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1:37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시편 115:1
마음에 기대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안 됐고 서럽다. 말씀으로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붙들고 설 때 힘이 난다. 감정에 기대면 우쭐대거나 초라해진다. 주의 사랑을 마음에 들이고 사는 일만이 영원하다.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설 명절을 쇠면서 그런저런 마음이 어렵기도 하였다. 코로나 시절에 줌을 통해 화상으로 설 예배를 드리고, 화면 저편의 늙으신 부모와 형제들을 보며 낯선 마음이 들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인데, 감정은 이와 같이 기댈 것이 못 된다. 오직 주의 사랑으로 위로함을 받는 것,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애 3:19).” 성경은 우리 인생을 일컬어 이와 같이 쑥과 담즙으로 비유하고 계신다. 고초와 재난이 어디 이 시절뿐이었던가? 민주화가 어떠니 하던 80년에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남북전쟁과 일제강점기는 물론 역사마다 서려 있는 고초와 재난이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이를 기억하는 일이 괴로움이면서도 마음에 담아둠으로 소망이 되었다.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20-21)” 그것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22).” 그 모든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하심이 무궁하시었다. 그와 같은 고초와 재난에서 오히려 주의 긍휼을 발견하고 붙들 수 있는 마음이 귀한 것이다. 저의 긍휼하심이 무궁하시다. 곧 오늘에도 이어져서 난생처럼 겪어보는 환경 가운데서도 서로를 다독이며 주의 인자하심을 상기한다. 어제는 화상 앞에 앉아 화면 저편의 말씀과 서로의 안부를 보며 마음이 이상했다. 사는 게 참으로 희한하고 모질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저 통의 물 한 방울 같은 일이겠으나,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사 40:15).” 산다고 사는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겠나?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12).”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처한 현실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자기 고집들만 내세우는 것인데,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13).”
종종 나는 나를 무시함으로 나를 가벼이 둔다. 그러고 보니 정작 나의 아들과 딸에게는 세배도 받지 못했다. 오후가 다 지나 문득 든 생각이었는데, 당신이 그렇게 해놓고는 뭐! 하는 아내의 핀잔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였다.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14).” 오직 주만이 나로 오늘을 지키게 하신다. 내가 나를 주장하려 할 때 나조차 나를 대접하려 마음이 부풀어지는 일이라, 됐어! 하고 괜찮다고 말해놓고는 그 심중의 뜻을 아이들도 알겠거니… 하고 혼자 생각하였다. 나는 거둬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이 사실 수 있다면. 어떤 주장이나 생각을 강요하지 않음으로 스스로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 살 수 있다면… 주의 넘치는 사랑에 대하여는 묵상할수록 나의 좁은 소견은 한도 끝도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세계를 마음에 두고 살 수 있기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 3:17).” 굳건하여지는 마음을 바란다. 곧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8-19).”
나의 지식으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주의 사랑은 앞서 예레미야의 표현처럼 무궁하시다. 그, 능하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앎으로 그 세계가 나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붙드시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가는 날들이기를. 온 세상의 추하고 악한 것을 모두 용서하실 수 있고 긍휼히 여기시는, 차마 내 마음에 두고 있을 수도 없어 흩어서 뿌려놓고는 하는 생각과 생각까지도 주께서 모두 다스리시는 사랑이다. 그 무궁하고 끝이 없는 길이의 사랑을 어찌 가늠할 수조차 없고, 지극히 높으신 주의 사랑의 영광을 헤아릴 길 없으며, 내 죄악이 아무리 깊고 서러워 구렁 끝을 알 수 없다 해도 그보다 더 깊고 깊으신 사랑이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누구는 있어서 있음으로 고달프고 누군 없어서 없음으로 서러운 게 인생이다.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게 인생이다.
소위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남의 말에 그처럼 신경을 쓰고, 자신에 대해 쏠리는 감정으로 흔들린다. 이처럼 자신에게 예민한 시절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다. 성경은 이를 벗어나 성장하기를 요구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내 것에 연연하는 게 늙으나 젊으나 물리적인 나이로 나아지는 게 아니었다. 영적으로 우리가 성장한다는 일은 다소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더하심을 바랄 뿐이다. 때론 이게 맞나? 싶다가도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12).” 먼저는 말씀으로 확신을 더하고 그 믿음이 장성하여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할 날을 소망한다. 문득 드는 생각이 화면 저편에 늙으신 부모가 계시고 저 멀리 필리핀에 형제와 그 가족들이 있음을 보았다. 어느 가까운 훗날 우리가 모두 한데 모여 주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였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14:1).” 그래서 더욱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에 집중하는 이유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주가 이끌어 가시는 세계를 보며,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이와 같은 고백이 나의 것이 되기를 소원한다. 시편의 표현처럼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 115:1).”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나의 감정, 나의 마음, 나의 생각으로 붙들려 다니지 않도록. 이는 마치 죽은 자의 어쩔 수 없음과 같아서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17).” 찬양이 더디거나 사라지는 까닭은 죄다 나 때문이다. 내가 우위에 놓일 때 나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나의 마음이 나로 좌지우지한다. 더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면.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며 살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주의 그 넘치는 사랑을 앎으로 믿음으로 행하고 더는 보이는 것으로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3:16).” 그렇게 나는 낡아지고 없어지는 것 같으나 날로 나의 속사람은 새로워진다는 것.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3-26).” 말씀으로만 살자. 내게 다짐하고 또 다그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바람으로 사는 일,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 6:3).” 주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할 때,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4).” 신기하게도 그럴 때면 나는 더욱 비통하여 주의 긍휼하심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5).” 주의 사랑이 아니면 나는 구제불능이다. 이를 앎으로 더욱 주만을 바라게 된다. 고로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시 115: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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