠서, 서로들 이런 일을 행하는데 서로 즐기면서 잘한다고 격려까지 한다.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32).”
8) 저들은 율법 아래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그래서 어쩌면 저들은 스스로 애써 율법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기를 쓴다. 더 착하고 순하기도 하다. 이어서 나오겠지만 그래서 저들은 ‘광명의 천사’ 같이 보이기도 한다.
2. 자신의 악이 자신을 죽일 것이다.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시 34:21).”
1) 어둠을 좋아한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2) 생명을 원하지 않는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3) 악함도 선함처럼 그럴듯하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저마다 봉사활동을 격려하고 기부천사를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가짜가 더 진짜 같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 우리의 의는 ‘하얀 악마’이다. ‘하얀 악마’는 하나님 없이 선하다! 그런 저들의 항변을 들어보자.
① 자기주장이 강하다. 이는 언제든 변명이 되어,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늘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뭐 그리 나쁜지 모르겠다! ② 거짓 양심의 질책을 듣는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기준을 가진다. 자신만 떳떳하면 된다는 식이다. ③ 감정에 붙들려, 자주 변덕스럽다. 꾸준하고 무던하지 못하다. 이래야 할 것 같은데 저래야 할 것 같기도 하다. ④ 이 땅의 지식을 선호한다. 성경을 아는 지혜는 없으나 지식은 많다. 그래서 권위 있는 자들의 말을 인용하기 좋아한다. 저들의 화려한 이력을 신봉한다. ⑤ 영혼을 흔드는 속임수를 분간하지 못한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타로 점을 보고, 운수를 따지는 사람들이다. ‘할로윈 축제’는 문화일 뿐이고, 귀신이나 사탄에 대해 경계하지 않는다. 무당과 점쟁이가 가까이 살고, 교회 안에도 ‘요가’가 등장한다. ⑥ 성령의 도우심을 거절한다. 명상을 선호하고 묵상을 꺼려한다. 뉴에이지 문화를 자찬하고, 스스로 기도와 명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추구한다.
나오는 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계절은 정직하게 봄, 여름, 가을이 지나면서 추수를 하고 겨울이 온다. 우리의 인생도 유아기를 지나 아름다운 청춘이 눈이 부시다, 곧 중년이 되고 노년에 이른다. 반드시 모든 인생은 추수할 타작마당에 서야 한다. 이를 한사코 부정하며 자신의 늙음과 죽음을 늦추려고 하지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이와 같은 순리를 역리로 바꾸는 게 사탄의 정곡법이다. 죄는 결코 우발적이지 않고, 우연하지 않다. 의도적이고 반복적이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복음을 거절한다(눅 14:18-20). 이사야서는 이를 엄히 경계하며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사 5:18-19).” 한 마디로 자신이 옳다는 소리다.
다시는 저들을 위한 속죄는 없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그 결과는오직 하나뿐이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27).” 우리는 이를 두려워할 줄 안다. 저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6).” 그러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호 9:17).” 곧 저들의 버려짐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이어서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5-6).”
‘돌아올 수 없는 자’들은, 알면서도 이를 영영 부정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돌이켜 아무리 어떠하든 ‘돌아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않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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