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37:1-7 / 죄로 불평하지 말자

전봉석 2020. 12. 11. 10:35

 

 

20201213 주일

 

 

시편 37:1-7

죄로 불평하지 말자

 

 

들어가는 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시 37:1-2).”

 

우리는 살면서 죄를 죄로 여길 때, 이상하게 우리 안에는 불평이 먼저 생긴다. 저들은 뭘 해도 잘되는 것 같다. 우리는 엄연히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시 73:1). 하지만 동시에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게 된다(3). 그럴 때 우리는 “거의 넘어질 뻔”한다(2). 나름 열심을 다해 주를 섬기는데, 주님은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 같으니까! 이에 오늘 말씀은 선명하게 우리 영혼을 비추신다.

 

 

1.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시 37:3).” 여기서 주의 성실하심으로 우리의 먹을거리를 삼으라는 것은 실제 그리 살라는 말씀이다. 곧 우리의 일상은 모든 것이 주의 말씀이다. 먼저 주의 성실하심을 먹을거리로 삼고 사는 자의 일곱 가지 실천을 살펴보자.

 

1) 불평하지 마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시 37:8).” 어차피 그들의 결과는 풀이 베어짐 같고, 푸른 채소가 시듦 같을 뿐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2).”

 

2) 온유해라.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 37:11).”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를 일컬으신 바 있는데, 온유란 ‘마음이 선하고 착한 것’인데 이는 ‘주를 의뢰하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승승장구하는 것도, 어차피 저들은 자신들의 칼에 찔리게 돼 있다(14-15).

 

3) 의로워라.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시 37:16).” 우리의 의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확신에서 생겨난다. 상대적으로 악인들의 의는 자신들의 소유에 있다. 저들은 그래서 없어질 연기 같다(2). 곧 우리의 젊음도 건강도 돈도 권력도 모두 없어질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4) 은혜를 베풀어라.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 37:21).” 악인들이 왜 악인들이냐 하면 남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이 없고 동정할 줄 모른다. 동정도 돈이 돼야 한다. 저들이 은혜를 베풀 힘이 없는 것은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길은 주가 정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23-24).”

 

5) 자족하고 감사해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 바울도 이에 고백하였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이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4).”

 

6) 주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켜라.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시 37:34).”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악인에게는 미래가 없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38).”

 

7) 우리의 구원은 주께로부터 온다.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시 37:39).” 그러므로 우리를 악인들에게서 건지신다. 이에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3).”

 

 

2. 여호와를 기뻐하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곧 여호와의 성실하심을 먹을거리로 삼고 사는 자는 당연히 여호와로 기뻐하는데, 저에게는 여섯 가지 특징이 있다. 이는 필연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1)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는 스스로 끝났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 더는 소망이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대언자가 계신다. 우리의 어떤 죄도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시고 대언하신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2)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는 죄를 지었다고 해서 억눌리는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는다. 자포자기 하지 않는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7-18).”

 

3) 여호와로 기뻐하는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자책하거나 자부하지 않는다. 즉 스스로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 가령 가룟인 유다처럼,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 27:5).”

 

4) 여호와로 기뻐하는 자는 성경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자신의 신념을 삼지 않고, 다만 주께 아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이는 마치 ‘그 와중에도’ 아버지 집을 떠올리는 ‘둘째 아들’과 같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눅 15:18).”

 

5) 여호와로 기뻐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즉 우리의 죄는 우리로 죄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오히려 주께 나오게 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6) 여호와로 기뻐하는 자는 자신이 믿는다고 믿음을 내세우기보다, 은혜로 신앙생활을 하며 늘 근신한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오히려 자신의 믿음을 자부하는 사람들은 언제고 교회를 나간다. 왜냐하면 자신의 신념을 믿음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3. 우리 길을 주께 맡겨야 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이는 성경의 지혜로 강조되는 기준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일이 잘 풀려도 주의 인도하심이고, 일이 더디 풀려도 주의 인도하심이다. 다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이는 주께 맡김인데, 간단하게 두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나의 나 된 것이 주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2)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인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4.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7).”

 

1) 우리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주를 바라며 잠잠히 참고 기다린다는 것은 기술이다. 기술은 연마에 의해 터득되는 것이다. 오랜 수련이 따라야 한다. 노아의 무던한 기다림이 120년 동안 구원의 방주를 짓게 하였다. 말씀을 붙들고 의지한 아브라함의 맡김이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의 길을 갈 수 있게 하였고, 저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다. 물론 기다림은 외롭다. 신앙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신만 남겨졌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때에도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이를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2) 우리 안에는 주의 영이 계신다. 그것으로 우리는 안다. 어떤 좌절과 실패에도 ‘태초부터 이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는 주의 영이 우리와 함께 계셨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무리도 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나오는 말

우리 곁에서 악을 행하고도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불평하지 말자. 시기하지 말자. 어차피 곧 시들어 없어질 것들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가지고 지켜야 할 네 가지의 원칙이 분명하다.

 

첫째는 주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는 일이다. 사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성실함으로 밥벌이를 하는 줄 알지만, 주의 성실하심으로 먹을거리를 삼는 자들이다. 둘째, 주를 기뻐하라. 스스로들 행복을 추구하느라 별의 별 짓을 다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행복은 주께 있음을 명심하자. 셋째, 우리의 가는 길을 주께 맡기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범사란 어떠하든지, 모든 상황 속에서이다. 마지막 네 번째로는 주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다림은 무던한 믿음의 산물이고, 이는 신앙으로 은혜를 연마하고 주를 기뻐할 수 있는 기술이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성경의 모든 믿음의 선친들은 온전한 기다림으로 연단을 받아 단련된 소망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이다.

 

‘저들은 조롱도 당하고, 채찍질도 받고,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견디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렇게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니 불쌍하고 한심한 인생이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믿음의 성경의 히브리서 11장에서 역설하는 우리의 삶이다(36-40).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믿음과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붙들며, 죄로 인해 불평하지 말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