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5:6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자긍함은 누룩과 같아서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발효시킨다. 하여 스스로 독주를 빚는 것과 같아서 점점 거침이 없다. 이는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사 5:22-23).” 선악을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해진다. 곧이어 후회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24).” 그 영혼이 황폐해지기 전에 먼저 무너지는 육체를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겠다. 하여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시 55:16).” 오늘 말씀은 우리로 어찌 행하여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비록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17).” 사는 날 동안 근심과 탄식이 없을 수는 없으나 이를 주께 아뢴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엄연히 주가 붙드신다. 곧 우리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주가 들어주신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이를 아는 것은 남들이 알 수 없는 은혜를 우리는 가진 자로 살게 하시는 거였다. 가령 교회를 중심으로 가정을 두고 기도한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교회가 구심점이 되어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남은 일생이 주께 화답되기를 성령이 이와 같은 마음으로 구할 것을 또한 알게 하신다.
실은 참 우리의 구하는 바가 모두 세상에 얽힌 것이라 스스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도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우리로 주를 사모하게 하셨다. 어제도 부모님이 멀리서 오셔 말씀을 전하시고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생각하였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누구는 하루 일당을 벌기위해 공사를 강행하고 그와 같은 소음과 부산함에도 우리는 묵묵히 예배하였다. 신실하게 또한 분별 있게, 이제는 애정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주께 나아감은 그럴 수 있도록 우리를 두고 성령이 기도하심이다! 그렇게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그러므로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11).”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안다는 것은 그 일 위에 서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 본성은 죄를 더할 뿐이어서, 구하고 바라는 것이 세상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는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7).” 우리 마음에 주를 바람은 그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일로 연결된다. 마음으로 전부가 아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몸도 있고, 그 마음은 보물이 있는 곳에 머문다. 스스로 옳다 여기는 것에 대하여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하는 까닭은 그래서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 밖에서 살 수 있겠나?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10).” 다만 저들은 저들이 옳다고 여기는 데서 살아가고 우리는 우리로 옳다고 하시는 데서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 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의 영의 도우심을 따른다.
곧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기도와 마땅히 바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데,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저마다 구하는 게 다르겠으나 우리의 구할 것은 이 땅의 것으로가 아니다. 이를 알게 하심으로 성령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거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다른 이들이 바라고 구하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은연중에 저들처럼 살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우리는 다만 ‘주의 뜻으로’ 구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5).”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탐구하신다. 이에,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오늘 성경은 왜 우리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기록하셨고 읽고 묵상하게 하시는가를 분명히 한다. 저들과 어울려 저들과 같은 것을 구하며 살 때 우리는 금세 우리 안의 본성으로 인하여 죄를 먹고 마시는 데 열심을 다할 뿐이다. 하물며 교회를 그와 같은 이유로 다니고 어떤 목적을 바라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대하여,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를 바란다고는 하나 그것까지도 자기의 의를 위한 것으로,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5).” 남들에게 보이려고, 또한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하여서 구하는 모든 것은 거짓되다. 이는 마치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줄로 아는 것이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시 50:21).”
그러니 우리의 구하고 바람도 얼마나 더 신중하고 진실해야 하겠나. 성령으로가 아니면 하나님께 향하는 기도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일찍이 이를 알았던 다윗은 주께 구하였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시 51:15).” 이 아침, 나도 주께 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주일을 지키고, 아버지가 다녀가시고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하루였던 것 같지만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이를 알수록 오히려 늙어가는 일이 새롭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게 복이다. 전에 듣고 알았던 말씀이라 여겼는데 새로운 까닭은 우리 앞에 같은 없는 듯하다.
다들 돈돈거리며 사는 세상에서 우리로 그 마음에 주를 바라게 하신 것이니, 어제는 아픈 아이와의 간단한 설전에서 나는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손에 뜬금없이 주스를 들고 왔다. 순간 구매 욕구가 이는 일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목사님 죄송해요. 헌금을 다 못 드리고 얼마만 드렸어요. 하는 아이의 말에 그것이 나에게 죄송할 일이 아니지, 하고 설명을 해주는데 녀석이 순간 발끈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에 오는 것이 마음을 드리려고 오는 것이지 돈을 드리려고 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물음이 돌아왔다. 말이 길어져서 좋을 게 없다 싶어 그만두었다. 그리고도 내내 마음에 남는 것은 우리 안에 자기 것을 위하고 자신을 먼저 하는 것에는 구별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이 아침, 우리가 구하는 기도에 대해 묵상하다, ‘성령으로 성령과 함께 하지 않는 기도와 행함과 추구와 모색은 모두가 헛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성령이 이끄셔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사 58:2).” 이와 같은 즐거움이 우리 스스로의 것일 수 있겠나.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시 55:1).” 가만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께 간구한다. 이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22).” 하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이미 다 아신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시 55:16).” 비록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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